침묵, 느껴지는 언어인 침묵은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한다
“잠깐 침묵해도 될까요? 침묵할 때 우리는 진정한 소리가 들립니다. 침묵할 때 비로소 우리 안에서 속삭이는 내면의 소리가 들립니다. 침묵하는 동안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세요. 그 소리가 우리를 바른길로 안내할 겁니다”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 대첩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었다.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은 이순신 장군이 일본과의 수전에서 대승을 거두신 장면을 감동적으로 잘 표현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영웅의 모습을 영화가 어떻게 표현할지 내심 기대했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영화와 달리 주연인 이순신 장군의 대사가 많이 없었다. 오히려 입을 굳게 닫은 침묵의 순간들로 장군의 카리스마가 절묘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위엄있는 목소리로 호통을 칠 법도 한데 그런 장면이 단 한 컷도 없다. 과묵함, 강렬한 시선, 사색에 잠긴 장면들이 영웅을 더욱 영웅답게 표현한 것이다. 진정한 카리스마의 힘이 침묵에서 나온다는 것을 영화는 증명이라도 하는 듯했다.
역사적으로 많은 위인들은 일찍이 침묵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위엄있는 모습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그들이 한 것은 큰소리의 호통이나 논리적인 언변이 아니다. 소리를 잠시 멈추고 상대를 응시하면서 보낸 그들의 눈빛과 몸짓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피타고라스는 말했다. “침묵하라, 아니면 침묵보다 더 가치 있는 말을 하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있는 말을 하고 싶다면 백 마디 말보다 5초간의 침묵이 더욱 효과적이다.
침묵은 들리는 언어가 아니다. 느껴지는 언어다. 때때로 사람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지만 강렬한 느낌으로 존재하는 것에 더욱 압도되는 경향이 있다. 두려움이나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해 영화에서 주로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침묵이다. 2018년에 개봉한 공포영화 「콰이어트 플레이스 (A Quiet Place)」는 제목 그대로 소리가 없는 공포영화다. 대화, 움직임 등 소리를 내면 괴물에게 목숨을 잃게 된다. 괴물은 소리를 통해서 사람을 찾기 때문이다. 침묵과 고요함 속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확실히 관객을 압도했다. 이것이 침묵의 힘이다.
영화가 아닌 일상에서의 침묵은 두려움이나 공포가 아닌 다른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다. 침묵은 타인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모습, 과묵하고 위엄있는 모습을 전한다. 그래서 더 큰 신뢰감을 준다. 슬픔을 경험한 타인과 함께할 때 침묵으로 더 큰 슬픔을 공감할 수 있다. 누군가가 기쁨의 순간을 전할 때 환한 미소와 축하의 눈빛, 따뜻한 포옹으로 그 감정을 전할 수 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침묵이야말로 기쁨을 전하는 최고의 전령이다. 말로 할 수 있는 정도의 기쁨은 대수롭지 않은 기쁨이다”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한정적이다. 더군다나 감정을 나타내는 언어를 우리는 얼마나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극한 감정의 순간에는 백 마디 말을 쉬지 않고 하기보다는 잠시 멈추고 상대를 진심으로 응시해 보자. 그 순간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잠깐 멈춤이 더 많은 것을 나누고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침묵은 사람의 마음을 더욱 파고든다. 잠깐의 침묵으로 듣는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뭉클하게 했던 연설이 있다.
2011년 1월에 애리조나에서 있었던 연설이다. 이날 총기 난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행사가 있었고 오바마 전 대통령은 위로의 연설을 했다. 총기 난사로 세상을 떠난 8세 소녀를 추모하던 중 오바마 전 대통령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멈췄다. 슬픔에 찬 눈빛으로 청중을 바라보다가 먼 곳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그렇게 멈춰진 시간은 정확히 51초였다. 아무 말이 없었지만 분명 표정으로 눈빛으로 그리고 여러 곳을 바라보는 동작들로 애도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피어나지도 않은 작은 어린아이가 세상을 떠난 슬픔이란 침묵이 아닌 다른 말로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일상대화에서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기 생각이나 의도를 반드시 말로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번만 말해도 충분한데 같은 말을 여러 번 할 때도 있다. 가끔 쉼표나 마침표를 깜빡하기도 한다. 쉬지 않고 들리는 소리에 듣는 사람은 어떨까? 특히 그런 소리가 누군가의 험담이나 자랑 혹은 충고나 잔소리라면 더욱 힘들지도 모른다. 듣는 사람은 자신을 지키려고 대부분의 말을 흘려보낼 것이다.
