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온 한 통의 편지

파인더스가 고른, 영감을 주는 시선

by 파인더스 FINDERS

※[파인더스의 시선]에서는 매주 한 번 '수상한 여행가'를 꿈꾸는 이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수상한 시선을 소개합니다. 이번 주 '파인더스의 시선'이 선택한 수상한 시선은 울릉 섬으로 이주한지 4년 차이자, 울릉에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기획운영하는 박찬웅 기획자입니다.


MYS_7388.jpg 나리분지의 나리상회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박찬웅 기획자. Ⓒ FINDERS



to. 육지의 너에게

안녕. 나는 울릉의 현포라고 해. 네가 있는 곳은 지금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내가 사는 울릉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동쪽 바다엔 서도랑 동도가 있어서 날이 좋을 땐 얼굴을 볼 수 있어. 가까운 곳에 학포랑 태하, 추산이랑 천부가 있어. 울릉의 팔방미인 나리도 빼놓을 수 없지.

이곳 시간은 섬의 시간에 맞추어 느리게 흘러가. 봄에는 향긋한 나물 향기가 울릉 섬에 진동하는데 모두들 산으로 밭으로 나물을 캐러 나가지. 여름에는 바다에서 수영하거나 스쿠버 장비를 챙겨서 바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가을에는 섬 전체가 붉은 단풍으로 물들고, 겨울에는 눈에 파묻히고 말이야.

겨울방학도 굉장히 길어. 11월부터 다음 해 3월까지는 섬 전체가 겨울방학이야. 울릉 현지인들은 육지로 놀러 가고, 섬에는 간혹 외지인들이 온통 새하얀 고립을 만끽하러 놀러 오곤 해. 눈 위에서 스키도 타고 말야.

울릉에 오면 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정말 많아. 학이 노니는 마을, 고래 꼬리를 닮은 마을, 송곳봉 아래 자리한 마을 등 마을마다 분위기도 전혀 다르고 품은 이야기도 달라. 숨겨져 있어 자칫 놓치지 쉬운, 현지인만 아는 산책길도 다 알려줄 수 있는데 말이야. 사계절이 다 좋은 울릉이지만, 8월은 특히 물 좋은 울릉의 파라다이스를 만끽하기 좋은 계절이야. 울릉에서 곧 볼 수 있길 바라.

from. 울릉의 현포가


투명한 바다, 원시림의 숲, 매일 다른 노을, 육지 고양이 같은 괭이갈매기, 투박하면서 정이 깊은 마을 주민까지. 울릉의 모든 오늘이 마음을 흔들었어요.


2주에서 한 달, 한 달에서 4년째 울릉에 살며 스스로 울릉의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온 노마도르 박찬웅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박찬웅은 울릉의 숨겨진 지역 이야기를 발견하고 콘텐츠로 만드는 청년집단 노마도르(nomador)의 대표입니다. 각종 문화행사를 기획하고, 레지던시를 운영한다. 울릉을 더 나은 거주지, 더 나은 일터, 더 나은 삶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노력해요.


기획자의 눈으로 본 울릉은 작은 섬마을이 아닌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알게 해준 삶의 공간이었습니다. 단 한 번도 육지와 연결된 적 없는 섬은 원시림 안에 여유로운 삶과 다정한 이웃을 품어내지요. 울릉 사는 사람은 울릉을 닮아가나봅니다. 이 글은 울릉처럼 말갛고 변화무쌍한 로컬기획자의 성장기이자, 육지에 사는 당신에게 부치는 한 통의 편지입니다. 박찬웅이 말하는 울릉에 사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삶의 노스텔지어를 실천하는 그의 능동적 섬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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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울릉의 깊은 원시림 속, 나리분지에서 신령수 가는 길목 위에 서 있는 박찬웅. (오) 학포항에서 바라보는 노을. Ⓒ FIN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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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학포항 위에 자리한 커피밴에서 맛볼 수 있는 화덕피자. (오) 학포해변에서 스노쿨링을 즐기는 사람들. Ⓒ FINDERS


"최소 4일 이상 머무르지 않을 거면 울릉에 오지 말라고 해요. 시간이 충분할 때 오라고 하죠. 짧은 일정으로 왔다 가면 '울릉에 왔다'는 한 문장으로 여행을 설명하게 되더라고요. 무엇이 좋았고, 그래서 꼭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은 별로 안 들고요."


