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6학년 음악, 노래 시험 곡은 ‘푸른 잔디’라는 동요였다.
“풀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즐거워~즐거워~ 노래 불러요.”
이 부분에서는 고음 처리를 해야 하는 난이도 상의 노래다. 선생님의 풍금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불렀고, 잘 불렀다는 칭찬도 들었다. 그 칭찬에 힘입어 가끔 풀밭에 눕게 될 기회가 있으면 노래가 신나서 입가로 나왔다.
중학교 입학, 음악 선생님은 중후한 느낌의 나이가 많으신 남자 선생님이셨다.
첫 시험 곡은 현재명의 그 집 앞. 지금 다시 보니 꽤 난이도 있는 노래인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시험을 잘 보고 싶었고, 열심히 연습했다. 시험발표 이후부터 시험 직전까지 계속 연습했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연습만이 살길! 학교에 아침 일찍 와서 혼자서 교실 칠판 앞에서 불러보기도 했다.
드디어 시험 당일, 그 중저음의 음악 선생님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 같은 까만색 커다란 피아노-지금 생각해 보니 그랜드 피아노였던 것 같다.-를 음악실에 가져다 놓으셨다.
문제는 내가 그런 실제 피아노 소리를 이전에 한 번도 실제로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어떤 차도 다니지 않는 시골 작은, 아주 작은 동네에서 살다가 이 큰 대도시에 온 지는 몇 년 안 되었다. 2층짜리 건물도 내겐 엄청난 사실이었고, 여기서는 간혹이지만 아파트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러니 시골 촌놈에게 피아노라는 것은 신문물에 가까웠다.
선생님께서 우아하고 그럴듯하게 반질반질 윤이 나는 검은색 피아노 앞에 앉아 반주를 시작하셨다. 1번 아이는 눈빛을 잃었다. 그 애도 분명, 너무 긴장해서 아무것도 안 들리는 듯했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여기까지 부르다가 멈칫, 반주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됐다. 들어가라.”
1번은 얼굴이 빨개져서 자리로 들어갔다. 나는 충격!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몇 명이나 했을까. 중간중간 선생님의 “됐다. 들어가라.” 가 들렸다. 결국 내 순서가 오고야 말았고,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심호흡을 크게 했다. 선생님이 피아노 반주를 시작했다. 순간, 나는 머리가 핑하는 느낌과 함께 더 이상 피아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오가며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그리워 나도 몰래 발이 머물고~~”
윽! 머물고, 고, 고부분에서 삑사리가 났다. 고음이 올라가지 않았고 이상한 쇳소리가 났다.
“됐다. 들어가라.”
반주는 끝났다.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다음 해, 운명은 너무나 야속했다. 그 중후한 느낌의 나이가 많으신 남자 선생님은 또다시 음악 선생님이 되셨다. 선생님을 보는 순간, 작년의 수치스러운 기억이 다 살아났고, 나는 몹시 괴로웠다. 그래도 나는 당차게 이겨 내기로 마음먹었고, 이번엔 반드시 가창 시험에서 끝까지 살아남겠다고 다짐했다. 속으로만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내 주변 친구들에게 선언까지 해버렸다. 절대, 절대 실패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번 곡은 모차르트 자장가. 당연히 나는 피나는 연습을 했다. 친구들에게 검사받기도 했다. 나는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잘 자라 우리 아가, 앞뜰과 뒷동산에~ 새들도 아가 양도~ 다들 자는데~”
‘어라?! 이제 통과인가?’
“달님은 영창으로~ 은구슬 금구슬을~”
“됐다. 들어가라.”
띵!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내 자리로 걸어갔다. 이제, 나는 어떤 노래도 부를 수 없었다. 피아노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악보는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 에필로그: 대학 시절, 젊은 청춘들은 온통 노래방에서 대중가요를 불러댔다. 그들은 다 18번이 있다고 한다. 나는, 없었다. 나는, 탬버린 맨. 사람들이 노래를 억지로 시킨다. 신비주의로 남을 것인가. 음치임을 만천하에 공개할 것인가. 나는 늘 갈등한다. 사실 나는 노래를 좋아한다. 따라 부르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나는 음치다. 나는 선천적 음치인가. 후천적 음치인가.
그때, 나는 결심했다. 나중에 내가 커서 무대가 무서워 떨고 있는 가여운 작은 새가 노래할 때, 그 노래가 아무리 듣기 힘들어도, 음이 맞지 않아도, 나는 절대로 그만하라고 말하며 끊지 않겠다고. 그리고 틀려도 되니까 자신 있게 해 보라고 말해줄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