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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인더스 FINDERS Oct 29. 2021

인생을 바꾼 여행

근대의 선구적 두 여행가를 말하다

근대로 떠나는 여행

여행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어려운 시기이긴 하지만, 해외여행이 자유로웠던 시기에도 여행은 인생을 바꾸기 충분한 경험인 것 같아요. 19세기 20세기 해외여행이 특권이었던 시기에는 여행의 의미가 얼마나 더 컸을까요. 특히 여성으로서 여행이 더 엄격하게 제한되었던 시기에는 말이에요.

 

여기 19세기 영국인과 20세기 한국인이 각각 한국과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영국 지리학자이자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독립운동가, 작가인 나혜석이에요. 여행은 두 여행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이들의 시선에 포착된 여행지의 면면과 단상, 겹치고 엇갈리는 길 위의 관념을 따라 21세기 당신과 내가 근대로 여행을 떠나볼까요?


궁금증 하나

그런데, 타임머신을 타고 근대로 떠나기 전에 궁금증 하나가 생깁니다. 60세를 훌쩍 넘긴 여성 지리학자는 1894년 2월, 왜 조선 땅으로 여행을 떠났을까요?


이사벨라 버드 비숍은 어릴 때부터 몸이 허약해 갖가지 병세에 시달렸다고 해요. 의사는 그에게 뜻밖에도 여행이라는 치료를 처방했고, 그녀에게 여행가로서의 삶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준 100파운드로 1854년 미국으로 첫 여행을 떠난 그는 호주, 하와이, 북미, 인도, 러시아, 티베트, 중국, 이집트, 말레이 반도. 페르시아 등을 여행하며 건강을 되찾았는데요. 순종적 여성상을 미덕으로 삼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비숍은 155cm 단신으로 지구촌을 누비며 무려 15권의 책을 저술했습니다. 청일전쟁이 일어난 1894년부터 1997년 사이에 조선을 네 차례 방문했고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을 남겼고요. 이 책은 출간한 해에 5판을 찍을 정도로 화제를 모았고, 조선을 여행하는 외국인들에게 필독서가 됐다고 하네요.


궁금증 둘

나혜석의 여행은 세계 일주였을까요? 1년 8개월 동안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유럽 각지를 여행한 후, 미대륙을 둘러보고 태평양을 건너 돌아온 혜석의 여정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세계일주였습니다. 그 이전에 세계일주라 이름할 만한 여행은 1883년 조선 정부가 파견한 보빙사 일행과 1926년 허헌의 여행 정도가 있다고 하네요.


여행으로 사회적 고정관념과 인식의 틀을 깨며 스스로를 증명한 두 선구적 여행가. 이들이 남긴 여행기는 낯선 세계에 대한 기행문이 아니라 여행하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념이 요약된 명상에 가까운 기록인 것 같아요.


19세기 한국 여행

개항 후 한국에 온 서양인에게는 무능한 왕족, 부패한 관리, 미개한 사회 풍습으로 가득 찬 한국의 모습이 눈에 박혔다. 비숍 역시 제국주의적 시선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지리학자의 눈에 비친 조선은 탐험 욕구를 자극하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미지의 세계였다.   


비숍이 한국 여행 이후 쓴 책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내지 중 ⓒ Coreana Cosmetics Museum


1894. 2. 제물포항

우리를 태운 나룻배는 서울의 입구인 제물포에 정박했다. 정박지에서 바라보니 초라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일본 영사관, 비탈 위에 약간 새로운 지방 도시의 건물을 제외하면 건물다운 것이 없었다. 

비록 이슬비가 내리고 있지만, 제물포의 광경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섬이 점처럼 늘어서 있는 한강 어구의 제물포에서 서울의 나루인 마포까지 56마일은 배편을 이용해 항해하여 올라갈 수 있다. 

↘ 금수강산이란 말처럼 조선의 자연과 풍광은 회화적인 아름다움으로 인해 외국인 여행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그 찬미는 조선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제물포항에서부터 시작한다. 비숍 역시 “뒤에 몇 번의 계절과 환경에 익숙하게 되자, 나는 그곳에 우호적인 느낌을 갖게 되었다”라고 적었다.


