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변화를 맞이하며
이제 얼마뒤면 T2로 간다. T2는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말한다. 이번 이전은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내가 입사했던 1997년에는 인천공항이 없었다. 지금의 김포국제공항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공항이었다. 거기서 미국도 가고 유럽도 가고 오세아니아도 갔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울 만큼 좁은 공간에서 국내선과 국제선이 함께 운영됐다. 지연은 늘 예정된 일이었다.
그 시절 우리는 등촌동에 있는 사무실로 정장을 입고 출근했다. 도착하면 락커룸에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등촌동과 김포공항을 오가던 셔틀을 타고 함께 공항으로 이동했다. 출발 전에는 항상 어피어런스 체크를 받았는데 손톱 매니큐어 상태라던지, 쪽머리가 잔머리 없이 단정하게 되었는지, 유니폼과 앞치마의 다림질이 잘 되었는지를 검사받았다. 그때는 그게 얼마나 무서웠는지 항상 긴장이 바짝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2001년도에 인천국제공항이 문을 열면서 큰 변화를 맞이했다. 규모 면에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고, 시설이며 디자인 등 모든 것이 정말 멋졌다. 몇 년간 해외를 다니며 부럽기만 했던 다른 공항들은 이제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인천공항의 모든 것이 자랑스러웠다. 인천국제공항이 작년에만 7개의 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그간 많은 상들을 받아 왔으니 근거 있는 자랑스러움일 것이다.
그즈음 우리 유니폼도 변화에 맞추어 지금의 유니폼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색상이나 디자인이 조금 더 세련되어진 것 외에는 변화가 없어서 유니폼이 바뀌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타 항공사는 급진적인 변화로 유니폼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리고 그때부터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집에서부터 유니폼을 입고 출근할 수 있게 되었다.
인천국제공항의 개항은 많은 변화를 이끌었고, 내가 삼십 대부터 지금까지 인생을 보낸 곳이기도 하니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인천공항이 자리 잡고 변화하는 동안 우리나라도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 발전에 공항도 많은 부분을 담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천공항으로 이전했을 무렵 우리 회사도 등촌동을 벗어나 김포공항 옆에 회사가 차려졌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각 부서들이 비로소 한 곳으로 모이게 된 것이다. 회사가 자리 잡으며 심었던 벚꽃나무는 아름드리가 되어 봄마다 회사가 주최했던 벚꽃바자회와 함께 우리에게 잠시나마 모든 것을 잊게 하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그 즐거움이 크긴 했지만 회사가 워낙 외곽에 있다 보니 불편한 점도 많았다. 이전 초창기에는 택시 기사와 회사가 위치한 곳이 서울인지 경기도인지에 대한 의견 충돌로 택시비 시비가 있곤 했다. 인천공항 개항 때부터 기장들은 공항으로 바로 출근한 반면 우리는 회사로 출근했는데, 브리핑을 한 후 회사가 제공하는 대형 차량에 탑승해 인천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그 차에서 보내는 약 40분이라는 시간 동안 부족한 잠을 채우기도 하고, 가족에게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기도 했으며, 미처 챙기지 못한 개인 업무를 보기도 하고 비행준비를 한 번 더 점검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 생활에 익숙해지고 맞춰 나갔다. 그게 어언 25년이 된 거다. 몸에 체득되기에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이제 일주일 후면 우리는 2018년에 새로 문을 연 제2터미널로 출근해야 한다. 익숙했던 것을 바꿀 때면 거부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터미널도 낯선데 이제 출근도 공항까지 개별로 가야 한다. 이것 때문에 다들 혼란스러워하는 중이다. 사무실의 주차난과 시간 낭비 때문에 인천으로의 출근을 바라왔던 나조차도 임박하니 생각이 많아지니 말이다.
처음 인천공항으로 이전할 때만 해도 우리 회사는 부흥기여서 모든 것이 장밋빛이었다. 긴 세월을 지나 이렇게 경쟁기업에 흡수될 줄은 정말 몰랐다. 그리고 흡수되는 입장은 서러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제 적지 않은 나이다. 익숙한 것이 편하고 새로운 것은 기피하게 되는 나이다. 하지만 편한 것에만 기대기에는 또 너무 젊은 나이이기도 하다.
새로운 변화, 새로운 시작. 한번 더 이 변화에 맞춰보려 한다. 그리고 이 변화가 내 삶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어 주기를, 무기력해져 있는 나를 다시 조금 끌어올려 주기를 조심스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