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손석희 앵커의 말-2) 민주주의와 인본주의 저널리즘
손석희 앵커가 가졌던 삶의 원칙이나 언론관이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원칙과 진실은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사람의 도리를 깨우치는 것은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잘 변하고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고 편한 대로 살아갑니다. 사람이 도리를 알고 깨우치는 것보다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람 중에는 살아가면서 상황과 입장에 따라 사람의 도리와 원칙을 쉽게 버리거나 현실 속에서 타협하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삶의 원칙이 작고 단순하더라도 소중한 삶의 가치라고 생각하면 그것을 일관되게 오래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손석희 앵커가 중시했던 삶의 원칙과 행동이 어떻게 일치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하거나 그에 대하여 글을 쓸 때, 참 조심스럽습니다. 그 사람을 온전히 알기 어렵고, 알거나 알았더라도 그 사람이 이 글을 쓴 뒤 어떻게 살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특히 살아있는 사람에 대하여 글을 쓰는 것은 더 조심스럽습니다. 변하지 않고 한결같은 삶을 사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그래서 일관된 삶을 살아갈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삶을 바탕으로 손석희 앵커가 중시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손석희 앵커가 직접 쓴 <풀종다리의 노래>를 오래전에 읽었고, 그 속에 아동문학가인 부산MBC의 한 사원이 쓴 ‘풀종다리의 노래’ 마지막에 나오는 “가자 우리 모두/ 닫힌 입 열어주고/ 막힌 귀 뚫어주는 /노래 부러러”라는 대목입니다. 닫힌 입, 막힌 귀를 열어주기 위해 그가 걸었던 저널리스트의 길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나침반의 끝이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듯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강준만 교수가 쓴 <손석희 현상>, 정철운 <손석희 저널리즘> 부경복 <손석희가 말하는 법>을 참고하였고 <풀종다리의 노래> 이후 28년 만에 <장면들> 책도 참고하였습니다.
<장면들> 375쪽에 “민주주의와 인본주의. 그것이 내가 ‘순진’하게 말하는 거대담론이다. 플로리다의 뜨거웠던 태양 아래서 처음 만난 그는 그 두 가지를 실천하는 데에 시민운동이란 도구를 택했던 것이고, 나는 저널리즘이란 도구를 택했다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아래 저널리즘에 대한 생각도 말하고 있습니다. ‘저널’이라는 자신의 생각이 포함된 일기 속에 ‘이즘’이라는 일관되고 체계적인 관점을 갖고 저널리즘이라는 도구를 민주주의와 인본주의를 위해 사용할 것이라는 소회를 밝히고 있습니다.
“JTBC의 저널리즘은 이미 일관된 사고체계가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 진보’라는 건 이미 공유돼 있지요. 저는 그것을 실천하는 데에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사실, 공정, 균형, 품위였습니다. 그리고 언론의 역할론에 대해서도 부임 초에 제시하고 우리 뉴스의 모토로 삼은 바도 있습니다. 즉, 힘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고, 힘없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뉴스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고요. 그 방법론도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요즘도 자주 쓰는 '한걸음 더 들어가는' 뉴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언론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 언론의 목적은 명확하게 두 가지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즉,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고 실천한다는 것. 그동안 우리가 행해왔던 많은 뉴스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이 글 속에 손석희 앵커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언론의 방향과 목적이 들어가 있습니다. 또한 <장면들> 376~377쪽에 합리적 진보와 문제의식을 통해 언론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인본주의든 민주주의든 모두가 거부할 수 없는 거대 담론이니 반론이나 의문은 안 갖는데, '합리적 진보'는 언론으로선 내놓고 천명한다는 게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같이 일해온 후배들도 그런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나의 대답은 또 다른 이견을 낳겠지만, 내 나름으로는 단순하다. ‘문제의식이 있어야 문제를 발견할 수 있고, 문제를 발견해야 문제를 제기할 수 있으며, 문제를 제기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식은 의심하는 것에서 출발하며, 의심은 모든 기존의 현상을 향한다. 그러니 언론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체제와 현상에 안주해선 안 된다. 그것을 굳이 우리가 쓰는 언어로 표현하자면 ‘진보’다. 의심은 변화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문제를 발견하고 제기하는 과정은 극단적 이어선 안 되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그 ‘합리적’인 자세 속에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도 있어야 한다는 것. 알랭 드 보통이 말한 ‘지혜’도 아마 그것과 맥이 같으리라고 본다. 나는 '합리적 진보'를 그렇게 정의한다. 그렇게 나아가면 인본주의와 민주주의도 실현의 가능성에 속하는 담론이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이것이 단지 이상향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보아온 암담함이 그만큼 깊고 크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기득권이 돼버린 언론들과 유튜브 등에서 활개 치는 온갖 모욕과 가짜 뉴스들, 그리고 저열한 댓글 등으로 상징되는 유사 시민사회는 미디어 생태계라는 현실 세계 속에 엄연히 존재한다.”