말이 소통을 위한 언어이듯이 침묵 또한 소통을 위한 언어다. 소통으로 우리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말과 침묵의 균형이 필요하다. 우리의 말이 관계를 맺게 하지만 침묵 또한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해 침묵이 꼭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야 하는 순간 혹은 좋은 분위기를 위해서 나의 불편함을 살짝 가라앉혀야 하는 순간이다. 상대방의 질문에 성의 있는 답변을 위해서 잠시 침묵하거나 내 마음의 휴식을 위해서 잠깐의 침묵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침묵이 오해를 불러오는 순간도 있다. 침묵이 필요한 순간과 침묵이 갈등을 일으키는 순간에 대해서 알아보자.
첫째, 침묵이 필요한 순간은 소중한 누군가의 마음에 동기부여를 하고 싶은 순간이다. 요즘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소중한 누군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좋은 말들을 해주고 싶어 한다. 자신의 경험이나 덕담, 좋은 정보들을 말하고 또 말한다. 좋은 말들은 동기부여를 하는데 분명히 도움이 된다. 단, 주의할 것은 너무 길면 안 된다는 것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한자성어를 들어봤을 것이다. 지나친 것은 모자라는 것과 같다는 의미다. 상대방을 위한 좋은 말 한마디를 했다면 그가 충분히 사색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기다리기 위해서 잠시만 침묵하자.
동기부여는 말 그대로 상대방의 내면에 좋은 싹이 틀 수 있도록 물과 거름을 주는 행위다. 하지만 너무 많은 물과 거름은 갓 올라올 새싹에 오히려 독이 된다. 그가 지닌 마음속 씨앗이 싹틀 수 있도록 따뜻한 태양을 비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 침묵이 그런 것이다. 어느 정도의 물과 거름을 줬다면 따뜻한 태양 빛을 비추면서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싹은 기다림을 먹고 자란다. ‘난 널 믿어.’ 그리고 이어지는 미소를 머금은 침묵의 기다림. 그것은 소중한 이를 향한 믿음이고 신뢰다.
둘째, 침묵이 필요한 순간은 마음의 불편함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가끔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거나 대화를 하던 중에 마음에 탁 걸리는 사소함으로 불편할 때가 있다. 나를 향한 질문에서 약간의 비난이 느껴지거나 내가 원치 않는 이야기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혹은 별 뜻 없이 꺼낸 대화 소재가 자신의 좋지 않은 과거 경험과 연결될 때 불편함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우리의 마음이 불편하면 좋은 말을 할 수가 없다. 이럴 땐 15초간 마음속으로 질문 하나를 던지면 좋다. ‘내가 하고 싶은 말속에 아주 작은 가시가 박혀있지 않은가? 알면서 모르는 척 가시 박힌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잘 참은 15초는 소중한 사람과 우리의 마음을 지킨다.
나는 과거에 정말 그랬다. 친구와의 대화나 가족과의 대화에서 사소한데 말 못 할 불편함이 느껴지면 일부러 약간의 가시를 말에 담에 보냈었다. 실수인 척 냉소를 담은 말을 하거나 티 안 나게 가시를 숨겼다. 잠깐만 참으면 되는 것을 참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것이다. 한두 번이야 참고 넘길 수 있지만, 대화의 매 순간이 상처뿐이라면 소중한 관계에 회복하기 힘든 금이 가게 할 것이다. 불편할수록 침묵하자. 할까 말까 망설여지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하고 싶더라도 나에게만 좋은 말이라면 덜 하는 것이 낫다. 해서 상대방이 기뻐할 말이라면 마음 놓고 해도 좋다.
