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별점]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3줄요약
빛바랜 추억에 스토리텔링 더해 생생하게 살아움직여
감동적인 피아노 선율과 빠른 템포의 박자가 어우러진
“또 보러가고 싶네”...재관람의사 100%
들어가며
"왼손은 거들 뿐"
"영감의 전성기는 언제였어요?, 난 지금입니다"
명대사들의 향연이다. 농구를 좋아하냐는 말에 불쑥 농구부를 찾아갔던 강백호, 고등학교 3년동안 전국제패라는 꿈을 안고 있던 채치수, 에이스 서태웅, 다시 돌아온 정대만 그리고 송태섭.
슬램덩크가 영화로 나온다는 말에 여지없이 영화티겟을 끊었던 나에게는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졌다. 중학교때 친구들과 농구코트에서 뛰놀던 나의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는 말은 이렇게 갈음하자. 사실 영화리뷰가 더 중요하다. 북산의 승리를 보기 위해서 극장 안으로 들어갔지만, 사실 만화책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던 지난 날의 추억을 보고자 했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맛있게 별점을 매겨보자.
이 리뷰는 의외로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피타이저
"그들이 돌아왔다...스크린 안으로"
채치수,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 송태섭으로 꾸려진 북산고 농구부 5인방은 전국제패를 위해 오늘도 코트 위에 올랐다. 상대는 '전국 최강' 산왕공고. 역대급 전력차이에 사실상 승패는 결정된 것과 다름 없던 그 경기에서, 북산고 농구부는 모든 것을 쏟아낸다.
영화는 '북산고 vs 산왕전' 경기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송태섭을 중심으로 각각 5명의 아릿한 과거와 이어지며 교차되는 방식을 택했다.
영화의 시작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말 만화 속 캐릭터가 그려지는 과정을 보여주며, 인물들이 한명한명 등장하는데, 웅장한 음악이 깔린다. 정말 그들이 돌아온 것이다.
명절 종합선물세트 같은,
모든 것이 완벽했던 연출의 맛
역시 애니메이션의 나라, 일본은 다르다. 비록 살아숨쉬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스크린 속에서 살아난 모든 것이 살아숨쉬고 있다. 파도가 철썩철썩 대는 배경, '탕탕탕' 맑게 울리는 농구공 소리, 순간순간 흘러내리는 인물들의 땀방울까지, 정말 진부한 평가지만 "모든 것이 완벽했다"
만화 슬랭덩크의 묘미는 경기지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개그'다. 진지한 경기를 위한 빌드업이라고나 할까. 농구초짜 강백호가 벌이는 '우당탕탕 농구교실' 마냥 하나의 성장통으로서 개그코드는 활용된다.
영화 역시 이 개그코드를 잘 받아 활용했다. 송태섭의 찡그린 표정하며 강백호의 돌발행동 등 하나하나 소중했다. 나는 이 '개그코드'에 굉장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단순하게 진지함을 덜어내는 연출로서가 아닌 '인물의 성장점'으로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늘상 영화나 드라마는 '입체적인' 인물을 지향한다. 선과 악의 평면적 인물구성은 구시대의 산물이기에, 어쨌거나 뭐든 변하는 인물의 모습을 관객은 바라기 때문이다. 거기에 방향성이 '성장'이라면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랬기에, 그 기준점이 필요한 것이다. 갑자기 바뀌면 안되고 어떠한 사건과 계기 혹은 깨달음 언저리에 그것을 보여준 다음, 성장한 인물이 판을 흔들어 놓을 때, 비로소 감탄사가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슬램덩크는 그랬다. '갑자기 훅 들어오는' 명대사가 아니라, 가벼운 개그코드 뒤에 묻어나오는 진지함. 헛소리마냥 던지는 농구초짜 '강백호'의 외침이, 객관적 전력차이라는 현실성을 덜어내고, 그들이 정말 열망했던 마음 속 '그것'들을 자극하는 것이다.
주장 채치수에게서 매번 듣는 단순한 '이기자!'의 구호가 아닌, 농구초짜 '강백호'에게서 듣는 이상적인 승리를 위한 외침. 그것들이 원동력이 되어 북산을 더욱 강하게 했다.
주인공은 송태섭, 왜 송태섭일까
사실 송태섭은 만화에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강백호니까. 그런데 영화는 송태섭을 선택했다. 영화의 전개에서 그의 어린시절부터 시작해 산왕공고와의 대결까지 관객을 끌고 나간 것이 바로 송태섭이다.
오히려 이 점이 신선했다. 왜냐면 주장 채치수, 불꽃남자 정대만, 에이스 서태웅에 대한 이야기는 만화에서 이미 지루할 정도로 보았기 때문이다.
의문이 들긴 했다. 왜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삼았을까. 영화를 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송태섭의 포지션은 포인트 가드, 즉 나머지 포지션의 선수들을 관찰하며 경기를 조율하는 '관찰자'의 역할 때문은 아닐까.
