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a struggling teenager
“네? 우리 하영이가 학교에 안 왔다고요? 오늘 아침 일찍 나갔는데요?”
담임교사의 전화에 하영이 어머니는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걱정이 밀려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지?’
회사에서 일하던 하영이 어머니는 허둥지둥 연차를 쓰고 집으로 달려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황급히 화장실 문도 열어보고 하영이 방문, 옷장을 열어봅니다. 하영이는 아무 곳에도 없습니다. 망연자실 거실에 한참을 앉아있다가 일단 남편에게 메시지를 남깁니다.
“하영이가 학교에 안 갔대요. 지금, 회사에서 연차 쓰고 나와서 찾는 중이에요. 나중에 찾으면 다시 연락할게요.”
하영이 어머니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밖으로 나옵니다. 하영이가 가는 학교길을 되짚어 걸어가 봅니다. 혹시나 어떤 흔적이라도 발견할지도 모르니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여기저기 불안한 눈빛으로, 하지만 간절한 눈빛으로 구석구석 살핍니다. 하영이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학교에 거의 다 왔을 즈음, 담임교사에게서 전화가 옵니다.
“여보세요?”
“하영이 어머니, 하영이 찾았어요. 지금 119 응급차 타고 병원으로 이송 중이에요. 다행히 크게 위험한 건 없다고 해요. 바로 병원으로 가시면 될 것 같아요.”
하영이는 영양결핍이라고 합니다. 하영이 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 하영이 어머니에게 화를 냅니다. 하영이 어머니는 기가 막힙니다. 하영이 아버지는 금요일 밤늦게 왔다가
토요일은 보통 집에서 온종일 잠을 자고, 일요일 점심 먹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갑니다. 그래도 토요일 저녁은 가족 모두가 함께 외식하는데, 큰딸 예영이와 둘째 하영이 모두 조금밖에 안 먹는 것을 하영이 아버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막내 예준이는 고기를 좋아하고 어떤 메뉴라도 잘 먹습니다. 주중에는 바쁜 와중에도 밥은 다 해서 식탁 위에 차려놓습니다. 딸들이 사춘기라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것은 알고 있지만, 영양결핍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입니다. 하영이 어머니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하영이 어머니는 수액을 맞다가 잠이 든 하영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수액을 맞아서 그런지 혈색도 돌아오고 자는 모습도 편안해 보입니다. 하영이가 깨어나면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다가 설움과 눈물이 복받쳐 올라옵니다.
‘어쩌라는 것인가, 어쩌라는 것인가.’
하영이 어머니는 사실, 작년부터 담임교사에게서 하영이의 거식증에 대한 걱정을 들었습니다. 작년 담임교사는 하영이 어머니에게 어느 날 저녁 전화했습니다.
“어머니, 하영이가 급식을 안 먹어요.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 입맛이 없다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급식을 회피하는 것 같아요. 제가 달래기도 하고, 안 먹으면 혼난다고 협박해도 소용이 없네요.”
하영이 어머니는 담임교사가 중학생 급식까지 관여하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습니다.
“선생님, 그냥 내버려 두세요. 혹시 먹기 싫은 밥도 강제로 먹어야 하나요?”
앙칼지게 담임교사에게 말했고, 올해 전달이 되었는지, 아직 학기 초라 파악이 안 되었는지 올해 담임교사는 지금까지 하영이 급식을 먹지 않는 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하영이 어머니는 몹시 짜증이 나 있는 상태였습니다. 주말에만 오는 남편은 자연스럽게 아이들과의 대화가 없고, 자신도 일을 병행하며 아이 셋을 키우는 일이 버겁기만 합니다. 그래도 딸 둘은 어느 정도 커서 알아서 하려니 했는데, 둘째 딸인 하영이는 공부도 열심히 안 하고, 엄마에게도 말대꾸를 심하게 합니다. 사춘기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해도 날마다 반복되는 상황에 지쳐가는 것 같습니다. 밥도 그렇게 많은 날을 먹지 않고 지내는지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최근 아침에 잠깐씩 본 하영이 안색이 유독 안 좋아 보였고, 아이를 이 지경까지 내버려 둔 것 같아 죄책감이 듭니다. 담임교사와 상담하고 뭐라도 해야 했나,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당장은 뭘 해야 할지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하영이가 깨어나고 하영이 어머니는 하영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영이도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하영이는 엄마가 싫습니다. 엄마는 공부 잘하는 언니 예영이와 막내 예준이는 예뻐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육상을 했던 자신은 공부를 잘하지도 못해서 그런지 엄마가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 옷도, 좋은 음식도, 좋은 말도 엄마는 늘 첫째인 언니와 귀염둥이 막내에게만 많이 해주고,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초리는 차갑기만 합니다. 중학생이 되고 언니에게 많이 의지하고 싶었지만, 운이 안 좋아 같은 학교에 배정받지도 못했고, 언니는 다정다감하게 먼저 하영이에게 다가오는 성격도 아닙니다. 하영이는 거울을 봅니다.
