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파인더스 FINDERS Sep 23. 2021

영민한 수집가를 찾아서

일러스트레이터 영민

수집하는 마음


무언가를 꾸준히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쓸모 없어 보일 지 모르는 것들도 수집가에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보물처럼 보이지요. 어린시절 껌을 감싸는 은박지, 예쁜 그림이 프린팅된 껌 봉지, 작은 플라스틱 장난감, 나뭇잎, 조약돌을 모아본 경험이 다들 있지 않나요?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가끔 정리되지 않은 책상서랍을 열어보면 어린시절의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친구들과 주고 받은 작은 쪽지들까지 서랍 안에 가득 들어차 있지요. 이런 작은 것들을 왜 버리지 못하고 작은 서랍 안에 꾸역꾸역 눌러 담았을까요. 수집하는 마음, 수집가의 태도는 어디에서부터 생겨난 것일까요.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 야나기 무네요시의 <수집 이야기>에서 힌트를 찾았습니다. 

아름다움을 제대로 소유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며, 그것은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스스로 아름다움의 원인이 되는 요인들(시각적이고 심리적인 요인)을 의식하는 것이다. 이런 의식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신이 그런 재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관계없이, 그것에 대하여 쓰거나 그것을 그림으로써 예술을 통하여 아름다운 장소들을 묘사하는 것이다.

- 알랭드 보통, <여행의 기술>   
무언가를 심도 있게 수집한다는 것은 그리 용이한 일이 아니다. 수집을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가 제법 필요하다. 사람들은 물건을 가지고 수집을 생각하지만, 그 물건을 좌우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물건만 가지고도 수집을 운위할 수 없다. 그런 때문인지, 좋은 수집은 의외로 드물다.

- 야나기 무네요시, <수집 이야기>


알랭드 보통의 말처럼 수집하는 마음은 아름다움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자체를 가지고 올 수도 있고, 아름다움에 대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또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말처럼 그저 예쁘다고 가져와서 쌓아놓기만 해서는 진정한 수집가라고 할 수 없어요. 수집한 물건을 어딘가에 잘 정리해 놓고 자주 들여다보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수집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책상 서랍 안에 쌓아놓기만한 저는 수집가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수집가를 찾아서


진정한 수집가.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찾아나섰습니다. 여전히 작디 작은 물건에 다음을 주고 소중히 여기며 노트에 잘 붙여놓은 사람. 그의 가방에는 늘 노트와 양면테이프가 들어있어요. 수집품을 주우면 붙일 도구들이죠. 바닥에 떨어진 사탕 껍질, 티백 봉지, 쿠키 상자를 보물처럼 소중히 다루는 그의 모습에서 수집가의 분위기가 오롯이 느껴집니다. 


일러스트레이터 영민은 골목을 기웃거리며 탐색 자체를 즐깁니다. 일상에서 발견한 무용하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가방 안에 소중히 담아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영민한 고양이를 닮았어요. 여행의 순간이 흐릿해질 때마다 영민은 여행지에서 가져온 영수증, 가게 명함, 우표와 엽서를 손으로 만지작거려요. 그러면 어쩐지 여행하던 그때가 내 손안에 있는 듯, 여행을 통째로 가진 기분이 들다나요. 



일러스트레이터 영민


영민의 작업실은 어떤 모습일까요. 수집품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깔끔하고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더라고요. 수납력이 좋은 큰 목재 도면함 안에 여행지에서 모은 물건들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이국적인 소품들이 하나하나 눈길을 끌더라고요. 영상으로 슬쩍 보여드릴게요.

목재 도면함 안에 담긴 영민의 수집품들.


그녀의 작업실 벽 한켠에는 영수증, 엽서 등이 붙어있습니다.

영민의 작업실 풍경. 영수증, 엽서들이 예술품처럼 붙여 있다.


영민은 여행지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모아옵니다. 여행에서 돌아와 가방을 열어보면 온갖 것들이 튀어나오는데 그중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노트라고 해요. 어디를 여행하든 빈티지 상점이나 오래된 서점을 꼭 들르는 편인데, 마음에 드는 노트를 발견하지 못하면 왠지 불안하고 허전하다는 그는 매일 저녁 여행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노트 위에 그날의 수집품들을 붙이고 짧은 메모나 드로잉을 곁들이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보고, 좋아하는 책을 다시 읽는 것을 좋아해요. 좋았던 도시에 다시 가는 것은 도시라는 책을 다시 펼쳐보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그 도시가 너무 그리울 때 사소한 수집품들이 붙여진 여행 노트를 펼쳐 봐요. 여행 중에는 평소와 다른 표정, 다른 순간이 보이잖아요. 그 특별한 순간을 언제든 원할 때 꺼내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어떤 멋진 사진으로도 다 표현해내지 못한 저만의 서사와 도시의 조각들이 노트 안에 담겨 있죠. 한 장 한 장 넘기고, 수집품을 매만지며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는 재미가 있어요.


일상의 조각들을 소중히 수집하는 영민은 진정한 수집가인 것 같아요. 다음에는 영민의 아름다운 수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이전 집 주인이 남기고 간 물건들. 영민에겐 소중한 수집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표지 완성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