언론인은 지식인이고 지식인은 자신의 학문적 소신과 신념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손석희 앵커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신념과 행동양식은 ‘합리적 진보’입니다. 합리적 진보는 의심 나는 것을 합리적으로 문제 제기하는 것입니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배려와 이해라고 했습니다. 문제를 발견하여 그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이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손석희 앵커의 절제된 표현은 이해와 배려를 하려는 표현의 지혜라 할 수 있습니다. 품위 있는 언론은 표현의 자유 못지않게 표현의 지혜를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표현은 최대한 존중하되 표현의 지혜를 발휘해야 품위 있는 언론이 되고, 그 속에 인권과 신뢰가 높아집니다.
손석희 앵커에 대한 기대는 JTBC 뉴스에 대한 신뢰이기도 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지나며 터널 속에서 빛을 보는 기쁨으로 손석희 앵커의 뉴스를 보며 탁한 공기 속에 숨을 쉬는 느낌이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500일 어젠다 키핑을 하며 인본주의를 실현하고 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려 했던 고민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들이 간절하게 바라는 진실규명을 향해 의제를 유지했습니다. 죽은 목숨을 돌이킬 수 없으나 무엇 때문에 그렇게 참혹한 일이 일어났는지 원인을 규명하고자 노력하며 진실을 추구하였습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을 거치며 민주주의를 소중하게 지키는 것이 우리 삶을 더 진보하게 한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늘 문제의식을 가지고 합리적 사고를 통해 사실을 보도하기 위해 팩트체크를 했고, 공정과 균형 있는 보도를 위해 논리적이고 체계적 보도를 했습니다. 품위 있는 언론의 모습을 ‘앵커 브리핑’을 통해 사회학을 너머 인문학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또한 ‘문화초대석’은 사람이 만든 문화의 꽃의 더욱 빛나게 했고, 가슴 아픈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손석희 전 앵커는 2021년 11월 18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출간한 책 ‘장면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책에 나오는 ‘조국 사태가 괴로웠다’고 말을 합니다. “당시 모든 것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으로 수렴되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그것이 그렇게 건강한 구조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물론 열심히 한 분들도 계시지만, 제가 아쉬웠던 건 저희나 다른 언론들도 좀 더 검찰개혁 문제에 정착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본질은 ‘검찰개혁’이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온갖 쟁투 끝에 지금은 그때만큼 검찰개혁에 대한 정당성이 덜 운위 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그때는 그랬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하여 “그 선택밖에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정부 차원이나 개인이나, 또 다른 선택의 여지는 있지 않았을까 한다”라고 아쉬웠던 마음을 말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JTBC의 보도에 대하여 아쉬워했던 부분입니다. 조국의 편을 더 들어달라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하여 균형을 잡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을 것입니다. 진행자 김종배 씨는 'JTBC를 지지했던 시청자들이 조 전 장관 관련 보도가 나온 뒤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낼 때 아프지 않았냐'는 질문을 하니 손석희 앵커는 “그때나 지금이나 지주 반정(砥柱反正)의 생각은 늘 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