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아이들을 키우며 거의 체벌을 해 본 적은 없으나 아이들이 어릴 때 -사랑의 매-라고 적은 막대기를 만들어 두었던 기억은 난다. 성경에서도 사랑하는 자식은 매로 다스리라는 말도 있듯이 어느 정도의 체벌은 아이들 교육에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정말 아이들에게 벌이 필요할 때 설명을 하고 손바닥 한 두 대 씩은 때렸었다. 아니 때렸었나? 사실 생각도 잘 안 난다. 그것도 한 두어 번은 아마? 사실 아이들의 사랑의 매는 실제로 사용하는 매가 아닌 어느 정도 경각심과 겁을 주는 용도로만 사용되었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손바닥 맞았다는 기억을 못 하는 것 보니 내가 실제로 때린 적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도 헷갈린다.
영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도 모르게 변해버린 사고 중 하나가 -체벌에 대한 생각-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을 아니 인간을 왜 때리지? 지금 내가 키우고 있는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때린다는 건 절대 상상도 못 하겠는데. 그리고 체벌을 허용하지 않는 영국에서 자란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과 체벌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내가 초등학교 시절 학교를 다닐 때 얘기를 해 주었다. 요즈음은 한국도 많이 달라졌지만 80년대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에는 정말 체벌이 많았다. 체육 선생님께서는 항상 손에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다니면서 온 학교를 누비고 다니셨고, 그 모습만으로도 아이들에게 경각심과 두려움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매 학년 체벌을 하지 않는 선생님들은 없었던 것 같다. 숙제를 안 해 가거나 준비물을 안 가지고 가면 손바닥 맞는 건 일쑤였고 거기에 그다지 부당하다거나 마음속 상처가 되거나 한 기억은 없다. 그게 그 시절엔 이상한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몇몇 선생님들의 잘못된 체벌에 대한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마음이 안 좋다.
내가 정말 분명하게 기억하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몇몇 있다. 그중 하나는 3학년 때 내 짝꿍이었다. 그 아이의 이름도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날 정도로 나에게는 너무 미안함과 함께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초등학교 3학년 어느 날이었다. 어느 날 내 짝꿍 남자아이랑 작은 다툼을 하게 되었다. 그 시절엔 짝꿍과 긴 책상을 같이 사용했었는데 보통 그 중간을 칼자국 같은 걸 내어서 넘어오면 화를 내거나 넘어오는 물건은 내 꺼가 된다니 하면서 잘 티격 대곤 했었다. 하루는 글짓기 시간이었고 내 짝꿍이 자꾸만 나에게 장난을 쳤다. 난 글쓰기에 집중하고 있는데 자꾸만 성가시게 구는 짝꿍이 미워서 선생님께 자꾸 방해한다고 일러바쳤다. 그러면 보통 주의 정도로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선생님께서 그 아이를 교실 뒤 쪽으로 나오라 하고 안경을 벗으라 하셨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아이의 뺨을 몇 차례나 때리셨다. 난 너무 놀랐고 아마 반 전체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다시 제자리로 온 짝꿍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 올라 있었고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일이 이렇게 까지 될 줄 몰랐고 미안해서 눈물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던 기억이 난다. 난 사실 그 당시 반장이었다. 불공평, 편애, 부당함 등. 거기엔 내가 반장이었다는 부분이 아주 큰 작용을 했다는 생각이 그 어린 나이에도 들었었다.
확실히 반장이었던 나에겐 딱히 선생님께서 화를 내시지 않으셨고 그 아이는 공부도 못하고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아서 그런지 정말 부당하게 대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10살짜리 나도 느낄 정도였다.
초등학교 때 체벌은 이렇게몇 번의 안 좋은 기억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매"를 훈계와 교육의 잣대로만 삼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대신 힘없는 아이들에게 마구 표출해 버리는 아주 미성숙했던 교사들이 존재했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에는 육성회비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고 아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발로 차고 뺨까지 맞았던 한 남자아이도 아직까지 충격적인 사건으로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아이는 부모님 없이 할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아갔던 아이였다.
지금 그 아이들은 자라서 어떻게 되었을까.
지켜보는 나에게도 너무나도 충격적으로 남아 있는데 반 전체 아이들 앞에서 부당하게 발로 차이고 뺨까지 맞은 아이들은 맘 속 상처가 트라우마가 되어서 지금의 모습에 과연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조금이라도 그 영향이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면 그때 아이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학대를 한 선생님들은 그 책임을 어떻게 지셔야 하는 걸까.
요즈음은 한국 초등학교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70년대 80년대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난 지혜롭게 매를 사용하고 훈계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이해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하면, 아니 절대 체벌은 안 하는 게 맞다는 쪽이다.
