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내 나이 마흔. 술도 마음대로 못 먹냐고!

’루‘도반

by 도반

술에 관한 내 역사는 모질게 길다.

사실 그쪽으로 에세이를 썼다면 훨씬 다이나믹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간 그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어쨌든, 내겐 아무리 나빴어도 ‘흑역사’ 축에 낄 정도로 흐린 기억이지만 모친에게는 끔찍한 기억들 몇 개가 남아서 그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술을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고, 그래서, 그래서 술 먹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술 공감 능력 제로인 셈이다.


세상을 떠난 부친도 그렇고, 김가네 집안사람들은 반주라든가, 모여 술을 먹는 일을 즐기지 않는다.

그 건 아마도 조부가 매일 같이 술을 먹다가, 당시 가방끈이 매우 길었던 이대 나온 첩에게 돈을 홀라당 다 빼앗기고(어디까지나 피해자 입장 진술이다) 또 밤낮 술을 먹다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큰아버지는 그런 자신의 부친을 몹시 끔찍해했고, 그런 연유로 집안 가장 큰 어른이 된 그가 술을 입도 대지 않았기에 집안 분위기가 자연스레 술과 멀어졌다. 실제로 김가네가 모여봤자 큰아버지네, 그리고 우리 집뿐인데 두 집 다 외동자식들만 둔 터라 합이 총 여섯, 나 빼고 술을 즐기는 사람이 없었다.

한마디로 다 술 공감 능력 제로. 이러니 술과 가까울 리가!


음주인이 천대받는 집안에서 나는 늘 눈치를 보며 술을 마셔야 했고, 게다가 20대 땐 술 먹고 갖은 꼴통짓을 다했기 때문에 학을 뗀 엄마가 ‘술’에 ‘시옷’ 자만 나와도 앉은 자세에서 엉덩이로 점프를 할 정도로 질색팔색을 했다. 그게 지금까지도 그러니 나도 학을 떼게 되었다.


내 나이 이제 마흔. 많은 시간 음주가무를 밖에서 즐긴 탓일까. 이제는 집 안에서 혼 술 하는 게 더없이 좋은데, 모친과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이 조건에서 홀로 멋들어지게 혼술을 하는 것은 고난과도 같은 여정이다.

이제 술에 절기보다는 젖기 좋은 나이지 않은가. 이제 꼴통 짓 안 하고 골져스 하게 즐긴다니까, 엄마!


이런 식이다. 일단 배달이라도 해서 먹을라 치면, 007 작전을 방불케 하는 쇼를 벌여야 한다. 배달 음식과 술을 엄마 몰래 소리 소문 없이, 방으로 속히 날라야 되기 때문이다. 내가 청소년도 아니고!

문 앞에서 배달 라이더가 신분증 검사니, 싸인이니 뭐니 하면서 시간을 끌면 큰일이다… 걸리는 거다!

이 심장 떨리는 서스펜스적 상황을 혼술 할 때마다 겪어야 하다니.

다시 말하지만 내 나이가 마흔인데!


달각, 달각. 언더락 잔에 좋아하는 버번위스키를 따르고. 사운드바에서 흘러나오는 그때에 맞는 음악과, 내 기분에 딱 맞는 조도. 플레이팅까지 완벽히 마친, 간단한 요리를 두고 술을 즐기는. 이런 그림이 내가 원하는 나의 혼술 일상인데.

실상은 텀블러에 소맥 후딱 말아서 콸콸콸 마시고, 어글리 한 일회용기에 담긴 배달음식을 나무젓가락으로 먹성 좋게 먹는 내 모습. 아, 이건 아니다.


“엄마, 옛날의 내가 아냐. 적당히 즐길게. 좀 두라.”

“야 또 뭔 말하나?”

“술, 혼술 좀 내 뜻대로 하면 안 될까?”

“수-울? 또 술타령이가? 너는 어째 (숨 넘어감) 언제까지 (넘어감) 증-신을! 안 차릴 거가?”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술을 이제(하는데)”

“(자르며) 아니고 뭐고 술을 왜 먹는데?”


왜 먹냐고?

그런 원론적인 얘길 하자는 건가, 엄마?

대화가 안 된다. 대화가.

엄마, 술을 왜 먹냐고?

그걸 얘기하자면 나는 천일야화 세헤라자데가 되어야 할지도 몰라. 엄마는 정말 술 공감능력제로구나.


사실 나는 엄마랑 같이 치맥을 하거나, 맛있는 요리 해서 반주를 하거나, 때론 와인이나 위스키를 먹으며 분위기를 잡거나… 그런 게 하고 싶기도 하다.


어느 나이를 넘기고 나면 모녀는 여자 대 여자로 서로를 바라보게 된다.

딸은 엄마를 나이 든 한 여자로 평가하게 되고, 그때부터 이 여자는 왜 이러고 살았는가, 혹은 이 여자는 참 대단하게 살았다, 근데 이 여자는 왜 행복하지 않아 보이는가, 등등.

이해 불가능한 지점과 연민, 깊은 이해와 원망같이 충돌하는 감정들이 뒤섞이게 된다.

엄마는 딸이 어떻게 보일까. 그건 내가 엄마가 안되어봐서 모르겠지만 다 큰 딸에 대한 엄마의 심정이랄 것도 있겠지. 늙어가는 딸을 보는 엄마의 심정도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때론 그런 복잡한 감정들을 술에 기대 조금은 느슨해진 마음으로 얘기해보고도 싶은 것이다. 혹은 여자 대 여자로, 먼저 여자의 생을 살아본 선배와 따라가는 후배로 한 잔 해보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 생엔 글렀다. 다음 생엔 우리가 어떤 인연으로 만날지 모를 일이고.


대신, 우리 모녀는 커피 타임이란 게 있다. 어지간하면 이틀에 한 번은 아침시간에 커피 타임을 가지며 수다를 떤다. 주제는 다양하고, 서로 가치관이나 주장이 강한 우리 모녀는 가끔 좋자고 만든 커피타임에 서로 의견이 분분하여 싸우다가 끝장나는 때도 있다.

아! 어쩌면 술을 같이 안 먹는 건 다행인 건가. 술에 취해 서로 말이 옳다고 우기기 시작한다면? 오, 그래. 술은 같이 안 먹는 것이 낫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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