셋째, 침묵이 필요한 순간은 누군가의 질문에 5초간 생각하는 순간이다. 보통 우리의 대화는 상대방의 발언이 끝나기가 무섭게 반응한다. 혹은 상대방이 질문하면 지체 없이 답을 한다. 생각을 정말 빨리 하거나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생각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상대방의 질문에 생각 없이 하는 말이 얼마나 깊이가 있을까? 그러니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잠깐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서 대답하고 싶다면 5초만 생각하자.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질문에 적당히 5초간 생각을 한다면 처음에는 상대방이 당황할 수도 있다. 우리의 대답을 기다리느라 조금은 지루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화할 때마다 잠깐 생각하고 말을 이어간다면 나중에는 오히려 신중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발언 전의 짧은 침묵은 사람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효과가 있다. 발언 전 5초간의 침묵이 우리를 신중한 사람으로 만들고 듣는이의 집중력을 끌어내니 효과적인 대화수단이 된다. 생각하는 시간 5초는 ‘당신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답하겠습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넷째, 침묵이 필요한 순간은 정서적 휴식이 필요한 순간이다. 문명의 발달로 우리는 소리 속에 파묻혀 산다.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생활 소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 한 순간도 우리의 귀를 가만 놔두지 못해서 우리가 의식적으로 듣는 소리를 말한다. 버스를 타거나 길을 걸을 때면 많은 사람의 귀에 이어폰이 착용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잠시라도 무엇인가를 듣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리가 아닌 휴식이다.
하루 중 단 20분 혹은 30분 만이라도 오직 자신을 위한 휴식의 시간을 가져보자. 그 짧은 순간에 온갖 소리를 차단하고 고요한 정적을 느껴보면 어떨까? 침묵 속에서 어떤 생각은 떠올리고 어떤 생각은 걷어낼 수도 있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피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내면의 소리를 듣고 판단할 수도 있다. 생각에 생각이 더해지면 믿기 어려울 정도의 내적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함축된 내적 에너지는 우리가 그토록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한다. 변화하고 성찰하고 성장하고 싶은 우리에게 하루 30분의 침묵은 꼭 필요한 시간이다.
마지막으로 침묵해서는 안 되는데 침묵을 해야 한다고 오해하는 순간도 있다. 바로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순간이다. 갈등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는 침묵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갈등이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침묵이 오히려 독이 된다. 갈등의 순간에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상대방은 울화통이 터지고 말 것이다. 갈등이 커지는 관계에서 상대방이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침묵이 아닌 수용의 대화다. “네 생각이 그런 줄 몰랐어” “네 말을 듣고 나니 충분히 이해해” “몰라줘서 미안해” 이런 수용의 말을 상대는 원한다. 침묵도 잘 사용하면 약이 되지만 잘 못 사용하면 독이 된다. 소중한 인간관계를 지키기 위해서 침묵이 약이 되는 상황과 독이 되는 상황을 구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마시멜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책 상위에 마시멜로를 올려놓고는 먹지 않고 기다리게 한다. 만약 참아내면 그 대가로 2개의 마시멜로를 먹을 수 있다. 이렇게 아이들의 인내력을 테스트한다. 침묵하는 행위는 꼭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는 것과 같다. 자신을 향한 일종의 수양 같은 것이다. 하나를 참고 두 개를 참고 수십 수백 개를 안 먹고 참으면 나중에 몇 배의 마시멜로를 가질 수가 있다. 나중에 우리가 갖게 될 마시멜로는 우리를 향한 존중이 될 것이고 믿음이 될 것이며 신뢰가 될 것이다.
첫 시작은 마음속 목소리를 참아내는 침묵이고 중간은 상대의 말을 귀담아듣는 경청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열매는 진심을 터놓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의 축복이다. 지금 우리가 참는 한두 번의 침묵을 알아봐 주는 이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치지 않기 위해 내 안의 말을 살피고 또 살펴보자. 생선 살을 발라줄 때 아주 작은 가시 하나 숨어 있는지 없는지 살피는 관심과 사랑, 그것이 우리의 관계를 지키는 침묵이다.
※침묵이 필요한 순간 VS 침묵하면 독이 되는 순간
1. 소중한 누군가의 마음에 동기부여를 하고 싶다면 좋은 말 한마디만 하고, 침묵하자. 좋은 말의 씨앗이 마음에 심어지면 싹트고 자라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2. 대화하던 중 마음속 불편함이 느껴지면 잠시만 침묵하자. 불편한 마음에서 하는 말속에는 상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가시가 숨어 있다.
3. 상대방이 질문하면 5초간 생각하면서 침묵하자. 생각하는 시간 5초는 ‘당신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답하겠습니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4. 우리의 정서적 휴식을 위해서 하루 30분만 고요함 속에 있어 보자. 고요함 속에 있을 때 우리가 성장할 수 있는 내적 에너지가 만들어진다.
5. 침묵이 독이 되는 순간이란 갈등이 발생했을 때다. 갈등이 있을 때 침묵으로 일관하면 상대방은 울화통이 터진다. 갈등의 순간에는 침묵이 아닌 수용의 대화가 정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