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가 뭘 할 수 있을까요
꽤 오래전 일입니다. 카카오톡이 막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할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문득 3년 전 그 아이가 생각났습니다. 또다시 새 학기가 시작되고 저는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요. 얼굴을 마비시킬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 온데간데없고, 따뜻한 듯 복슬복슬 간지럽히는 봄바람이 머리칼을 넘겨주면 가끔 나무들이 바라보이는 학교 벤치에 앉아봅니다. 다른 한쪽으로는 마구 뻗어나갈 것 같은 힘찬 움직임으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운동장이 보입니다. 그리고 나의 시선은 이제 일과가 시작돼 닫혀있는 교문 쪽으로 향합니다. 교문을 바라보다 그 아이가 떠올랐습니다. 학교에 자주 나오지 않았던 서윤이.
그날 저녁 카카오톡으로 낯선 사람에게서 동영상이 왔습니다. 동영상은 서윤이와 재희가 함께 찍어서 보낸 것이었지요. 두 여고생이 까르르 웃으며 인사를 합니다.
“선생님, 안녕하셨어요? 저희, 서윤이랑 재희예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선생님, 연락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연락할 수 있어서 그래도 다행이에요. 선생님, 너무 보고 싶었어요. 어떻게 살았는지, 꼭 알려드리고 싶어서 영상 찍게 되었어요. - 중략 - ”
다행이다, 잘 되었다, 그래, 나도 좋다. 마음속으로 이런 말들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먼저, 안도가 되었고, 자랑스러워서, 기특해서 좋았고, 앞으로 더 잘 될 것 같아서, 그래서 좋았나 봅니다. 그래서 분명히, 좋은 의미의 눈물을 흘렸나 봅니다.
- 3년 전
새로 맡게 된 아이들은 2학년 5반.
중학교 2학년은 북한에서도 두려워하는 존재라고들 하지요. 질풍노도의 시기의 한 복판에 있는 청소년들의 숫자가 많거든요. 교실 앞문을 드르륵 열고 교탁으로 걸어가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4 분단 5열, 총 40명입니다. 조금 많긴 하지만 그래도 개학 전 명렬표를 보고 이름을 익히려고 노력한 덕에 이번 한 주만 지나면 이름은 다 외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나도 살짝 긴장한 기색과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일단,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저를 소개합니다’를 건네줍니다. ‘저를 소개합니다’는 아주 소중한 자료입니다. 가장 중요한 연락처를 적고, 가족 관계, 친한 친구, 좋아하는 과목, 싫어하는 과목, 방과 후에 하는 일 등을 기록합니다. 가족끼리의 친분 정도를 상중하로 나타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적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읽어보면 다양한 요구사항들과 다양한 바람들이 있습니다.
- 잘 부탁드립니다.
- 종례 빨리해 주세요.
- 많이 혼내지 말아 주세요.
- 수업 재밌게 해 주세요.
- 친구 많이 사귀고 싶어요.
- 성적을 많이 올리고 싶습니다.
- 키가 많이 크고 싶습니다.
- 칭찬 많이 해주세요.
사실, 이 아이들이 적은 내용을 보며 귀여워서 웃기도 하고, 그들의 고민을 엿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장 좋지 않은 징조는 아무 말도 적혀있지 않을 때입니다. 정 할 말이 없는 친구들은 ‘없습니다’를 쓰기도 하거든요. 빈칸으로 남겨두는 경우는 대개 귀차니즘의 끝판왕이거나 무기력한 아이일 확률이 높아서 특별히 더 신경을 쓰게 됩니다. ‘이서윤’이라고 글씨는 작고 동글동글하면서도 반듯하게 쓴 ‘저를 소개합니다’를 살펴보다가 뭔가 최대한 안 쓰려고 애쓴 흔적을 직감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마지막 칸은 비어있었지요.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