1894. 5. 한강변

한강에서 보낸 5주 동안, 시간마다 풍광이 바뀌었다. 며칠이 지나자, 풍경은 더욱 아름다워졌을 뿐만 아니라 웅장하기까지 하여 온통 경이의 대상이었다. 봄의 아름다움이 펼쳐지면서 나무들은 푸르고, 붉고, 황금빛으로 생동감을 보였다. 상당히 하류인데도 물은 수정처럼 맑았으며, 티베트의 하늘처럼 창공에서 퍼져 나온 햇빛이 부서지는 물결에 반사되고 있었다. 

한강의 아름다움은 도담에서 절정을 이룬다. 이곳은 내가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아름다운 절경이었다. 강변의 입구에는 톱니 모양의 피라미드형 바위 세 개가 보초를 서듯 버티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많은 개머루가 덮여 있었다. 이곳이 신성시되는 곳이라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 보초석들의 높이는 40~83피트에 이르렀다.

비숍은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여행을 시작했다. 남한강과 북한강의 수로를 따라 이동한 여정은 다섯 주 반 동안 계속된다. 한강의 상류를 향해 여행하는 동안 서울에서와는 또 다른 한국인의 삶과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고 한강 유역의 동식물을 관찰했다.

수로를 이용해 한강 일대를 여행하던 비숍은 춘천에서 배를 버리고 북한강 상류를 따라 육로를 통해 금강산으로 향했다. 두 번째 육로여행은 1895년 11월 세 번째 방문 기간에 이뤄진다. 한국의 북부 지방을 관찰하기 위함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해 고양과 파주를 거쳐 개성, 평양에서 관서 지방을 지나, 대동강을 따라 안길령을 넘어 다시 평양으로 돌아오는 1,060리에 이르는 험하고 고된 여정이었다.


1894. 5. 21. 금강산

금강산 지역 서쪽 국경인 단발령을 통과하는 동안의 날씨가 화창했다. 산비탈에는 무성하고 향기로운 식물들로 가득 차있었으며 특히 참나무, 밤나무, 산사나무, 여러 종류의 단풍, 연분홍 진달래와 노란 개나리와 계곡의 백합들이 이끼 낀 대지를 덮고 있었다. 

정상 위에 있는 사당에서 바라보니 아름다운 광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언덕진 숲의 물결과 물의 반짝임, 언덕의 물결치는 듯한 모습, 금강산의 가장 높은 정상에 있는 6천 피트를 넘는 높이를 포함한 울퉁불퉁한 산의 병풍, 참으로 아름다운 약속의 땅이다!

↘ 금강산은 모험심과 도전 의식이 강한 여행가들의 발길을 끌었던 주요 여행 코스 가운데 하나였다. 금강산에 올랐던 비숍은 “가슴이 사무치도록 아름다운 광경 때문에 그 장관을 “붓끝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라고 할 만큼 금강산의 수려함을 극찬했다.


참고 자료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 신복룡 옮김, 집문당, 2000

근대 여성 여행자의 글쓰기-나혜석과 비숍의 여행기-, 김경민, 2021


20세기 유럽 여행

한 여성이 길 위에서 행복한 삶을 꿈꾼다는 건 불가능했던 시대, 혜석은 파리에 8개월간 체류하며, 스위스, 독일, 영국, 스페인 등 유럽 여러 지역을 여행했다. 파리의 가정집에서 3개월간 머물며 프랑스 가정의 생활을 경험하고, 야수파 화가의 화실에서 서양화를 배우기도 했다. 그에게 유럽 여행은 예술가로서의 나, 사람으로서의 나를 발견하게 한 시간이었다.

파리 근교 가정집에서 샬레 가족과 함께 머물던 시절의 나혜석(1920년대) ⓒ Han Kyung-Mi


1927. 07. 27. 파리 출발

오전 8시 스위스를 향해 떠났다. 들판에도 누런 보리가 깔려 있고 거기에는 진홍색 양귀비꽃이 피어 섞여 가관이었다. 여기서부터 제네바 호수로 흘러 지중해로 들어가는 냇물이 기차선로를 따라 이어진다. 두세 시간을 질주하는 동안 낮아졌다가 높아지고,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지고, 태양에 번쩍이는 폭포가 되었다가, 짙푸른 못이 되었다가, 잔잔한 쪽빛 못물이 되었다가, 비누 거품 같은 탁한 물도 된다. 

(중략) 금강산을 보지 못하고 조선을 말하지 못할 것이며 닛코를 보지 못하고 일본의 자연을 말하지 못할 것이오. 소주나 항주를 보지 못하고 중국을 말하지 못하리라는 것 같이 스위스를 보지 못하고 구라파를 말하지 못하리라는 것만큼 구라파의 자연 경색을 대표한 나라가 스위스요. 그중에서도 제일 화려하고 사람 운집한 곳이 이 제네바이다.

