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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n 11. 2023

부모님이 싸우고 있어요.

for a struggling teenager

1. 부모님이 싸우고 있어요.  


새벽 1, 민지에게서 카톡이 왔다. 학교에서 작은 음악회 행사가 있어서 다른 날보다 피곤하게 느껴졌다.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카톡 메시지가 보였다.

‘열까, 말까.’ 슬쩍 휴대폰을 보니 민지에게서 온 메시지다. 민지는 얼굴이 뽀얗고 성격은 밝고 야무진 친구다. 그래서 메시지도 당연히 사춘기 소녀의 뜬금없는 잘 자라는 인사일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순간, 뭔가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뭐야중얼거리며 카톡을 확인한다.         

  

선생님, 저 전화해 주시면 안 돼요?’

‘엥?!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저, 사실은 엄마 아빠가 싸우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전화하면 뭘 어떻게 해달라고?’

‘너무 불안해요. 저 소리를 듣고 있다가는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민지야, 일단 알았어.’       

   

머릿속이 빠르게 복잡해진다. 내가 민지에게 전화를 한다. 민지가 나와 통화 중인 걸 알면, 민지 부모님이 싸움을 멈출 수도 있다. 성격이 불같은 사람들이라면, 이 시간에 중학생 딸이 누군가와 통화한다는 사실에 화를 낼 수도 있다. 내가 담임인 걸 알면 나한테 부끄러워할 수도 있고, 웬 간섭이냐며 난리를 칠 수도 있다.   


다시,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 보자. 민지 부모님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민지다. 민지는 지금 새벽 시간 힘들어하고 있고, 내가 전화해주지 않으면 이 아이를 구출해 줄 사람은 없다. 오케이 여기까지, 머뭇거릴 시간은 없다. 전화 표시를 누른다. 바로 받는다.           


민지야, 괜찮아?”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민지, 선생님이야. 이제 괜찮아. 불안해하지 말고, 쌤한테 얘기해.”

“선생님, 너무 불안하고 화나고 그래요. 뛰쳐나가고 싶은데, 엄마, 아빠 거실에서 싸우고 있어서 그러지도 못해요.”

“오빠는 뭐 해? 민지 오빠도 있다고 했잖아.”

“오빠도 아마 방에서 저처럼 듣고만 있을 거예요.”

“엄마, 아빠는 아직도 큰 소리로 싸우고 있니?”

“네, 한 달에 한 번 정도 이래요. 이러다가 이혼할 것 같아요.”

“그렇구나. 선생님 생각엔, 민지야. 나랑 말할 때, 더 큰 소리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그럼, 엄마, 아빠가 알게 되잖아요.”

“응, 그러라고 그러는 거야. 너도 중2고, 어른들이, 부모님이 싸우는 건 있을 수 있는 일이잖니.”

“네, 그렇죠.”

“그래, 그건 어른들 문제야. 하지만, 네가 이렇게 잠도 못 자게, 불안하게 하시는 건 좀 그래. 일단은 싸우는 건 여기서 그만하셔야 할 것 같아.”

“무서워요. 갑자기 엄마, 아빠가 문을 확 열까봐.”

“그럼, 선생님이라고 말씀드리고 바꿔줘. 선생님이 얘기할게. 괜찮아. 지금부터 조금 더 큰 목소리로 말해봐”

“네, 무슨 말해요?”

“친구 얘기해 봐. 요즘 너 지영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 같던데, 뭐 재밌는 거 같이 한 거 있니? 최근에?”

“네, 지영이랑 지난주 일요일에 콘서트 다녀왔어요.”

“그렇구나. 같은 연예인 좋아하는 거야? 누구 좋아해?”

“아, 걔랑 저랑 다른 아이돌 좋아해요. 그런데 그룹이 같아요. 헤헤.”

          

한동안 민지와 연예인 얘기를 하고, 시간은 새벽 두 시를 향해 가고 있다.

“선생님, 밖이 조용해요. 불도 꺼졌어요. 아마, 안방으로 들어갔나 봐요.”

“그렇구나. 민지야, 너도 그만 자라. 부모님 일은 부모님들이 싸우고, 화해하고, 알아서 하실 거야.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냥 너는 네 할 일 하면서 기다려. 속상하고 불안할 수 있지만, 잠까지 못 자면서 힘들어하면 네가 아프게 되니까. 쌤은 민지 네가 아픈 것도 싫고, 너는 너대로 너의 길을 잘 갔으면 좋겠어. 대신 힘들면 쌤한테 말해. 오늘처럼 밤늦게 톡 해도 돼. 특별히 쌤이 민지 톡은 받아줄게. 알았지?”

