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입말 / 3-1-(2) 글말
말의 갈래는 입말, 글말, 전자말 세 가지입니다. 입말은 목소리를 통해 입으로 내는 말입니다. 이러한 말은 언제부터 하기 시작했을까요? 인간이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불을 사용하면서 익힌 고기 힘 안 들이고 씹으며 구강 발달하고 언어가 발달했다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4백만 년쯤 사람들의 목소리는 짐승과 달리 진화하다가 2십만 년쯤 오늘날과 같은 말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인간의 뇌가 발달하면서 대뇌피질도 발달합니다. 뇌는 뇌수, 뇌간, 소뇌, 중뇌, 대뇌, 피질로 발달하였는데 뇌수 쪽으로는 목숨과 관련되거나 본능과 관련되고, 피질은 말과 상상을 하는 쪽입니다.
프랑스 신경해부학자 브로카와 독일 신경학자 베르니케는 왼쪽 대뇌피질에 자리 잡은 브로카와 베르니케 영역에서 말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브로카 영역은 말을 하게 하는 곳이고 베르니케 영역을 말을 이해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베르니케 영역에서 이해를 합니다. 말을 할 때는 베르니케 영역에서 브로카 영역을 거쳐 운동성 언어중추를 통해 입으로 말을 합니다.
우리나라 말은 조상에 대하여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우리말은 우랄-알타이어 중 알타이어 계통이라고 하는 설도 있지만 우리말은 독자적인 언어를 형성했다고 합니다. 우리 겨레는 중국의 한족보다 먼저 중원을 지배하고 우리말을 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 겨레가 한반도 북쪽 대동강 유역에 산 것은 60만 년 전이고 한강과 금강 유역에 산 것은 30만 년 전이라고 합니다. 구석기 말엽 1만 3천 전에 지금의 충북 청원군에서 벼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이는 중국의 벼농사보다 3천 년이나 앞선다고 합니다. 2003년 청주시 소로리에서 발견된 볍씨는 15000년 전의 것이었다고 합니다. 우리 겨레는 세계 최초로 벼농사를 지었고 콜린 렌프류는 《현대 고고학의 이해》에서 쌀의 기원을 한국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청동기 시대 우리 겨레의 삶은 최고의 앞선 문화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청동기 유적으로 남아있는 고인돌 무덤은 4만 개 정도인데, 고인돌 무게가 몇십 톤 몇 백 톤 되는데 이는 많은 세력을 거느리고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청동 거울, 방울, 비파형 청동칼은 그 수준이 중국과 차원이 다르게 뛰어났다고 합니다. 기원전 2300여 년 즈음에 환웅 임금이 나라를 세우고 단군 임금이 다스린 배달나라를 세웠습니다. 고조선은 중국의 철기문화보다 앞선 덕분에 철로 만든 화살촉과 갑옷을 수출하기도 했고 일본에도 건네주기도 했습니다. 우리 겨레들은 구석기 이후 오늘날 우리와 비슷한 말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우리 겨레의 선사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겨레의 입말이 의사소통을 잘하게 한 덕분입니다.
입말은 홀소리와 닿소리가 만나 소리를 넘어 말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한 뜻을 전달하지 홀소리와 닿소리 모두 30여 개를 분명하게 사용하면서 뜻을 구분하고 마음을 말로써 주고받았을 것입니다. 입말은 겨레마다 만드는 소리도 다르고 그 소리에 뜻을 담아내는 것도 다릅니다. 이러한 다른 소리 속에 다른 삶을 각각 담아내고 그 말로 문화를 전달하고 삶을 발전시켰습니다. 우리 겨레가 사용하는 말은 목소리와 입의 모양에 따라 발음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느낌과 생각을 잘 전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나라보다 의사소통을 잘하여 청동기 철기 문명을 발전시켜 동북아시아의 중심 나라로 수천 년을 누렸습니다.