그는 경기 중 매 순간순간 북산의 선수들을 본다. 관찰한다. 그의 시선이 닿는 시점마다 인물들의 '성장점'을 집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독은 송태섭을 주인공으로 삼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일본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어
일본영화를 볼 때, 정말 신중하게 보는 장면은 다름아닌 배경과 그에 어울리는 BGM이다. 그들은 인물이 처한 상황을 흔한 대사로만 처리하지 않고, 음악을 튼다. 피아노로서. 다른 영화도 다 그렇지 않냐 질문을 던지면, 난 일본영화는 다르다고 대답을 할 것이다.
우울한 송태섭, 그는 바다를 바라본다. 그리고 나오는 피아노 선율. 부딪히는 파도. 이 모든 것에 단지 인물이 바라보기만 해도 어떤 심정인지 '감응'되기에 난 일본영화의 피아노선율을 좋아한다.
극장 안에서 일본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잔잔한 피아노 선율을 관객에게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 아닌, 세계관 속 인물들에게 들려주고 싶어한 영화감독의 모습이 떠오른다.
"힘들지?, 세상은 힘들지만 너를 위해, 객석에서 앉아있는 이들과 내가 힘내라고 해주고 싶어, 이 피아노 선율을 들어봐" 라는 감독의 내래이션이 환청으로 들린다.
빠른 템포, 탑독을 따라잡는 언더독의 이유있는 질주
경기로 돌아가자. 북산고는 산왕공고의 막강한 전력에 전반전 20점 차이라는 대패를 당하며 무너진다. 아니 무너질뻔 한다. 이른바 '존 프레스' 산왕공고는 득점을 한 뒤, 북산고가 볼을 터치하는 첫 단계에 거센 압박을 하며, 몰아부친다. 보는 내가 더 답답할 정도로 거센 압박과 각각의 막강한 매칭상대에 북산고는 점수를 내주고 만다.
"아직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나 뿐인가요? 호호호"
북산고의 감독님 흰수염 '안 감독님'은 지시한다. 강백호에게. 리바운드를. 그리고 시작된다 언더독(경쟁에서 열세에 있는 약자) 북산고는 탑독(우세에 있는 강자) 산왕공고를 추격한다. 이때 템포는 정말 빠르다. 중간중간에 갑자기 끼어드는 과거 회상이 잠시 템포를 루즈하게 만들었지만, 살짝 지루하게 느껴질 뿐. 경기로 전환되는 장면에서는 다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숨소리 하나하나 실감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압박감에 머리가 띵 할 정도의 거친 숨. 그러나 북산 5인방은 결국 '극복'한다.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진부한 표현 하에, 각자의 원동력을 발판삼아, 서로를 믿게 되는 신뢰를 발판삼아 그들은 성장한다.
마지막 그 장면..."왼손은 거들 뿐"
뭐니뭐니해도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 그 장면이다. 1분간 숨 참고 보게되는 그 장면. 영화는 어떻게 표현할까 궁금했다. 정말 지리하게 따라붙었다. 각자 몸에 타이어를 메달고 힘겹게 걷는 고된 훈련처럼 그들은 걷고 뛰었다.
사람들은 언더독이 탑독을 따라잡을 때, 기이한 이변이 일어나지 않을까 의구심을 갖는다. 그들에게서 희망을 보는 것이다. '어..어?' 그리고 자연스럽게 언더독의 편에 서서 응원을 하게된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그림? 짜릿하지 아니한가.
그리고 주변의 소음들이 끊어지고 마치 우주의 텅 빈 공간 속에서, 인물들은 움직인다. 숨막히는 듯한 마지막 1분. 두두두두둥둥둥두웅두..웅
어떠한 소리도 허락되지 않은 경기장에서 마지막 8초, 서태웅이 뛴다. 그리고 슛 모션. 그리고 들려온다.
강백호의 목소리 "왼손은 거들뿐"
그의 손에서 떠난 볼은 '촤르륵' 스코어를 넘기고, 마주 보는 서태웅과 강백호. 그래, 이게 바로 '슬랭덩크'였지.
맛 평가
그래서, 결론은?
밥상머리에서 수저를 내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맛 평가를 위해 수저를 쥔 손에 땀이 흥건했다. 정말 최고의 영화를 봤다. 주변을 둘러봤다. 영화가 끝나는 그 시점에서 스크린을 보던 관객들 너나 할 것 없이 감동에 찬 시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마지막 장면은 말야...평일 늦은 밤 10시 영화에도 슬램덩크를 보겠다고 극장에 모인 50여명이 모두, 숨을 참으며 지켜봤어. 그래, 마치 한명 한명이 북산고의 선수처럼 말야"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극장 밖을 나선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2023)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