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으로 가는 비행이었다. 나는 비행기 2층 후방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비즈니스에서 근무하는 후배가 예약면세품을 가지러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물건을 챙기며 후배는 말했다.
"선배님, ㅇㅇㅇ선생님 탔어요!"
"그분이 누구신데요?"
"아, 선배님, 모르세요? 그 유명한 일타 수학쌤이요!"
이름을 되뇌이다 보니 나도 아는 이름이었다.
"싸인 안 받으세요? 다른 분은 받는다고 하던대요."
잠시 생각하다 큰 애의 수능이 며칠 안 남았고 응원의 의미로 선생님의 싸인을 받아주면 좋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 부탁 좀 할게요. 선생님께 큰 애는 수포자고, 둘째는 수학과목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해 줄래요?"
그러면서 나는 메모지에 두 아이의 이름을 적어 주었다.
후배가 가고 나는 내 할 일을 했다. 모든 서비스가 끝나고 여유가 왔을 때 아까 그 후배한테서 인터폰이 왔다.
"선배님, 지금 안 바쁘시면 쌤이 오시래요~."
선생님을 직접 만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하다가 갑작스러운 호출에 같이 근무한 후배에게 양해를 구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보니 선배님 한분도 같이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개인 칸막이가 있는 공간으로 갔을 때 선생님은 수학책이 잔뜩 펼쳐진 테이블에서 시선을 떼고 그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전철 광고판과 인터넷에서 뵙던 얼굴이라 처음인데도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 강의를 수강하니 제자가 아닌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선배님은 딸이 선생님 강의를 다 들었고 그 덕분에 명문대를 간 것을 감사해했다. 선배님과의 대화가 끝난 후 선생님은 웃으며 "그럼 이쪽이 수포자와 수학을 좋아하는 두 아들을 둔 어머니시겠네요." 했다. 수학 일타 선생님한테 아이가 수포자라 했으니 재미가 있으셨나 보다. 짧은 순간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졌다.
재작년 아이는 수능을 보고 나서 대학을 가지 않고 군대에 바로 가겠다고 했었다. 그 선택이 옳을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알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선택이야 잘잘못을 가릴 수 있지만 그때는 알 수 없기에 모든 것이 신중하고 두려웠다. 나는 아이에게 너에게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성급하게 무언가를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계속 얘기했다. 내 말에 아이는 고민을 했고 결정적으로 중학교 동창들과 간 여행에서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재수를 결심했다. 나에게 재수를 해도 되겠냐고 말했을 때 아마 나는 안도했던 것 같다. 많은 경우의 수 중에서 그것이 왜 나를 안도시켰을까. 재수는 기본이라는 보통의 범주안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안도였겠지. 그리고 잘 될 수 있다는 희망도 함께 말이다.
나는 재수를 선택한 아들에게 두 가지를 당부했다.
첫째, 성적이 바로 오르지 않아도 실망하지 말고 끝까지 할 것.
둘째, 미련이 생기지 않는 시간을 보낼 것.
먼저 살아본 사람으로 예견되는 것들이 있다. 모든 일에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 노력의 결과가 한 번에 나타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해내는 사람들에 빗대어 너는 왜 못하냐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나는 아이가 보내는 이 인내와 노력의 시간들이 좋은 대학이라는 결과물로 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아이의 인생 전체에 녹아들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앞으로 살며 맞닥뜨리게 될 수많은 일들을 헤쳐나갈 수 있기를 말이다. 그것이 내가 재수를 권한 궁극적인 이유였다. 군대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선택지가 되지 않기를 바랐었다.
