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암시민 살아진다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by 윤슬이오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 두 친구는 하염없이 고도를 기다린다.
그들은 지루한 기다림에도 농담을 하며, 하릴없이 장난을 치며, 그냥 아무 말이나 하며, 고도를 기다린다.
배고픔을 견뎌야 하며, 발아픔을 견뎌야 하며, 아무것도 이룰 것도 바랄 것도 없는 고통 속의 삶에서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스쳐가는 인연 포조와 럭키는 어떤 의미이고, 과연 그들이 하염없이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일까?

제주에서 어른들이 하는 말이 있다. '살암시민 살아진다.'
삶은 살아가는 것.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삶의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는, 삶은 그냥 살아가는 거다.

고고를 기다리는 그들은 어쩜 고도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다리고, 살아간다.
서로를 의지하며,
혼자가 아닌 둘이어서 가능한 걸까?

혼자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혼자의 평온한 삶이 두 사람이 함께하는 고통보다 더 괴로울 수 있다.
또한 서로의 마음을 보지 못하고, 이해관계로만 바라보는 두 사람의 고통이 혼자인 삶보다 더 크고 괴로울 수도 있다.

고고는 발의 아픔을 알아채고 자신에게 맞지 않는 신발을 벗어버린다. 하지만 포조의 늙은 노예 럭키는 포조의 짐을 내려놓고 쉬어도 되지만 내려놓지 못한다. 왜일까? 알아차리지 못한 것이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도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는데, 그는 바보처럼 계속 들고 서 있다. 단지 포조에게 복종할 뿐, 자신의 생각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지적으로 절대 떨어지는 인물이 아님에도, 그는 자신의 능력도 아픔도 감각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마치 살아도 죽어있는 자와 같다. 결국 벙어리가 되었음은 살아있어도 죽어있는 거나 다르지 않다는 것 아닐까?
나 자신을 포함한 많은 현대인들이 안타깝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서로를 비교하고, 상대방보다 우위에 서고 싶어 하며, 자신의 쓸데없는 짐과 욕심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 짐은 불필요한 고민일 수도, 욕심일 수도 있다. 고통을 스스로 떠안고 있는 것이다.

포조에게 럭키는 그 이름처럼 행운일 수 있었다. 디디와 고고처럼 서로에게 따뜻함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었지만 포조는 그 행운을 몰라본 것이 아닐까? 포조는 럭키가 생각할 수도 있는 존재이고, 똑똑하고 명석함을 지닌 존재임을 알지만 럭키에게 명령하고 무시하고, 럭키를 인격체로 대우하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포조는 장님이 되어 돌아오는데, 그는 이미 사람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장님이었던 것 같다. 상하관계, 이해관계로만 얽혀있는 듯한 둘은 친구가 될 수 있었지만 친구가 되지 못한 것이다. 포조는 눈이 멀고, 럭키는 말을 하지 못한다. 보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나 자신과 상대를 지각할 수 있는 감각기관을 상실한 것이다.


나는 나를 알아차리고, 상대방을 진정으로 바라보며 관계를 형성해 나갈 때, 행복이 올 거라 믿는다. 누군가 나를 바라봐주면 나는 또 다른 내가 되어 있다. (양자역학적 개념과 통한다. 입자의 파동성을 보려 하는 순간 입자는 물질이 되어 있다.)

나는 내가 말을 함으로써 나의 존재를 알리고, 내가 너를 봄으로써 너의 존재를 느낀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 만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도란도란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그럼 책에서 의미하는 고도는 무엇일까?
고도 Godot 가 영어의 God과 프랑스어 Dieu(신)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다.
고도는 신? 희망, 나를 살게 하는 힘, 내일, 내일에 대한 기대, 죽음, 행복 등 독자마다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나 역시 다양한 해석을 해본다.
하지만
고도는 오지 않는다.
디디와 고고는 오지 않는 고도를 계속해서 기다리지만
나는 고도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디디와 고고는 이미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농담하고, 서로를 인지하고, 자신을 알아차리고, 서로를 안아주고, 서로를 바라보면 살아간다.

누구에게든 고통이 찾아올 수 있다. 고통의 원인은 있을 수도 있지만, 원인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가고 있는 내 집 앞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수도 있는 것이고,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아무 상관없는 나를 무차별 공격을 할 수도, 우연히 떨어지는 돌에 맞아 장애인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이 세상이다.
이 얼마나 부조리한 세상인가!


하지만 이런 상황들에 대한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면 답이 없다. 이 세상은 원인과 결과로 이루어지는 것도 있지만, 애석하게도 그냥 확률적으로 일어나는 일들도 많은 것이다.
왜 하필 내게 이런 고통이 오는 것인지 그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찾아오는 것은 고통이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냥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삶의 이유를 찾는 대신, 삶 자체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해골더미 속에서도 내 친구와 담소를 나누고 정을 나눌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이고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돌을 짊어지고 올라가야 하는 형벌을 행하는 시지프가 돌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꽃을 발견하고 꽃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면 그게 행복이 아닐까?
행복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느끼면 그게 행복이고, 의미 있는 삶인 것이다.

유일하게 서있는 나무 한그루 옆에서 디디와 고고는 목을 맬 생각도 해보지만, 그들은 새로 돋아나는 잎을 보고 오늘을 또 살아간다.
나에게 희망을 줄수도,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나무 한그루,
나무 한 그루의 역할은 내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내 선택에 따라 나무 한그루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행복도 내가 선택하는 것이고, 불행도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행복한 삶을 내가 선택하면 나는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삶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대사가 나를 먹먹하게 한다.

고고: 우리 헤어지는 게 어떨까?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디디: 내일 목이나 매자. 고도가 안 오면 말이야.
.....
디디: 그럼 갈까?
고고: 가자
둘은 그러나 움직이지 않는다.

그렇게 둘은 내일을 그리고 또 내일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그 두 사람에게 그동안 삶을 살아가노라 수고 많았다고, 잘 살아냈다고 따뜻한 말을 건네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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