↘ 여행에서 볼거리를 찾아다니는 개인적 욕망을 감추고 사회 계몽이나 견문의 확대를 여행의 동기라고 말하는 남성 작가와는 달리, 혜석은 자신의 여행이 잘 알려진 유럽의 유명 관광지, 즉 ‘구경거리’를 찾아다니는 것임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1927. 08. 12. 브리엔츠 호수 횡단

이 호수는 스위스 특유의 고산이 주위를 둘러싸고 그 그림자가 비치는 까닭에 아름다움이 극치에 이른다. 기차가 달리는 시간은 2시간 동안이다. 호수에 닿을 듯한 호숫가로 질주하는데, 연이어 기이한 산봉우리가 출현하고 괴상한 바위가 나타나 푸른 산 맑은 물이 그치지 않음을 못내 기뻐하였다. 때는 마침 석양이라 이어진 산봉우리는 백옥 같은 흰 눈의 보관으로, 혹은 자색, 혹은 청색, 혹은 적색으로 변화한다. 보는 동안에 연기 같은 운무로 싸 버리고 갈 길을 바삐 하는 범선이 노질을 자주 한다. 난간에 한 줄기 낚시를 던져놓고 앉은 산수의 맑고 아름다운 풍광은 실로 선녀가 노는 자리라 할 만했다. 오후 7시에 인터라켄에 도착했다.

↘ 혜석은 이후 인터라켄과 융프라우에 도착해 천하의 절경에 감탄한다. “그림의 대상이 될 만한 곳이 무진장이다. 누구든지 스위스 구경을 나서거든 숙소를 정하지 말고 바랑 하나 짊어지고 나서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것이 스위스를 알기에 제일 상책이다”라고 한다. 스위스 수도 베른에 도착해서도 토머스쿡 여행사(1841년 문을 연 세계 최초의 여행사)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 시내 교통지도를 들고 여행에 나선다. 그녀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주로 미술관, 박물관이었다.


1927. 08. 

인터라켄, 융프라우 여행. 베른에서 시가지와 미술관 등 관람.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헤이그, 벨기에 브뤼셀 여행


1928. 03.~06. 파리

파리라면 누구든지 화려한 곳으로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파리에 처음 도착할 때는 누구든지 예상 밖인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공기가 어두침침한 것과 여자의 의복이 흑색을 많이 사용한 것을 볼 때, 첫인상은 화려한 파리라는 것보다 음침한 파리라고 안 할 수 없다. 그 본질은 오래오래 두고 보아야 파리의 화려한 것을 조금씩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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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 만유 1년 8개월 동안의 나의 생활은 이러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서양 옷을 입고, 빵이나 차를 먹고, 침대에서 자고, 스케치 박스를 들고 연구소(아카데미)를 다니고, 책상에서 프랑스어 단어를 외우고, 때로는 사랑의 꿈도 꾸어보고, 장차 그림 대가가 될 공상도 해보았다. 흥 나면 춤도 추어보고, 시간 있으면 연극장에도 갔다. 이왕 전하와 각국 대신의 연회석상에도 참가해 보고, 혁명가도 찾아보고, 여성 참정권론자도 만나보았다. 프랑스 가정의 가족도 되어보았다. 그 기분은 여성이요, 학생이요, 처녀로서였다. 실상 조선 여성으로서는 누리지 못할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장애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 혜석의 시선은 서구의 발전된 기술이나 도시의 시설들이 아니라, 도시 공간에서의 낭만적 연애와 자유로운 구미 여성의 삶에 놓여있었다. 파리에서 물랭루주를 구경 갔을 때 나체의 여자가 경쾌하게 춤을 추는 몸짓에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런던의 공원에서도 젊은 남녀가 “서로 끼고 드러누워” 있는 모습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베를린의 신년 새벽 거리에서는 누구라도 입맞춤이 가능하여 남녀가 쫓고 쫓기는 모습을 유쾌하게 그린다. 


참고 자료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 나혜석 지음, 이상 펴냄, 가갸날, 2018

<나는 나혜석이다>(2011 수원박물관 특별기획전 전시도록), 수원박물관, 2011

식민지 조선 여성의 해외여행과 글쓰기: 나혜석의 「구미만유기(歐美漫遊記)」를 사례로, 한지은,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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