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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아 Oct 20. 2022

성균관 가라사대

#반여동

‘아악!’

갑자기 찾아온 극심한 고통에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옆을 보니 준이는 이불을 바짝 끌어당긴 채 세상모르게 쿨쿨 자고 있다.

오늘 할 일도 많은데 하필이면.

밤 기온이 차가워진 걸 알면서도 문을 열어 놓고 잔 게 잘못이다. 준이는 늘 제 이불은 한쪽으로 밀쳐두고 내 이불을 탐을 낸다. 차가운 공기에 잔뜩 웅크리고 자다 보니 한쪽 어깨에 담이 왔는지 돌아누울 때마다 통증에 소스라치게 놀라 이제 잠을 자긴 그른 것 같다. 아니면 오늘 해야 할 일 때문에 생각이 많아 그런지도 모르지...


어제 아버지 제사를 앞두고 엄마를 돕기 위해 둘째를 데리고 며칠 앞당겨 친정으로 내려왔다. 엄마가 살고 계신 아파트가 오래돼서 엘리베이터 교체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공사는 추석 연휴 전에 끝난다 하니 추석보다 며칠 앞선 아버지 제사 동안은 천상 엘리베이터 없이 6층을 오르내려야 한다.

서울에서 바쁜 일들을 마무리하고 정신없이 내려와 6층까지 캐리어 2개를 들고 날랐더니 어깨에 무리가 간 데다 잠을 잘못 자서 심해진 모양이다. 밖을 보니 비까지 추적추적 내린다. 엄마가 너무 힘들 것 같아 내가 하겠다고 자처하고 왔지만 장을 보고 6층까지 나를 생각을 하니 잠이 안 오는 것이다.


늘 새벽잠이 없으신 엄마가 내 인기척 소리를 듣고 말을 걸어오신다. 아님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까치발을 하셨을 엄마.

 “엄마, 오늘 장은 무조건 배달이 되는 마트로 가야 돼. 알았지?”

엄마에게 다짐을 받아 놓고서야 다시 자보려고 애를 쓴다.


비는 그칠 것 같지 않다. 엄마와 재래시장을 먼저 가서 생선을 쪄 놓아 달라 주문하고 떡도 주문하고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문어도 주문해 놓는다. 어느새 집에서 챙겨간 장바구니가 차오르자 이것저것 더 사려는 엄마에게 다시 다짐을 받았다.

 “엄마, 마트!”

비 오는 날은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다. 마트로 가서야 이제 맘 편히 담아 보려는데 엄마는 둘째 사위가 좋아하는 소주를 박스째 살 기세더니 카트 한가득 넘쳐나는 물건을 보고는 6층까지 배달할 직원 걱정을 한다. 엄마에게 타박 아닌 타박을 하고는 소주를 몇 병만 담았다. 이제는 부모의 마음을 아는 부모가 된 것이다.


다음날 근처에 사는 언니가 왔다. 오지 말고 집에 있으라는 말에 심심하다고 오겠다고 하는 언니가 마냥 반가운 것도 아니었지만 언니 마음도 아니까 그 생각은 접기로 했다.

언니에겐 1급 장애아들이 있다. 오늘은 전을 부치고 나물을 하고 갈비를 재고 할 일이 많다. 그런 일 사이에 음식에 대해 참을성이 없는 다 큰 조카를 방어까지 해야 하니 어깨에 통증이 더해지는 것만 같다. 가족이라고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사는 건 아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손도 빠르고 뭐든 잘하는 언니가 오니 일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조카는 옆에서 끊임없이 뭐든 받아먹었다.

저녁이 되고 남편도 오고 형부도 오고서야 우리는 편안히 두 번째 장을 보러 갔다. 오늘은 일꾼도 많은데 날씨까지 맑기만 하다. 어제를 생각하니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아버지 제사 당일이 되었는데도 오빠는 연락이 없다. 오늘 못 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엄마에게 물어본다.

“오빠 몇 시 인천 도착이라고 했어? 바로 내려오면 피곤할 텐데 하루라도 미리 왔으면 좋았는데.

그러다 갑자기 부아가 났다.

