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그리고 끝나지 않을 나의 육아 이야기
"나 도착했어. 아마 6시까지 식당에 갈 수 있을 것 같아."
"집에 안 오고 바로 가려고?"
"응. 낼도 새벽출근인데 빨리 먹고 들어와야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서둘러 리무진 버스를 탔다.
오늘은 내 생일을 앞두고 가족과 저녁을 먹기로 한 날이다. 생일 당일은 비행 때문에 한국에 없어서다.
맘 같아선 저녁이고 뭐고 집에 가서 쉬고 싶지만 이제 그러지 않기로 했으니까.
내 생일은 화이트데이다. 난 사탕도 싫어하고 생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서 때맞춰 쉬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아이들 생일은 항상 최선을 다해 챙겼고 코로나 기간 쉰 덕분에 두 어머니의 생신도 집에서 정성껏 차렸다.
코로나가 한참이던 2021년 생일,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그해에 처음으로 가족들에게 챙김을 받고 싶었다. 이제 성장했다고 믿은 큰아이에게 "엄마는 스투키가 필요해~"라고 넌지시 말했다. 생일 전날 원치 않는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지만 괜찮았다. 내가 바란 건 학원에서 바로 오기로 했던 큰애의 손에 스투키가 들려 있는 거였다. 하지만 아이는 빈손으로 왔고 저녁은 늘상 먹는 식사 자리가 되어 버렸다. 그날 자정을 넘기며 생일을 맞이하자 가족 모두에게 말할 수 없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배려가 없다. 나에 대한 배려가 없다...
한번 시작된 서러움과 눈물은 멈추질 않았고 다음날 부은 눈으로 데려다주겠다는 남편을 뒤로하고 출근 했다. 퇴근까지 시간은 더디게 갔는데 이런저런 생각들이 맘속을 헤집어 놓았다. 최대한 시간을 끌다 들어간 집에는 남편의 주도 하에 반강제적인 생일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들손엔 스투키가 아니라 연화죽이라는 푯말이 꽂힌 화분과 <달러구트 꿈 백화점> 책이 들려 있었다. '스투키 사기가 그렇게 어렵나?'가 처음 든 생각이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묵묵히 생일 상을 받으며 생각했다. 원하면 표현하자. 그리고 그날부터 괜찮다는 말은 정말 괜찮을 때만 하기로 했다. 그 뒤로 생일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갖고 싶은 걸 물어왔다. 그리고 나는 "괜찮아~"라는 말대신 "고마워~"를 택했다. 그리고 이번 생일에는 큰애한테서 필라테스 옷을 선물 받기로 되어 있었다.
서둘러 도착한 레스토랑에는 큰애를 뺀 나머지 가족들이 있었다. 앉으며 큰애의 행방을 묻는데 창 밖으로 아이가 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큰아이의 표정이었다. 마지못해 끌려온 것 같았고 얼굴에 짜증도 보였다.
'뭐지?'
큰아이의 짜증 난 표정에 피곤한 나도 짜증이 났다.
"표정이 왜 그래? 오늘 엄마 생일 때문에 모인 건데. 혹시 무슨 일 있어?"
"아무 일 없는데요."
"아무 일도 없는데 그런 표정이면 엄마 서운해."
"저도 모르겠어요."라는 아이의 건조한 답이 돌아왔다.
"그럴 거면 집에 가던가!"
나의 화난 목소리에 아이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겨우 생일 케잌의 촛불을 껐을 때 아이는 결심을 한 듯 집에 가겠다고 했다. 내가 한 말도 있으니 서운한 마음을 감추고 그러라고 했다. 아이가 나가고 남편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으니 아무 일도 없었고 아마 갑자기 운동을 심하게 해서 봉크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아이를 살피러 서둘러 집으로 갔다. 집으로 가면 아이는 지쳐 자고 있거나 나에게 식당에서의 일을 사과할 것이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아이는 집에 없었다. 우리가 들어오고 얼마 후 집에 왔는데 지갑이 없어서 전철역 3개 거리를 걸어왔다고 했다. 그러고는 배가 고픈지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포장해 온 음식을 먹으라고 해도 거들떠보지 않고 라면 끓이는 일에만 몰두했다. 내 마음에 혼란이 생기고 도대체 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뭔가 큰 실수를 하지 않고서야 내게 이럴 수 없는 거다.