고민으로 2월 말이 되어서야 재수 학원에 합류했던 아이는 걱정했던 대로 3월 모의고사를 보고 실망했다. 그런 아이에게 괜찮다고 이제 시작이라고 일 년보다는 더 긴 시간을 보고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다독였다. 차근차근 쌓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이는 시간에 쫓겼고 굳건했던 결심은 코로나가 걸리며 공백이 생기고 또 거기서 균열이 일어났다. 6월 모의고사에서도 성적이 오를 기미가 안보이자 아이는 불안해했다. 그 쯤 기숙학원에 있던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자기는 안될 것 같다고. 지금까지도 그렇고 여기 있으며 부모님이 많은 돈을 쓰게 하는 게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고 말이다. 나는 아이가 얼마나 불안하고 부담을 갖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이의 의견을 존중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며 다독였던 말들을 삼키고 주말까지 생각을 정리하면 그것에 따르겠다고 말이다. 일주일이 지나고 주말이 되자 아이는 나름으로 많은 고민을 했는지 끝까지 해보겠다고 마음을 바꿔 말했다. 나는 또 안도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에게 다시 약속을 받았다. 이제부터 수능까지는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 학원비에 대한 생각, 본인이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의 미안함, 그런 모든 것들을 버리고 오로지 필요로 하는 걸 다 취하라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 일 후로 아이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또 한차례 코로나가 더 걸리고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더 이상 방황하지 않는 시간을 보냈고 수능이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일타 선생님께 큰아이의 좀 특별했던 중, 고 생활과 최근까지 아이가 가졌던 고민에 대해 얘기했다. 내 얘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시던 선생님은 환한 미소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이 아이는 잘 될 거예요. 저는 많은 아이들을 만나봤잖아요. 얘기를 들어보니 이 아이는 인성이 된 아이 같아요. 정말 성적이 다는 아니거든요. 이 아이는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될 거예요. 이 친구한테는 짧게 쓸게 아니라 긴 응원의 글을 써줘야겠어요."
인생은 때때로 힘들기도 하지만 재밌기도 하다. 뜻하지 않은 순간에 뜻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큰 위로를 받기도 하니 말이다. 선생님은 정말 정성 들여 아주 아름다운 필체로 긴 글을 써주셨다. 두 아이 모두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했고 아이에게 그것을 잘 전달했다. 생각했던 대로 큰아이는 너무 좋아했고 그런 유명한 일타선생님이 자기한테 응원의 글을 써 준걸 신기해했다. 그리고 두 번째 수능을 보았다.
작년 수능이 끝난 날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여러 짐들과 함께 아이는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알 수 없는 짠함이 밀려왔고 시험에 대해서는 물어볼 수 없었다. 집에 오고 식탁에 마주 앉았을 때야 아이는 얘기를 했다. 이제 공부를 좀 알 것 같다고 말이다. 내가 그럼 이 기회에 계속 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자 아이의 눈이 잠시 흔들리더니 이내 아니라고 절대 삼수는 안 할 거라고 선을 그었다.
시험 결과는 아이 나름의 노력에 비해 드라마틱한 상승은 없었고 우린 입시 컨설팅을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대학을 정했을 때 나도 남편도 아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모두 나름의 길이 있고 우린 그 길을 어렴풋이 본 것 같았다. 지금도 그때의 선택이 최선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직도 아이는 방황하며 성장 중이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선생님이 써 주신 글은 아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아이의 책상에, 아이의 패드 배경화면에 있는 선생님의 글이 그것을 말해준다.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고 믿어 주는 그 한마디가 아이의 인생을 바꾸고 목표가 될 수 있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건 그런 응원이다.
수능을 앞둔 내 조카와 많은 아이들.
그리고 앞으로 수능을 보게 될 많은 아이들.
나도 나 나름으로 그들에게 응원 한마디를 해주고 싶다.
지금 세상은 너무 빨리 변해서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정답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이런 불확실함 속에서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들이 지나온 시간들이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았다는 거다. 그래서 언제든지 다시 시작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많이 실패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즐기고 그리고 최선을 다해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준비를 하기를 바란다.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삶이 성공한 삶이다.
무엇이 되었든 어제 보다 조금이라도 성장할 수 있는 오늘이기를! 그거면 됐다!!
일타 선생님은 수학을 좋아한다는 둘째를 위해서 집으로 수학책도 보내 주셨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