“네, 선생님, 감사해요. 엄마, 아빠가 제가 통화하는 거 듣고 그만하신 것 같아요.”

“그래, 오늘은 일단 푹 자고, 내일 쌤하고 점심 먹고 산책 같이하자. 데이트 신청이야.”

“네? 데이트요. 크하. 넴. 내일 봬요.”   


그렇게 민지와의 통화는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어서 끝났다. 다음날 점심을 먹고 민지는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햇볕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친구야, 괜찮아. 너무 힘들 땐 연락해. 내가 특별히 해결책은 없지만, 네 얘기를 들어줄 수는 있어. 어른들 일을 우리가 다 해결할 수는 없지. 세상은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것 투성이야. 그래서 뭐, 괜찮아. 우리는 일단, 우리 자신에게만 집중하자.    

  

부모님도 부모님 인생이고, 너도 너의 인생을 사는 거야. 부모님이 서로 화목하다면 훨씬 좋겠지만, 그들도 나름대로 자식 앞에서 노력은 할 거야. 그런데, 그게 자식들이 원하는 만큼이나 만족하는 만큼은 아닐 거야.   


그래도 그게 너무 힘들게 느껴지면, 그냥 부모님께 진지하고 솔직하게 말씀드려 봐. 부모님 다투는 소리가 너무 힘들다고. 그럼, 부모님도 조금은 더 자제하시고, 더 생각하시고, 그럴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그래, 혼자서 힘들어하지는 마. 친구도 좋고, 선생님도 좋아. 마음이 너무 힘들 땐, 꼭 연락해. 연락해서 쓸데없는 말 해도 괜찮아.’     


에필로그:

 

전문 상담가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이론적으로는 부모가 지켜야 할 것은 이렇다.

1. 자녀 앞에서 싸우지 않는다.

2. 싸우게 되더라도 ‘너 때문이 아니다.’라는 말을 꼭 해준다.

3. 이혼하게 되어도 자녀를 사랑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준다.         

  

자녀로서 부모가 싸울 때 최선은 무엇일까. 전문가가 제시하는 것은 이렇다.

1. 부모님이 싸우는 걸 보면 불안해지고 너무 힘들다고 말씀드린다.

2. 싸우더라도 내 앞에서는 싸우지 말라고 말씀드린다.

3. 부모님이 싸울 때 자리를 피하거나 음악을 듣는다.

4. 나 때문에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5. 부모님도 의견이 안 맞으면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6. 마음이 불안하면 친척이나 친구, 선생님께 연락한다.          

 

사실, 부모들은 두 가지 다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다혈질이거나 습관적으로 폭력이 베여 있는 사람들은 말리는 자녀에게까지 폭력, 폭언을 할 수 있다.     

      

자녀로서도 솔직히 말했을 때, 오히려 한 대 맞는 경우도 많다. 3번의 경우 자리를 피해도 계속해서 걱정되고 신경이 쓰이고 불안한 마음이 계속 든다. 4번을 생각해도 싸우는 것을 보거나 듣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다. 5번도 사실 힘들다. 밤늦은 시간에 연락하기도 망설여지고, 막상 다른 사람들이 해결해줄 수도 없다. 그래도 다른 사람과 얘기하다 보면 훨씬 마음이 좋아지기는 하지만,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너무 씁쓸해진다.      


어설프게 너의 인생에 관여했다가 잘못되면 어떻게 하지. 이런 걱정이 든다. 담임으로서 이런 순간은 간혹 발생한다. 봤는데 모른척할 수는 없다. 신고를 해줘야 하나? 솔직히 요즘은 좋은 의도로 하려던 모든 것이 조심스럽고 두렵기도 하다. 아슬아슬 줄타기하면서 그래도, 그래도 용기를 내야겠지? 공부를 더 한다고 해결될 문제들은 아니다. 아직, 단단하지 않은 아이들에게 너의 몫을 해내라고 말하기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의 어른 친구니까 이 말을 해주고 싶어.

친구야, 우리 도망치지는 말자. 같이 얘기하면서 마음을 조금 더 강하게 만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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