인류는 지식과 정보를 후대에 전달하면서 문명이 날고뛰듯 진화했습니다. 지식과 정보를 전달한 것은 글말입니다. 입말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있지만 글말은 시공을 뛰어넘어 지식과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기원전 4천 년~3천 년 큰 강을 중심으로 4대 문명이 발생하였습니다. 나일 강변의 이집트 문명,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도의 인더스 강 유역의 인더스 문명, 중국 황하 유역의 황하 문명 등입니다. 큰 강가는 땅이 기름지고 농업에 유리한 물이 풍부하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노동력이 많이 물을 다스리는 공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공사를 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력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은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말을 하기도 하고 글자를 만들어 지식과 정보를 전달했습니다. 우리 겨레도 동북아시아의 중심 겨레로 짐승의 뼈에 새겨 쓴 ‘각골 문자’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상나라는 갑골문자를 만들어 춘추전국시대를 지나 진나라와 한나라에 이르러 금문과 전문을 거쳐 한문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중국은 진시황 때 대전이라는 전서를 새롭게 발전시켜 소전이란 한문을 사용합니다. 그 이후 한나라 무제는 서역과 흉노를 굴복시키고 우리 겨레를 요하 동녘으로 밀어내어 고조선이 위기를 맞습니다. 한무제 때 사마천은 『사기』라는 역사책을 써서 우리 겨레의 삶을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켜버립니다. 이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는 한문을 들여와 사용하였고 세종대왕이 글자를 발명하여 우리 한글을 쓸 때까지 한자를 사용했습니다.
서양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쐐기글자와 이집트 문명의 그림글자를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리스는 기원전 8세기부터 헬라 말을 글말로 적으면서 서유럽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서양의 알파벳은 그리스 사람들의 글자인 첫째 알파와 둘째 베타를 이름을 합쳐 부르는 이름입니다.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의 알파벳을 간추리고 가다듬어서 로마자를 로마자를 만들고 라틴말을 사용하여 라틴문명을 일으키고 발전시킵니다. 특히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서사시를 라틴말로 적으면서 라틴문명이 발전합니다. 그러다가 15세기 이후에는 이탈리아 말, 스페인말, 프랑스 말, 영국 말이, 19세기 이후 독일말, 20세기 미국 말 등이 그 세력을 떨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류 문명의 진보는 말의 진보와 그 맥락이 같습니다. 글말이 그림글자, 뜻글자, 음절 글자, 음소 글자 등이 있는데 이중에 가장 의사소통을 하기 쉬운 것은 음소 글자입니다. 음소 글자는 입말을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우리 겨레가 글자를 가진 것은 세종대왕 덕분입니다. 세종대왕이 1443년에 만들고 1446년에 훈민정음이 이루어졌습니다. 1446년으로부터 575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 겨레는 세계의 으뜸 국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배달 글자는 인류가 만든 글자 중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쓰기 편리합니다. 배달 글자는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서 모든 소리를 적을 수 있는 '음소문자'입니다. '뜻 문자'인 한자나 '음절 문자'인 일본 문자는 비할 게 못 됩니다. 같은 음소문자인 로마자 알파벳에 견줘도 훨씬 과학적입니다. 먼저 소리가 나오는 곳 모양을 분석해서 문자의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입과 이, 혀와 목구멍 모양으로 자음을 만들었고, 모음엔 하늘과 땅, 사람을 뜻하는 철학까지 담았습니다. 어느 문자보다 규칙적입니다. 자음에 획을 더해 된소리나 거센소리를 만드는 방식이 규칙적이고, 모음을 합성하는 방식도 규칙적입니다. 특히 이 규칙들은 5백여 년이 지난 요즘의 스마트폰 문자판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모음의 합성 원리를 가져다 '천지인' 입력방식이 나왔고, 자음에 획을 추가하는 규칙을 이용해 '나랏글' 방식이 나왔습니다. 쉽게 익혀 입력할 수 있습니다. 또 자음과 모음, 자음, 즉, 초-중-종성을 그대로 풀어서 쓰지 않고 모아 쓰는 방식이 규칙적이고 실용적입니다. 한 실험에 따르면 자모음을 풀어쓰는 것보다 모아쓸 때 2.5배 더 빨리 읽을 수 있습니다.
한 글자가 대부분 한 소리를 냅니다. 영문 알파벳의 A는 Apple과 Garden, Water에서 모두 다른 소리를 내지만, 한글 모음 'ㅏ'는 아리랑에서든 아버지에서든 같은 소리를 냅니다. 또 종성, 즉 받침 글자를 따로 만들지 않고 초성과 같은 자음을 쓰도록 한 것도 돋보이는 점입니다. 배달 글은 아름답고 다양한 글꼴을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글꼴은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디자인을 할 때 아름답고 예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