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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달 Jun 02. 2023

헤드라이너: 단숨에 읽게 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헤드라이너/창비/임국영

헤드라이너/창비/임국영


‘헤드라이너’는 표제를 쓰는 기자, 주인공, 유명인의 의미가 있다. 행사나 공연에서 가장 기대되거나 주목받는 출연자를 가리키기도 한다. 임국영의 소설집 [헤드라이너]라는 제목은 뭔가 핫하고 신나고 유쾌함으로 가득할 것만 같은 우리 삶의 ‘잘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아니면, 첫 번째 의미처럼 작가가 ‘기자’가 되어 자신의 마음속에, 머릿속에 있는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특유의 매력적인 언어로 치장한 뒤 전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작가가 전달하는 주인공들이 ‘헤드라이너’로서 실제 삶에서 어떻게 주목받을까, 혹은 조금이라도 주목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생각들이 스며들고 있을 즈음, 이미 나는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이 책에는 완전히 단절되지 않은 채 독립된 8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다. 8개의 이야기 모두 쉴 수가 없었다. 추리물도 아닌데, 그래서? 그랬다고! 그렇구나. 그리고? 꼬리를 물고 다음을 궁금해하는 독자는 다음 이야기도 어떻게든 앞 이야기와의 연결 고리를 찾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다. 한 마디로 재미있다. 그리고 신선했다. 작가의 현실에 대한 관찰을, 성찰을 예측하지 못한 상상력으로 풀기도 하고, 젊은 감성의 의도된 듯 정리되지 않은 듯한 언어도 흥미로웠다.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다양한 영어단어를 마주하게 되고, 록 관련 용어, 남자들이 쓰는 언어들이 무방비 상태로 다가온다. 그런 말들이, 표현이 작품에는 너무 잘 어울려서 생생함을 더한다. 여덟 개의 이야기 모두 개성이 가득했고, 나는 쉬지 않고 읽었다. 직접 손끝에서 책장을 넘긴다면, 각각의 이야기들이 어느새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가슴에 들어와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각각의 작품들을 내가 기억하는 방식으로 기록해야 할 것 같아 두서없이 짧게라도 남겨본다.


첫 번째 작품, 「볼셰비키가 왔다」는 장례식장에 죽은 오빠의 밴드 멤버들이 나타나면서 오빠의 삶의 조각들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로울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오빠의 간절함은 결국 토하지 못한 채 질식으로 사라졌다. ‘좋은 부모’는 어떤 부모일까. ‘젊은이들’로 여겨지는 주인공들의 심정을 가늠하며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기성 세대’에 관한 고민을 해본다.


두 번째, 「태의 열매」 에서도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내내 생각했다. 작품에서 아버지는 엄청난 사건들을 저지르고 당하면서도 끝없이 살아난다. 부인과 자식의 안위나 행복을 생각을 아주 가끔이라도 해줄 것 같은 기대는 아버지를 버리지 못해 스스로 만들어낸 위안일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술자리를 함께 하고, 눌러왔던 속마음을 털어놓고 저항해보는 아들이 어쩐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세 번째, 「악당에 관하여」도 흥미로운 작품이었는데, 창작을 할 수 없는 소설가가 자신을 구해줄 편집자를 만나 나누는 대화에서 밖으로 감히 꺼내지 못하는 솔직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A라는 편집자는 프랑수와 트뤼포를 언급하며 내면에 깊이 숨겨진 야심, 혹은 본심, 어쩌면 진심을 말한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한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평을 쓰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이라던가요.’


네 번째, 「헤드라이너」는 음악 관련 유명 인사들의 이름을 자신들의 닉네임으로 쓰는 소년 밴드의 주인공들, 로니, 빌리, 시드, 존의 이야기다. 발칙하지만 한 번쯤 그 무모한 도전을 응원해주고 싶은, 그러면서도 어쩌면 나도 ‘조인’하고 싶은 충동이 느껴졌다.


다섯 번째, 「바크」는 한 때 톱스타였던 ‘오’와 ‘비’가 중심에서 떨어진 BAR-K에서 만나 나누는 대화로 시작한다. 이들은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이야기하다가 작은 무대에 함께 올라 협연을 한다. SNS에 이들의 이야기가 올라가고 바텐더까지 취재에 응하게 되는데, 한 때 ‘헤드라이너’였던 이들의 현재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엄정화의 [엔딩 크레딧(Ending Credit)]의 곡조가 나의 머릿속을 스쳤다.


여섯 번째, 「비둘기, 공원의 비둘기」는 조금 충격적인 작품이었는데, 우리 사회를 꿰뚫어 보는 작가의 날카로움에 공감하면서도 피를 흘리는 주인공들처럼 내게도 상처가 고스란히 아픔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주기적으로 돈을 줍고, 계속해서 돈이 생기는 공원은 하나의 먹이사슬을 형성하고 있다. 소설속 주인공이 이 공원에서 벗어나려고 시도하면서 진짜 문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곱, 「오토바이의 묘」는 오토바이를 훔쳐서 배달일을 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불안한 청소년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은 훔쳐진 오토바이 ‘루피’다. 오토바이에 대한 남자아이들의 환상, 로망, 허세가 있다. 작가는 루피의 시선으로 이 시기 남자아이들의 심리와 방황하는 청춘들의 현실을 흥미롭게 풀어내고 있다.


여덟, 「굿바이 레인보우」는 이 소설집의 마지막 작품이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결국 폐업하는 술집 ‘레인보우야’는 ‘레인보우’의 의미가 있는 술집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국기를 흔히 많은 색이 있어 레인보우 같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다양한 인종의 화합을 의미한다. 레인보우는 거의 전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는 동성애자를 비롯한 성적소수자의 상징물로 쓰이고 있기도 한다. 또, 레인보우는 영국의 락 밴드의 이름이기도 한데, 실제로는 블렉모어의 스타일을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멤버가 교체되었다고 한다. 벌써 과거가 된 듯하지만, 한 테이블에 4명이 넘어가면 안 되는 ‘바이러스 창궐 시기’가 있었다. 레인보우야의 사장이 폐업의 마지막 파티에 참석하지 못하고 서성이다 뒤돌아선 모습이 나의 머릿속에 남아있다.


* Yes24 리뷰에도 동일한 내용을 게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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