'너무 배가 고파 그럴 수 있어... 이따가 엄마 사실은요 하며 설명을 하겠지.'
하지만 아이가 라면을 다 먹고 난 뒤에도 내가 예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 주기를 계속 기다렸지만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자기 할 일을 하고 동생과 다정하게 놀아주기까지 했다. 다음날 새벽 출근이어서 자야 하는 시간이 지났을 무렵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나는 큰애의 방으로 갔다.
"얘기 좀 해. 네가 무슨 말이라도 해 주기를 기다렸는데 왜 아무 말이 없는 거니? 엄마한테 서운한 거 있어? 엄마가 뭐 잘못한 거 있어?"
이런 물음에도 아이는 나를 무표정하게 바라만 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결국 그런 모습에 눈물이 터졌고 아이로부터는 자기도 모르겠다는 단답만 받았을 뿐이다.
너무 낯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 울다 이제 그만 자라고 말하고 방으로 건너왔다.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이상한 아이가 우리 집에 왔어. 저 애는 내 애가 아니야." 하고 말하고 누웠다.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자식을 뭘 바라고 키우지 않겠다고, 내 선택으로 나에게 온 아이니 그저 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은 간데없고 소위 본전 생각부터 난 거다. 그러고는 다시 생각했다. 유치할 수도 있지만 이런 일로 내가 이렇게 마음 아파한다면 앞으로 나도 더 이상 맘 쓰지 않겠다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베트남으로 떠났다. 생각은 정리했으나 막상 이틀의 시간을 보내고 집에 왔을 때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가 없었다. 온 식구가 현관에서 맞이했는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남편이 큰아이가 미역국을 끓여 놨다며 먹으라고 했다. 엄마 챙겨 드리라는 남편의 말에 엄마가 안 드실 것 같다는 아이의 대답이 들렸다. 조금뒤에 식탁에 밥과 미역국이 차려졌다. 그걸 보고 잠깐 망설였다.
그러다 이내 자리에 앉았다.
'그래, 그냥 맛있게 먹어주자. 그리고 지난 일에 대해서는 묻지 말자.'
아들이 처음 끓인 미역국은 너무 맛있었다. 내가 끓인 것보다 엄마가 해주신 것보다 훨씬 더. 내가 미역국을 먹기 시작하자 아이는 어색하게 지나가며 말했다.
"4시간 동안 끓인 거예요. 엄마는 누가 끓여주지 않을 것 같아서요."
그러고는 다른 말은 없었다. 배가 고프지는 않았으나 그릇을 다 비우고 치우는데 아이가 얼마나 정성 들여 준비했는지 알 수 있는 흔적들이 보였다. 아이에게 가서 말했다. 너무 맛있었다고. 그리고 고맙다고.
지금까지 아이는 그날 왜 그랬는지 말하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정말 아이도 자기가 왜 그랬는지 모를 수 있다. 다만 그날 일로 아이가 모르는 나의 감정이 있듯이 이제는 나도 아이의 감정을 모두 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릴 때처럼 꼭 안아 주거나 사랑한다고 말해 주거나 장난감을 사주거나 놀아주거나 해서 아이의 기분을 조절할 수 없다는 것도 말이다.
아이는 개체가 되었다.
아이는 이제 정신적으로 나의 품을 떠나려고 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아이는 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커 있었다는 거다. 이미 나의 품을 떠나기 전에 말이다.
3년 전 스투키 대신 들려있던 연화죽은 아들이 꽃집 사장님에게 바쁜 엄마가 쉽게 잘 키울 수 있는 식물을 물어보고 사 온 거였다. 결국 스투키는 생일날 에피소드를 들은 친한 언니가 집으로 보내줬다. 다행히 두 아이 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 그리고 아들과 나의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도 끈끈하게 잘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