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은 날들

'루'도반의 글

by 도반




우정이라는 단어가 시시하고 시들해진 나이. 혹은 나이 때문이 아닌 지금의 내 사정과 상태.

문득 방치하고 있는 모든 우정에 대해 생각한다. 최근 나는 거의 스무해를 같이 보낸 친구와 절교했다.

절교라는 단어가 가지는 유치찬란함과는 무관하게 우리의 절교는 제법 묵직했던 것 같다.

1년이 다되어가지만 둘 다 연락하지 않고 있다. 일단 내 쪽은 지금으로썬 연락할 생각이, 없다.


여자 둘의 우정이라는 감정과 형태는 좀 복잡미묘하다.

여기서 가장 까다로운 것은 ‘미묘’함에 있는 것 같다.

너와 나의 관계에서 발생한 감정 중에서도 부정적인 것들이 얇은 막처럼 수면 위로 올라올 때.

뭐라고 얘길 꺼내긴 애매하지만, 그냥 두면 그 얇은 막이 켜켜이 쌓여 질 것이란 예감이 들 때.

우정이란 이름으로 마주한 두 사람의 관계는 곤란해진다. 특히, 아주 가까울 수록.


절교한 친구와는 아주 가까웠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와 멀어지고 여러 차례 생각을 곱씹어보니

나는 그 친구를 잘 알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스무해의 세월이 야속하게도.

우리 역시도 수면 위로 올라온 미묘하게 불편한 얇은 막을, 제 때 걷어내지 못하고 이래저래 퉁치면서

시간을 보내다 파국을 맞이했다. 아주 가까우니까. 어물쩡 넘어가는 상황들이 잦아지는 것이었다.

말을 꺼내기도 아주 미묘한 것이니까. 괜히 그 미묘한 것으로부터 서로 얼굴 붉히기 싫으니까.


마지막으로 그녀가 한 말은 “너 니 이야기 안하잖아, 언제부터.” 였다.

나는 답하지 않았다.

내가 내 이야길 하지 않은 건, 네 반응 때문이야. 라고 말해봤자 뭐하겠나 싶어서였다.

졸렬하고 옹졸해보일 것 같았다. 꼴에 또 그런 건 싫어서.

미묘하게도 나는 그 친구가 어느순간부터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말 수가 줄었다. 연락이 뜸해졌다. 만나는 일도 줄었다.

어쩌면 절교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


알고지낸지는 스무해즈음, 맹렬하게 가까웠던 세월은 십수년.

그 십수년동안 우리가 같이 했던 건 우리 서로가 서로를 좋아했기 때문이라기보다

서로가 갈구했던 욕망이 같아서 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그놈의 술. 모든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일 같은 것.

물론 영화나 시를 좋아하는 취향 맺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외로움과 술에 대한 갈급한 마음이 같아서 난파 되지 않기 위해 서로 붙들고 지냈던 건 아닌가 싶은 거다.

막상 너와 나, 서로를 그만큼 사랑했냐 물으면 쉬이 답할 수 없는 관계.


그녀는 모를 것이다. 왜, 어느날 뜬금없이 지랄을 하더니, 관계를 깽판 놓은건데? 싶을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를 끝낸 것에 대한 이유를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감정을 해설을 해주는 것도 끝났다.

세월이 지나 이 모든 갈등이 시시해질 수도 있다. 고까짓것으로 스무해를 등졌어?하면서.

그러나 지금은 그렇다. 아직은, 돌아오지 않은 날들일 뿐이다. 우리가 함께한 모든 날들이.




'루'도반의 글

작가의 이전글우리에게 남은 건 내 마음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