‘예쁘지 않아. 누가 날 좋아하겠어?’
여기까지,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글을 이어가기가 힘들었습니다.
교정에서 만난 하영이는 그저 꽃 같은 아이였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껏 미소를 지으며 아이가 달려옵니다. 아이는 햇살 좋은 어느 봄날, 학교 산책길을 걷다가 제법 친근하다고 느꼈던 선생님에게 인사도 하고, 외로운 마음을 달래줄 누군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릅니다.
“하영아, 오늘 점심은 먹었니?”
“아, 밥은 먹었어요.”
“반찬도 먹어야지. 오늘 반찬 애들이 좋아하는 거 같던데. 너는 뭘 좋아하니?”
“저는 먹으면 속이 안 좋아서요. 오늘은 밥만 먹었어요.”
“그렇구나. 내일은 반찬도 조금 먹어보자. 잘 먹어야 피부도 예뻐진다.”
하영이는 찡긋 웃으며 내 얼굴을 봅니다.
“선생님은 예쁘세요. 피부도 좋으시고. 아, 선생님은 뭔가 좀 멋있어요.”
“그래? 고마워. 그런데, 하영아 네가 100배는 더 예뻐.”
“에이, 저는 안 예뻐요. 피부도 안 좋고.”
“그렇게 생각해? 선생님이 보기에는 네가 너무 예뻐 보이는데. 아직 잘 모를 때지. 그런데, 하영아. 선생님이 피부도 좋아지고 매력적인 여자로 보이는 방법 알려줄까?”
하영이는 그런 방법이 있냐는 듯 눈을 반짝이며 나를 바라봅니다.
“하영아, 넌 지금도 충분히, 예쁘고 매력적이야. 그런데 지금보다 훨씬 멋지고 예뻐질 수 있지. 선생님이 네가 알고 싶다니, 그 비밀을 알려 주마. 하하.”
일단, 사람의 매력은 건강에서 나오는 거란다. 건강한 사람의 기운이 있거든. 건강한 사람은 눈빛부터 살아있고, 피부도 탄력이 있지. 사실, 건강하지 않으면 예쁜 게 다 무슨 소용이니? 영양소를 골고루 잘 흡수해야 건강해져. 건강해지면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훨씬 더 예뻐지고 매력이 배가 된단다.
두 번째로 매력적인 사람은 말이지. 너 잘 봐봐. 어떤 사람은 그냥 가만히 있을 때는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그런데, 그 사람을 말을 시작하거나 어떤 일을 할 때는 갑자기 매력이 넘쳐 보이는 경우가 있지? 그 사람의 매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건 하영이 네가 맞춰봐라.”
“음. 능력이요?”
“그래, 능력도 이유가 될 수 있지. 매력적인 사람은 노력도 하고, 능력도 키우고, 그래서 이것이 있지. 이것은 뭘까?”
“아, 자신감이요?!”
“그래, 자신감이야. 우리는 무엇인가를 향해 노력할 때 멋진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노력하고, 그러다 보면 실력도 쌓이지. 그 과정에서 실패해도 다시 일어나서 다시 도전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점점 목표에 더 다가갈 수 있거든.”
“선생님, 그러면 실력이 없으면 자신감도 없는 거예요?”