체벌을 하면 확실히 그 매가 무서워 그 행동을 안 하니 어른 입장에서는 훨씬 빠르고 쉬운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체벌을 하기 전에 왜 이런 상황이 왔는지 아이 스스로 잘못한 부분에 대한 생각할 시간을 주고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다짐을 하도록 하는 부분에 있어서 딱히 체벌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행동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영국에서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정말 놀란 부분들이 있다. 영국에서 pre-school 공교육은 만 3살이나 4살이 되면 시작을 한다. 어느 날 학교에 갈 일이 있어서 교실을 지나가는데 그 어린아이들이 있는 교실에서 선생님과 보조 선생님께서 오전에 티 타임을 하고 계셨다. 영국에서는 10시 반 정도 가 되면 간식시간이나 티 타임을 가지는데 그 작은 아이들이 왔다 갔다 돌아다니는 교실 한가운데서 뜨거운 티와 비스킷을 먹고 쉬실 수 있다는 게 좀 신기했다. 어떻게 애기들이 선생님을 방해하지 않고 질서 있게 알아서 잘 놀고 있지? 보통 정신없고 난리일 텐데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선생님들도 전혀 없다. 그건 아이들한테 학교 얘기나 선생님에 대한 얘기를 묻고 들어 보면 다 아는 부분이었다. 쉬는 시간에는 모든 아이들이 다 같이 바깥에 가서 노는데 선생님은 그냥 조용히 지켜볼 뿐이시다. 그리고 시간이 되어 호루라기만 불면 아이들이 놀다가 질서 있게 줄을 서고 다 같이 들어온다. 종종 아이들 준비물이나 학교에 볼일이 있어서 가 보면 아직 애기들인데 넘 질서 있게 잘 컨트롤이 되는 부분을 보면서 너무나도 신기하게 생각되었었다.
한국에서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말 안 듣는 아이들은 따로 처벌도 하고 또 말 안 들으면 단체로 벌도 받고 화가 나셔서 소리도 지르던 선생님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되었다. 난 몇십 명이 다 함께 모이면 아이들은 어느 정도 그렇게 해야만 컨트롤이 되는 줄 알았다.
한국에서도 요즘은 많이 하지만 영국에서는 체벌 대신 생각하는 의자가 교실마다 있다. 초등학교 저 학년 영국 학교에서는 친구랑 싸우거나 잘못을 해서 혼나야 할 때 생각의 의자에 앉게 한다. 나이에 맞게 어릴 때는 1분 정도에서 초등학교 저 학년에는 2분 정도였던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잘못을 생각하게 하고 화 나는 감정을 진정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나중에 아이가 준비가 되었을 때(그 시간이 나이에 따라 1분에서 2분) 거기에 대해 스스로 얘기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법을 가르친다.
그리고 마지막에 꼭 안아주고 사랑의 표현을 한다.
또한 아이들에게 바른 칭찬과 보상 또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교실 벽에는 팀별로 스티커 보드판을 붙여두게 된다. 그리고 칭찬 스티커를 많이 사용해서 공동체 안에서 함께 잘하고 책임지는 법을 가르치고 잘한 아이들을 격려하게 된다.
그리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생각의 의자보다는 칭찬스티커와 반대로 잘못을 하거나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벌점을 주게 된다. 그 벌점이나 경고를 3번 정도 맞으면 이러이러했다는 편지와 함께 부모님께 사인을 받아와야 한다. 내가 교육받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혼나는 것도 체벌을 하는 것도 아닌데 사인만 받으면 돼?라는 생각이 들지만 아이들에게는 이게 참 힘든 벌이였다. 한 번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첫째 아이가 벌점을 세 번 맞아 엄마의 사인이 필요하다고 종이를 내미는데 엄마에게 실망을 주었다는 그 자체로 너무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하길래 난 속으로 웃음이 났던 기억이 난다. 왜 벌점을 맞았냐는 질문에 점심시간에 줄을 서 있는데 뒤에 있는 친구랑 장난쳤다는 부분이 한 가지였고 나머지 두 가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쨌든 난 부끄러워하는 아이가 너무 귀여웠는데 아이에게는 이게 아주 창피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편지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중고등학교 때에는 열 번 지각을 하면 금요일 방과 후 도서관에서 한 시간 더 있다가 집에 가야 한다. 그리고 더 큰 잘못을 했을 때는 가장 큰 벌로 토요일 교복을 입고 한 시간 학교에 왔다가 가야 한다. 그냥 아무도 혼을 내는 선생님도 없고 그냥 도서관에 앉아만 있다가 가면 되는데 이게 또 아이들에겐 아주 싫고 큰 벌이라는 생각에 그게 뭐라고.. 나로서는 도저히 공감이 안 가는 부분이긴 하다.
아무튼 화를 내면서 혼내거나 아이들의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체벌이 없이도 아이들이 더 잘 규칙을 지키고 컨트롤이 되는 영국 학교를 애기 때부터 대학을 가기까지 주욱 보내고 교육을 시키고 아이가 자라 가는 걸 지켜보면서 내가 어릴 때 자라왔던 교육 환경과 방식과는 아주 많이 다른 부분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확실해졌다.
아이들에게 체벌은 하면 안 되는 거구나.
충분히 다른 방식으로 더 잘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거구나.
P.S: 2021년 1월 8일 한국의 법무부는 민법 제915(1958년 제정 이후, 62년째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으며 자녀 체벌의 근거로 오용해 왔던 법)–친권자가 아동의 보호나 교양을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 라는 조항을 삭제를 했다. 개정안은 자녀에 대한 ‘필요한 징계’ 부분을 삭제함으로써 자녀에 대한 체벌이 금지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