박찬웅 대표의 말처럼 섬의 호흡에 맞춰 느리게 여행하는 이만이 울릉의 반전 매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골목에서 마주치는 주민들, 가게에서 만나는 상인들 대부분 처음에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이방인을 쳐다보지요.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유심히 봅니다. 당황해하는 에디터에게 박찬웅 대표가 힌트를 줍니다.


“울릉에서 제대로 된 로컬 여행을 하고 싶다면 꼭 기억해야 하는 말이 있어요. 바로 안녕하세요! 무뚝뚝하게 쳐다보며 다가오는 주민이든, 길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든 활짝 웃으며 먼저 인사하면 금세 표정이 확 풀리죠. 마치 손주가 찾아온 듯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래, 어디서 온 겨. 밥은 먹었능겨“라고 물으세요. 이 순간이 제게는 여전히 마법 같아요. 제가 울릉에 내려와 살고 있다는 걸 아신 후에는 혹여나 끼니 거를까봐 직접 만든 반찬이랑 김치를 대문 앞에 놓고 가시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챙겨주세요. 정이 깊은 어르신분이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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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 천부의 골목길을 걷다 마주칠 수 있는 풍경. Ⓒ FINDERS


울릉에 대한 궁금증을 물으면 막힘없이 척척 설명해주는 박찬웅 대표는 울릉에 대해 모르는 게 없어 보였습니다. 다음 이야기를 듣고는 울릉에만 있는 감각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가 부러웠어요.


“여름은 울릉 파라다이스를 만끽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에요. 처음 울릉에 머문 2주 내내 매일 스노클링을 즐겼어요. 극성수기에도 울릉은 육지의 해변처럼 붐비지 않아요. 특히 바닷속으로 들어가면 짙푸른 에메랄드빛에 돌돔, 방어부터 작은 물고기만이 떼 지어 놀고 있어 더 한적하고 고요하죠.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처럼 물결 따라 해초가 춤을 추는데 제 마음을 감싸주는 것처럼 포근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정말이지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행복이에요.”


울릉의 여름을 놓쳐서 아쉽다면, 겨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울릉의 겨울은 여름만큼이나 낭만적이거든요. “여름의 울릉이 모두에게 열린 파라다이스라면, 겨울은 선택받은 사람만이 섬에 들어와 자발적 고립을 즐길 수 있어요. 겨울에는 배도 잘 안 떠서 섬에 들어오기 힘든 데다 섬에 온다 해도 눈에 파묻히기 쉽기 때문이죠.”


울릉에서 느릿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박찬웅 대표가 전하는 울릉 여행의 기술을 살짝 공개할게요.



� 일정은 최소 4일

박찬웅 대표는 울릉에 오는 지인들에게 3박4일 이상의 일정만을 추천한다. 불가피하게 2박3일 일정으로 울릉에 온다면 일부러 울릉의 일부만 보여준다. 다 보고 가려고 욕심을 내는 순간, 관광지만 돌고 끝나는 피곤한 여행이 되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 여행을 기약하는 게 가장 좋은 여행법일지도.


� 비 오는 날, 숲으로

여행 와서 비 오면 망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울릉에서는 정반대다. 비 올 때의 원시림은 어느 날보다 매력적이다. 맑은 날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 나리분지에서 신령수까지 울창한 원시림을 걸어보자. 비 오는 날 숲에 들어서면 나무에 가려져 비도 덜 맞고, 진한 숲의 기운을 즐길 수 있다.


� 어디서든 멈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드는 수평선, 너른 하늘을 채우는 일몰의 색까지 멈추고 싶은 순간, 마음에 드는 장소를 발견했다면 언제든 멈추었다 가자.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말이 절로 나올 테니.



지금 당신이 사는 곳, 마음 주는 곳은 어디인가요. 함께 사는 이웃들, 친구들과 동네 산책을 나서고 공간에 이야기를 덧붙인다면 내가 사는 동네가 훨씬 사랑스러워지지 않을까요.



파인더스의 시선이 머문 한 마디

저는 말하는 여행자입니다.

지역주민들, 여행자들, 기획자, 디자이너 등 다양한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요. 지역의 가치를 고민하고 거기에 스토리텔링을 더해 사람들이 찾아오게 만드는 이유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어디를 여행하든 관광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지역에 접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포착하려고 노력하지요.



※ 본 콘텐츠는 'FINDERS 파인더스 Issue01. 수상한 여행가'의 수록 콘텐츠 일부를 재편집하여 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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