“실력이 없으면 자신감이 줄어들긴 하지. 하지만, 그 자신감이 꼭 실력을 쌓은 다음에 따라오는 건 아니야. 자신감 우리는 가끔 그것을 ‘깡’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냥 깡으로 일단 도전하다 보면 자신감이 슬쩍 들어와 있기도 해. 우리가 무모해도 자신감을 가지고 노력하다 보면 실력이 쌓여가는 거야. 그러니까, 목표를 향해 꾸준히 힘을 내서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멋져 보이고, 매력이 막 넘치게 되는 거야.”
하영이는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머릿속에 내 말을 저장해 두려는 듯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 그렇구나. 선생님, 저도 조금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야, 너는 당연히 훨씬 더, 더,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될 거야! 그런 자질이 지금 넘쳐서 흐른다. 그러니, 자. 어서 가서 먼저, 건강을 더 찾아오렴.”
하영이의 얼굴이 약간 발갛게 상기되어 미소 짓습니다. 아직은 힘이 없지만, 이슬을 받고, 햇살을 받고, 곧 서서히 꽃을 피울 준비를 할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가끔 친구와 재잘거리며 웃고 있는 하영이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급식실에서 힘겹게 보였지만, 밥을 몇 숟갈이라도 떠먹는 하영이의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몇 달 사이에 혈색도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하영이의 담임 선생님과 마주쳤을 때, 하영이가 잘 지내냐고 물었는데, 다행히 조금 밝아졌다고 했습니다.
다음 해, 나는 다른 학교로 가서 새로운 아이들과 적응하느라 분주했습니다. 그리고 봄꽃이 그 화려함을 다해갈 즈음, 이전 학교의 선생님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한참을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숨이 막혀오고, 나는 더 이상 숨을 쉬기가 힘들어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하영이는 엄마와 다투고 충동적으로 유서를 남기고 떨어졌어요. 너무 안타깝죠, 선생님. 그 전날까지도 학교에서 웃으면서 발표도 했는데. 우리도 다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무엇이, 무엇이 너를 그토록 힘들게 했을까.
밥을 먹고, 힘을 내고, 건강해지면, 더 밝은 생각이 너에게 왔을 텐데.
마음이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아, 마음이 너무 힘들어,
네가 해서는 안 될 그런 선택을 했구나.
너는 꽃같이 아름다운 아이였는데.
이제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너는 꽃봉오리를 활짝,
펼 수 있었는데.
어떤 아이들은 청소년기를 보내는 것이 무척 힘듭니다. 특히 예민하고 섬세한 아이들은 주변의 평범한 상황에도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보통은 다 통과의례로 봐도 좋지만, 그래도 밥을 잘 먹지 않는 아이들은 눈여겨봐야 합니다. 식욕이 왕성하고 에너지가 아주 필요한 청소년기에는 특히 잘 먹어야 하는데, 간혹 식사를 거부하는 아이가 있다면 심리적인 문제가 있지 않은지 꼭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거식증 혹은 신경성 식욕부진증은 대표적인 섭식장애의 하나입니다. 살을 빼려는 마음이 강해져서 음식을 멀리하고, 먹으면 토하고, 생각만 해도 두통이 생기기도 합니다. 살이 찌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커서 지속해서 먹는 것을 거부하다가 여학생의 경우, 월경 불규칙 또는 무월경 증상이 나타나고, 골다공증 진단을 받기도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음식 섭취를 안 하니 몸은 점점 나빠지고, 신경은 예민해지고, 우울증까지 오게 됩니다. 학교에서 매사에 의욕이 없고, 힘없이 있거나 나쁜 자세로 엎드려 잠을 자는 일이 많습니다.
청소년의 대다수가 시기적 특성상 외모에 관심이 많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합니다. 대부분은 변덕스럽게 이랬다 저랬다 하며 커가면서 자연스레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른들의 역할은 참 중요합니다. 아이들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않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내면의 근육을 단련해 나갈 수 있도록 힘써 줘야 합니다.
가끔은 한 아이를 위해 주변의 많은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하는데도, 그럴 수 없는,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고 힘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