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국어 습득을 위한 한국행

#영국에서 두 아이 키우기/모국어를 습득하기 위한 한국 유학길

by ziniO

모국어 습득을 위한 한국행



아이들이 외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한국어를 완벽하게 습득한다는 건 결코 쉽지가 않았다. 스무 살이 훨씬 넘어서 영국으로 유학 왔던 터라 영어가 외국어였던 나에게는 아이들에게 모국어를 꼭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이 아주 확고했다. 우리 가정은 집에서 아빠는 모국이었던 영어와 광둥어, 나는 한국어를 아이들에게 말해 줬고 남편과 나는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하는,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가정이었다. 굳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본인들이 가장 잘하는 언어를 집에서 서로 말하다가 보니 이렇게 다양한 언어가 다 섞이게 된 것이다.

애기 때부터 한국에서 한국 동화책을 이것저것 많이도 주문해서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한국말로 꼭 대화를 했지만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그것도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둘 다 한국어를 써도 모국어 습득이 쉽지가 않은데 당연히 학교에 가면 영어를 더 사용하게 되니 아이들에게 영어가 모국어가 되는 건 당연한 거였다.


그때 이대로 주욱 가다가는 사춘기 때가 되면 서로의 소통에 큰 문제가 있을 것이고 그 소통은 아이들과 나와의 깊은 관계성까지 부정적으로 미칠 거라는 생각에 뭔가 큰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큰 아이가 만 8세, 작은 아이가 만 5세가 되던 3월 초, 온 가족은 모든 걸 영국에 그대로 두고 1년 정도 아이들 한국어 습득을 위해 한국행을 결정했다.


온 가족이 한국행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다행히 남편이 회사에 매여 있었다면 그 결정도 힘들었었겠지만 모든 상황들이 turning point를 만들기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뭔가 꽂히면 무조건 해야 하는 내 성격이기에 어느 날 남편이랑 고민을 나누었다. 모든 건 시간과 기회.. 그리고 때가 있다는 걸 아는 나의 생각을 남편은 100프로 지지해 주었고 이해해 주었다. 그렇게 결정한 후 딱 한 달 뒤 모든 걸 그대로 잠시 일시 정지시켜 두고 두 아이를 데리고 한국행을 선택했다.

1년 정도 한국어와 한국문화 체험의 기회를 갖는다 생각하고 집을 청소하고 정리하고 1년 정도 아이들이 자라면서 필요한 장난감들과 짐들만을 싸고 한국으로 향했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너무 오랫동안 한국땅을 밟지 못했던 나는 첫날 한국 가족들이 마중 나온 공항의 모습과 전경... 그리고 세월의 흔적들을 다 사라지게 하는 반가운 인사말들이 아직도 너무너무 생생하다.

꿈을 찾아 무작정 한국을 떠나 지구 반대편 나라에서 십여년만에 돌아온 나는 그때의 황당하고 당돌했던 패기 대신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또 다른 이유로 차분하게 돌아왔다. 가족들이 보기엔 갑자기 한국을 떠났던 그 날과 비슷하게 조금은 황당했을 터...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는 황당한 막내딸과 동생이었던 것 같다.


공항에서 한국 가족들을 본 나의 아들과 딸은 영어로 "Hello~~ Grandmom, Anut"를 말하면서 차에 아주 예의 바르게 차례로 올라탔다. 만 8세 만 5세의 아들과 딸은 뒷자리에서 곧바로 벨트를 매기 시작했고 옆에 앉으려 했던 이모는 자리가 없어지자 "어머나, 인사도 하고 안전벨트도 스스로 잘 매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가 한국에 온 지 몇 주가 지나니 안전벨트는 당연 매지 않고 타기 전 운전하는 가족한테 인사하는 것도 다 잊은 채 뛰어와서 사촌언니와 깔깔대며 차에 마구마구 올라타는 그냥 천진난만 장난꾸러기 어린이가 되었지만…

아직도 이모는 종종 말한다. 그때 두 조카의 모습이 너무너무 인상적이었다고. 한국에 오니 완전 다른 이미지?로 바뀌었다고.





나의 한국행의 목적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모국어와 문화를 직접 접하는 기회를 아이한테 주는 것이었다.


국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아이가 너무 많이 자라기 전도 후도 아닌 나이가 좋은 것 같다. 그 나이가 내 개인 생각으로는 만 5세 이후 만 12세 전이다. 그때의 우리 아이들은 큰 아이가 만 8세 , 작은 아이가 만 5세였고 더 늦게 결정을 하게 되면 큰 아이의 영국 중학교 입학과 애매한 시간이 겹치기에 마음먹은 김에 바로 결정을 했었다.

물론 영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름 한국어 책도 우편으로 배송받아서 읽어주고 글자도 가르치려 노력했지만 한국어를 그럭저럭 알아듣고 이해하는 것 까지는 가능했지만 대답은 영어로 하는 아이를 보며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해외에 거주하시면서 나처럼 아이를 키우며 모국어를 정말 네이티브처럼 구사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하시는 훌륭한 한국 부모님들도 보았다. 내가 아는 한국 부모님은 선교 사역을 하면서 아이들을 현지 학교에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세 명의 아이들을 홈 스쿨링 하면서 커리큘럼에 맞게 한국어와 영어의 공부를 완벽하게 가르치시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핑계라면 핑계겠지만 우리 가정은 조금 특별하였다. 영국에서 태어난 홍콩계 남편은 영어가 모국어이고 광둥어를 모국어로 배우기 위해 부모님께서 만 6세에 1년간 홍콩에 있는 유치원에 유학을 보내셨다. 그 다음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 영국에서 주욱 자라서 살던 남편은 대학을 다니던 중 일본 유학을 가게 되었고 나를 그렇게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 만났다. 그래서 남편이랑 나랑의 대화는 일본어 반과 영어 반이 섞여있는 대화를 집에서 한다. 그래서 우리들의 두 아이는 어쩌다가 보니 한국 엄마와 홍콩계 영국인 아빠 사이에서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중국어와 일본어가 왔다 갔다 하는 가정에서 자라야만 했다.

둘 다 한국인인 부모님들 가정과는 조금 달랐고 혼자 한국어를 가르치기에 조금 한계를 느낀 나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사춘기 아이가 되면 내가 한국어로 설명을 하고 야단을 쳐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사춘기 아이들이 쓰는 비속어 같은 영어로 한마디 대꾸를 하고 방에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릴 것 같은 걱정... 난 어른이 되어서야 생활 영어를 배운 탓에 (이것도 핑계 아닌 핑계이다) 기본적인 일상 대화 정도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던 터라 앞으로 영어를 네이티브로 구사할 아이들을 절대 따라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분명히 관계와 소통에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 부분에서 엄마와의 언어 소통의 중요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아차 하는 맘이 생겼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살았던 나라에 대해 뼛속까지 이해할 수 있는 한국 문화를 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태어났고 지금 살고 있고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나라 영국,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엄마의 나라 한국의 양국 문화를 직접 경험하며 제대로 스며들게 하고 싶었다.

그 방법은 잠시라도 그 나라에서 살아보는 것이었다.

이건 가족의 아주 큰 결심이었고 온 가족이 움직였다.





하지만

1년을 생각하고 유학을 갔던 한국행은 어쩌다 보니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게 되었다.



Research has increasingly shown that teaching in a mother tongue early in school helps reduce dropout rates and makes education more engaging for marginalised groups. Children who benefit from mother tongue-based-multilingual education (MTB-MLE) also perform better in their second language

From. iafo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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