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행가의 엇갈린 운명

낯선 곳에서 혼자 지도를 읽고 활용하는 힘을 가졌다면

by 파인더스 FINDERS

"이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하며 살자"라고 외치는 21세기 지리학자가 두 여성 여행가의 대담한 여행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19세기 영국 지리학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과 20세기 조선 예술가인 나혜석의 만남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전혀 다른 세기를 다른 모습으로 살았지만 두 여행가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담하게 세상 밖으로 여행을 떠났다는 것.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한 지리학자인 김이재 작가의 시선에는 두 여행가의 여행이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여행을 통해 보수적인 영국 남성들에게 당당하게 지리학자로 인정받은 이사벨라 버드 비숍과 달리,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선구적인 활동을 이끌었던 나혜석은 더 크게 꿈을 펼칠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기 대문입니다. 남편과 세계 여행을 다녀온 후에 그토록 파리에 다시 가고 싶어 했지만 다시 가지 못했습니다. 불꽃같은 열정과 눈부신 재능의 소유자였던 나혜석이 세계 지도를 펼치고 해외로 진출했다면, 그녀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김이재 작가는 '지리적 상상력'이라는 기준으로 두 여행가를 바라봤습니다. '지리적 상상력'이라는 기준으로 두 여행가를 바라봤을 때,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스스로의 삶을 개척했고 나혜석은 그럴 힘이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지리적 상상력이 어떻게 이 둘의 운명을 갈라놓았는지 김이재 작가의 이야기를 살짝 공개할게요.


지도력이 가른 두 여행자의 운명

삶을 바꾸는 많은 것 중 여행이 있다. 공간적 감수성과 지리적 의사 결정력이 삶을 바꾼다.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거나 멀리 여행을 떠나 꿈을 이루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이들의 이야기는 몇 번이고 들어도 가슴 벅차다. 빅토리아시대 최초의 여성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과 조선 여성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나혜석의 삶과 여행에는 공통점이 많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 혼자 지도를 읽고 활용하는 ‘지도력(地圖力)’에서 둘의 운명은 엇갈렸다.


빅토리아시대 최초의 여성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
IMG_6328.jpg 말을 타고 있는 사람이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다. ⓒ Coreana Cosmetics Museum

영특한 소녀였던 이사벨라는 난치병으로 고생했다. 의사가 처방한 여행지를 다녀오면 병이 나았던 그녀는 늘 새로운 곳을 여행했다. 풍부한 감성과 생생한 표현이 가득한 글로 그녀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미국, 중동, 동남아,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을 꼼꼼히 답사하고 정확하게 기록한 그녀의 여행기는 학술적 가치도 높았지만, 남성중심적인 왕립지리학회는 그녀의 업적과 공로를 인정하는 데 인색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환갑이 넘어 조선을 여행한 그녀는 조선의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들에게 매료된다. 고종과 명성황후부터 시골의 아낙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나귀와 나룻배를 타고 측량을 하고 사진을 직접 찍는 등 철저한 현지 조사를 수행한 그녀는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이라는 인생 최고의 역작을 발표한다. 보수적인 영국 남성들조차 이제 그녀를 지리학자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조선 여성 최초로 세계를 일주한 나혜석
나혜석 사진첩_25_51_(복제금지) Rha Album-25.jpg 사진전을 개최한 나혜석 ⓒ Suwon Museum of Art

나혜석 역시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점을 글과 그림으로 꼼꼼히 기록했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많았던 그녀는 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고 여성의 활동 영역을 넓혀온 조선의 ‘퍼스트 펭귄’이었다. 진명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동경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 나혜석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다. 1919년 3월 만세 운동에 참여해 5개월간 옥고를 치른 나혜석은 1920년 외교관 김우영과 결혼한다. 이듬해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 개인전을 열고 제1회 서화협회 전람회에 유일한 여성화가로서 작품을 출품한다.


‘잠이나 실컷 자 봤으면 좋겠다’ 던 열혈 워킹맘의 운명을 바꾼 건 세계 여행이었다. 젖먹이를 포함한 3명의 어린 자녀를 70대의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남편을 따라 해외 시찰에 나선 것이다. 1927년 6월 19일 부산진에서 출발한 그녀는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횡단한다. 당시 조선일보가 <나혜석 여사 세계 만유> 특별 기사를 실을 정도로 나혜석 부부의 세계 여행은 대단한 사건이었다. 30대 초반이었던 나혜석은 파리를 기점으로 유럽의 주요 도시를 남편과 함께 둘러본 후 미국으로 건너간다. 뉴욕, 워싱턴 DC, 나이아가라 폭포를 둘러보고 LA, 샌프란시스코까지 두루 여행한 그녀는 하와이를 거쳐 부산항에 도착한다. 20여 개월에 걸친 여행을 통해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유럽 여행에서 얻은 영감으로 창작한 작품 ‘정원’을 출품하기도 하고, ‘삼천리’ 잡지를 통해 여행기를 계속 발표한다. <소비에트 러시아행-구미유기1(1932)>를 시작으로 베를린, 파리, 런던, 뉴욕 등의 풍경과 서구 여성들의 생활을 소개했는데, <아아, 자유의 파리가 그리워(1932)>는 그녀의 파리에 대한 상사병이 얼마나 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최린과의 연애 스캔들에 이어 <이혼고백서(1934)>까지 발표해 사회적으로 완전히 매장된 그녀는 ‘가자, 파리로. 살러 가지 말고 죽으러 가자. 나를 죽인 곳은 파리다. 나를 정말 여성으로 만들어준 곳도 파리다. 나는 파리 가서 죽으련다’고 울부짖었다.


짧은 영국 체류 기간에도 영어를 공부할 정도로 지적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왕성했던 그녀였지만, 결국 파리에 다시 가지는 못했다. 모성애가 그녀의 다리를 잡았을까? 남편 없이 혼자 유럽으로 여행을 떠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걸까? 불꽃같은 열정과 눈부신 재능의 소유자였던 나혜석이 세계 지도를 펼치고 해외로 진출했다면 그녀의 운명이 달라졌을 것 같다. 나혜석이 꿈의 도시, 파리로 과감하게 이동해 계속 그림을 그렸다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 그녀의 작품이 걸리지 않았을까? 특히 <나는 조선과 이혼했다>는 책을 영어로 출판했다면 나혜석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했을 듯해서, ‘지도를 읽고 활용하는 힘’을 강조해온 지리학자로서 참으로 안타깝다.


나혜석은 찬 바다에 용감하게 뛰어들어 장렬하게 전사한 조선의 퍼스트 펭귄이었다. 편견과 조롱에 시달리던 그녀의 예술작품은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잡지를 통해 발표한 글들이 재조명되며 100년 뒤 그녀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치욕을 감내하며 외로운 전투를 치른 그녀의 삶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한국 여성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지금도 여전히 꿈꾸는 여성에게 가혹한 한국 사회이기에 나혜석은 앞으로도 계속 소환되고 재발견되지 않을까.



김이재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한 지리학자다. <부와 권력의 비밀, 지도력((地圖力)> <치열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운명의 지도를 뛰어넘은 영국 여자들> <내가 행복한 곳으로 가라> <펑키 동남아> 등을 썼다. 좋아하는 것 두 가지는 나비와 말괄량이 삐삐. 전 세계적으로 절망을 딛고 꿈을 이룬 사람들이 나비를 좋아했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때마다 신기하고 반갑다. 어린 시절 영웅 삐삐처럼 즐거운 삶을 개척하기 위해 마흔이 되던 해에 용감하게 이름을 바꿨다. '이'제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재'미 있게 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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