“아니 오빠는 언니하고 내가 차려 논 상에 애들 데려와서 절만하고 받아먹다만 가려는 거야?”


엄마가 말에 힘이 없어진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오빠 때문이다.

언니는 71년생 김지영, 나는 74년생 김지영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우리 집은 이 문제로 트러블이 많았다. 오빠가 잘 살아주었으면 좋았는데 늘 부모님 걱정 1순위였고 가정도 지키지 못해 사실 이혼 관계에 놓여있다. 그래도 새언니는 우리 가족을 좋아했고 부모님의 진심도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 장례 때는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그걸로 우리는 만족했다. 새언니도 또 다른 김지영이기 때문에 김지영이 김지영을 미워할 순 없는 거다.

2022년생 김지영도 있을까...


저녁이 되어 오빠가 조카들을 데리고 왔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끊임없는 외사랑 때문에 좋았던 우리 삼 남매의 관계가 한때 위태롭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는 만나면 반가워했다. 어떻게든 성공해 보겠다고 지금은 해외에 나가 있는 오빠가 온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순간이다.


오빠가 오고 엄마와 제사 지내는 시간을 두고 옥신각신 한 다음, 상에 비해 음식이 너무 많다는 형부의 지적에 이어 각자 집에서 지내온 제사 절차를 견주어 이게 맞다 저게 맞다 내내 어수선했다. 아버지가 가신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우린 아직 그런 단계다. 며느리처럼 뒤로 밀려나 있던 언니와 내가 절을 하게 되었을 때 순간 손 위치가 이게 맞나? 절은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게 문제다. 이런 일 앞에서는 늘 어색하고 당황스럽다. 절을 마치고 서둘러 치우고 각자 가져갈 음식들을 챙겨주고 떠나보낸 다음에야 아버지 생각을 했다.


“엄마, 준비하는 시간은 넘 길고 힘든데 아버지 생각하는 시간은 너무 짧아. 나는 천천히 아버지 생각하고 싶은데 그렇게 안 되잖아. 속상해.”

“내년부터는 절에다 맡기려고... 아들인 네 오빠가 아버지 생각을 안 하는데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겠냐. 괜히 너희들 고생시키는 짓 그만하고 그렇게 할란다.”

이것 또한 엄마의 본심이겠지 만은 나도 언니도 내년에도 또 오늘처럼 지내리라는 걸 안다.


태풍 힌남노가 무시무시하다는 뉴스에 다음날 서둘러 나섰다. 비행기는 애저녁에 포기하고 기차역으로 갔다. 떠나는 길에도 여전히 엘리베이터는 멈춰 있었는데 며칠째 아픈 다리로 고생한 엄마가 한사코 따라 나와서 멀리 길이 돌아갈 때까지 우리 가족을 바라보고 계셨다. 얼른 들어가시라고 나도 엄마가 안 보일 때까지 돌아섰다 가다를 반복했다. 기차에 올라서야 지난 며칠 아니 힘들었던 지난 몇 달에서 마침내 벗어난 기분이었다. 피곤한데도 잠은 안 온다. 제사 준비로 바빠 아들에게 빼앗겼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데 추석을 앞둔지라 마침 이런 기사가 눈에 띄었다.


[성균관 “명절에 전 부칠 필요 없다...음식 9개면 족해”]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는 5일 ‘차례상 표준안’을 발표했다.
성균관 측은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음식의 가짓수에 있지 않으니 많이 차리려고 애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말했다.
그간 차례상을 바르게 차리는 예법처럼 여겨왔던 ‘홍동백서’,‘조율이시’는 예법 관련 옛 문헌에는 없는 표현으로, 상을 차릴 때 음식을 편하게 놓으면 된다고 했다. 위원장은 회견문에서 “차례는 조상을 사모하는 후손들의 정성이 담긴 의식인데 이로 인해 고통받거나 가족 사이의 불화가 초래된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를 모두에게 보내줘야겠다. 형식보단 마음이지... 내년에는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지내야지. 그리고 천천히 아버지를 추억할 거야.’


이렇게 다짐하던 나는 서울역이 가까워질수록 시댁에서 보낼 추석 생각에 다시 어깨가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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