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별점] 치명적인 스포일러도 은근하게 있습니다.
3줄요약
훌륭한 각본에 훌륭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
이병헌에 표정이 아닌 시선을 따라가게 되는 영화
화려한 '검은색 연출의 향연'...무게감 아닌 긴박함
들어가며
"임자 옆엔 내가 있잖아. 임자 하고 싶은 대로 해"
어두웠던 1970년의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바로 '그' 우민호 감독, 이병헌과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 내로라하는 중후한 베이스의 목소리와 눈물나는 연기력을 지닌 배우들의 합작이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 맛있게 별점을 매겨 보자.
“임자 옆엔 내가, 임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해”
1979년 10월 26일로부터 40일전 영화는 시작된다. 김재규 역을 맡은 이병헌의 내면갈등 묘사가 굉장히 인상적인 영화다. 사운드는 안정감 있고 웅장하지만, 긴박하다. 대체로 우민호 감독이 현대사를 다룬 다른 영화에서도 사운드 하나만큼은 기가막히게 쓰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억의 남는 어구가 있었다. "임자 옆엔 내가 있잖아. 임자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극중 이성민이 이병헌에게 조용히 전해주는 말. 모시는 분이 본인에게 "당신 곁엔 내가 항상 있어", "당신 마음이 곧 내 마음이니 마음껏 해봐" 신뢰의 언어이지만, 정작 당사자는 불안하기만 하다.
호흡, 보이스, 표정 모든 것이 만점
연기력이 좋다. 사실 난 이병헌의 연기보다 박정희 대통령 역할을 맡은 이성민 배우를 더 언급하고 싶다. 표정에 발성에 하다못해 자세까지 ‘그’와 완벽히 같지 않더라도 극중에 배역에 몰입할 수 있게끔 하는 그의 연기력은 극찬받아야 마땅하다.
또 하나의 '박정희 대통령'을 만들어버렸다. 수도많은 패러디와 성대모사를 찾을 수 있지만 이성민의 '박정희'는 남산의 부장들에서 자리잡았다.
톤에는 무게감이 들어있다. 데시벨의 차이랄까. 그러나 이성민은 가볍지 않았다. 높은 톤으로 화를 내는 장면에서 역시 그가 만들어 낸 분위기에 무게감이 들어있었다. 이성민은 중저음 보이스가 매력적인데 특히 중저음의 보이스를 구사하다가 버럭 화를 내거나 언성을 높일때에도 중저음의 베이스를 잃지않아 톤이 엇나가는 느낌도 전혀 없었다.
대부분 언성을 높일때 톤이 어색해지는 배우들은 감정을 실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 베이스를 놓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엇나간건가 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의 박통은 그런 엇나감이 없다.
이병헌은 온종일 '불안함'을 연기했다. 중앙정보부장이라는 자리에 맞지 않게 불안함을 느끼던 그였다. 더욱이 만점이였던 그의 표정연기는 바로 '불안하지만 그렇지 않은 척'할때 비로소 빛을 드러냈다. 남산의 부장들에서 이병헌은 고뇌-고민-불안-결심의 단계를 거친다.
그의 단계를 위한 모든 장치가 연출에 녹아들 정도로 그는 깊이 고뇌했다. 고뇌의 이유를 밝히는 장면과 분위기, 이희준과의 대립 그리고 원인이 모든 상황적 장치가 10월 26일에 총을 들게끔 만든 '이유'를 만들어버렸다.
또 하나의 명품이였던 연기는 D-day 당일 총을 들어 대통령을 쏘았지만, 쏘고 나서 혼란에 빠진 그였다. 이상하지 않은가? 분명 '결심'이 바로 이전 단계였다. 그렇다. 결심은 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고 보니 너무 터무니없는 일을 '저질러'버렸다는 표현의 연기였다.
영화에는 히어로가 존재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현대에 마블 히어로에 디씨 슈퍼맨에 열광하는 이유도 그들의 높은 위치나 압도적인 힘과 더불어 '인간적인 고뇌'에 몰입이 되는 것. 우민호 감독은 바로 이런 점을 노렸다. 역사가 결말을 말해주었지만, 당위성을 부여해주진 않았다. 그런 당위성을 우민호 감독은 이병헌을 통해 보여주었던 것.
결국 "이병헌을 태운 차는 U턴하게 된다."
이병헌의 감정 전환, 도청장면
우민호 감독의 시나리오 구성도 좋다. 평면적 인물이 아닌 입체적 인물의 경우 (그가 주인공일 경우에 더더욱) 심정의 변화를 느낄때, 바로 그 순간이 클라이막스에 도달한 순간이다. 특히 남산의 부장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보통의 영화는 입체적인 인물이 ‘어느 순간’ 변해있어서 당혹감이 들 때가 많다. 난 주로 스토리를 따라가며 인물의 심정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보는 것에 집중하는데, 대체적으로 끼워맞추기식 전개 (일단 성격부터 바꾸고 원인을 거기에 끼워맞추는 대중영화)가 아닌, 일정 선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그 선들은 아마 관객 각각 다른 부분에서 느껴졌겟지만 난 옆방에서 이성민의 통화내용을 도청하던 이병헌의 표정에서 느꼈다. 명확한 인물의 반전 포인트였던 장면이다.
또 다른 임자로 대체되는 '그 남자'
“임자 옆엔 내가 있잖아. 임자가 하고싶은대로 해” 라는 대사를 자신이 아닌 '또다른 임자'에게 말하고 있는 이성민을 보며, 그것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자신으로서 어떤 감정이 느껴졌는지는 이병헌의 눈물섞인 눈동자에서 볼 수 있었다. 난 그부분이다.
또 다른 임자로 대체되는 '그'를 보며 그는 결심을 하게 된다.
재미난 장면도 있었다. 10월 26일 당일, 총을 멋지게 들어 탕! 탕! 탕! 탕탕탕 쏘았던가. 아니다.
탕! 틱..(어 이거 왜이래) 틱틱...(에이씨)
디테일이 살아 숨쉬는 장면이였다. 그 순간 왜 권총이 망가졌는가 불발이 났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급한거다. 급한데 가장 중요한게 말을 듣지 않는다. 왜 그럴때 있지 않은가? 다들 한번씩?
그래서, 결론은!
역사적으로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는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며 박정희를 쐈다.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은 이 영화에서 필요하지 않아보인다. 우리가 느낄 감정은 D-day를 따라가는 인물들의 감정선인 것이다. 그것만 해도 충분하다.
무려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이다. 이 감독의 다음 파트너는 누가 될 것인지, 또 어떤 연출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