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도반
모녀는 늘 경계에 있다. 살벌하게 싸우다가, 직전까지의 분위기는 오간데 없이 깔깔댄다. 그 격한 온도차 어디쯤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맴도는 것이 바로 나이 들어가는 딸과, 늙어가는 엄마의 관계일 거다.
하루에도 몇 번은 평생 같이 살아야지 싶다가도, 몇 번은 언제 따로 사나 싶은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싸움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를테면 아침밥에 관련된 모든 것에 있어서다.
어젯밤엔 분명 기분 좋게 잠든 것 같았는데, 오늘 아침 엄마의 기분은 쾌쾌한 날씨만도 못한 상태일 때가 종종 있다. 이런 기복은 내게도 있다. 간밤에 우린 잠을 잔 것뿐인데 왜. 대체 왜.
우리 모녀는 평생 잠을 편히 잔 적이 없다. 불면증을 앓는 데다 수면의 질이 안 좋은 한 지붕 아래 두 여자. 그렇다 보니 밤 사이 생각이란 게 극단적 상황까지 몰아쳐 방점을 찍고, 그 기분인 채로 잠들 때도 숱하다. 전날 밤 각자의 방으로 좋게 헤어졌다가도, 다음날 아침 다시 만났을 때 둘 중 한 명의 감정 상태가 어긋나 있을 때가 있는 거다. 이건 마치 가챠 같은 것이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당사자도.
둘 중 하나가 엇나가든, 둘 다 엇나가든 아침밥은 꼭 먹는다.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그건 한 지붕 아래 살면서 어떻게든 얼굴 마주하고 대화하는 시간을 갖자는 취지에서다. 하지만 컨디션 난조인 아침에는 메뉴 선정부터 찬바람이 분다. ‘맛있는 거 먹자’가 아니라, ‘뭐 먹을 건데’가 나오니까.
집 밥이란 게, 그리고 아침밥이란 게 뭐 대수로울 게 있나. 없다. 아침밥이란 건 애당초 기분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하루의 시작을 조금이나마 든든하고 다정하게 시작하는 것. 그건 혼자 아침밥을 챙기더라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런데, 대수로운 날은 단둘이 아침밥을 해결하는 데도 어떤 메뉴가 되든 ‘맛’ 있게 먹기는 그른 것이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이런 식으로 하루를 망칠 만큼 우리 모녀가 야만스럽진 않다.
두 여자가 기분이 아주 괜찮을 때도, 기분이 아주 별로일 때도 찾게 되는 메뉴가 있다. 그것은 ‘갱시기’. 경상도 사람들만 먹는 것으로 아는데, 그러니 음식 이름도 사투리겠지. 처음으로 갱시기의 뜻을 찾아보니 경상도 사투리로 표준어로는 그때, 그 시기, 그 무렵, 정도의 뜻을 가진다고 한다. 예문으로는 ‘그 갱시기 내 학교 다닐 때 아이가.’ = ‘그때 내가 학교 다닐 때잖아.’ 같은 문장이 찾아졌다. 그때, 그 시기, 그 무렵, 이라.
갱시기라는 음식과 그 뜻의 접점을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찾아지질 않는다. 이 음식의 비주얼은 말 그대로 ‘개밥’ 같기 때문이다.
레시피는 이렇다. 김칫국을 만든단 생각으로 베이스를 잡고, 떡국떡, 찬밥, 소면을 넣고 간장 조금 넣고 설탕으로 적당히 간 맞추고 끓인다. 끝. 비주얼이 왜 개밥 같은지, 짐작이 가는지.
놀랍게도 이 음식은 꽤나 소울푸드다. 뜨끈하고 진득한 국물에 속이 풀리고, 포만감으로는 행복을 가득으로 채울 수 있다. 혈당스파이크 그거 언제부터 따졌다고. 아, 퍼지기 전 소면부터 먹는 게 포인트.
기분이 좋을 땐 좋은 데로, 기분이 별로일 땐 별로인 데로, 기분 적절하게 맞춰주는 묘한 음식이 갱시기인 것이다. 뜨겁고 진득하고 포만감 가득하면, 좋은 기분은 더 고양되고, 별로인 기분은 풀어진다.
덕분에 밤 사이 속 시끄러워 마음이 개운치 못한 날, 갱시기의 아침은 속풀이용 해장국처럼 복잡한 마음을 풀어준다.
그래서 갱시기인가. ‘그때’라는 뜻을 가진 이유 말이다.
언제나 ‘그때’ 딱! 인 음식.
사실 갱시기를 제일 좋아했던 식구는 두 여자가 아니다. 이미 떠난 한 사람. 아빠다.
입맛이 없을 때 아빠는 늘 ‘갱시기나 무그까?’ 곧잘 그랬다. 아빤 까다로운 사람이었지만 까탈스럽게 구는 사람은 아니어서 음식 가지고 싫은 소리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단출한 레시피를 가진 별 거 없는 갱시기를 좋아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 많이 먹어 물릴 법도 할 텐데 말이다. ‘갱시기? 좋재.’ 언제나 갱시기에는 오케이를 때렸던 아빠였다.
이제 오케이 표시 대신 따봉을 날리며 갱시기를 찾던 아빠는 없다. 아빠는 마지막을 앞에 두고 걱정했다. 두 여자가 사이좋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하여. 당신이 없어도.
한 지붕아래 두 여자, 우리 모녀는 아빠가 떠나고 나서 본래보다 갱시기를 더 자주 끓여 먹는다. 의도한 바는 아닌데 그렇게 됐다. ‘좋재? 맛있재?’ 갱시기를 먹고 나면 엄마는 나른하고도 산뜻한 묘하게 좋은 기분이 되어 내게 묻는다. 나는 오버하며 역시 갱시기가 최고라고 받아친다. 아침이 무탈히 넘어간다. 모녀의 뜨끈한 하루가 또 시작된다. 피곤해도 갱시기 덕에, 또 서로 웃으며 하루를 시작한 덕에, 그 ‘덕’ 효과가 있을 거다. 아빠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이가 유연히 흘러가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
아빠도 함께였으면 하는 쓸쓸함만이 콧잔등을 서운케한다. 눈물대신 농담 한마디 던지며 웃어본다.
‘아빠, 그 갱시기 아빠 있을 때나 지금이나 갱시기는 최고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