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尺)
'내로남불'의 시대입니다. 사람이나 상황을 평가할 때 잣대는 하나라야 공정한데 그렇지 못한 시대입니다. 어떤 사람은 잘하면 당연하다고 말하고 잘못하면 그것밖에 못하냐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잘하면 정말 대단하다고 칭찬하고 못하면 그 정도면 괜찮고 잘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평가를 하면 공정하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이 아홉을 잘하다가 하나를 못하면 더 크게 욕을 먹습니다. 반면에 악한 사람은 열을 잘못하다가 하나를 잘하면 착하다고 칭찬합니다. 정말 불공정한 내로남불 잣대입니다. 자기 진영에 있으면 상처를 닦아주고 남의 진영이면 상처도 흠으로 보고 상처를 헤집어 더 아프게 합니다.
진영논리가 너무 심해 확증편향과 집단 극화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언론은 더욱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좌파가 조금 잘못하면 도덕성과 윤리의 잣대로 엄청 나무랍니다. 반대로 우파가 같은 잘못을 저질러도 큰 비판을 받지 않습니다. 강남좌파가 조금 잘못하면 온갖 비판을 하지만 강남 우파에 대한 잘못은 말하지 않습니다.
강준만 교수는 2019년 10월 13일 <진보의 위선 관리법> 칼럼에서 “진보는 지금 이대로의 세상이 문제가 많다며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 과정에서 변화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향해 비판을 하면서 사실상 ‘도덕적 우월감’을 드러내거나 과시하기도 한다. 그래 놓고선 보수와 같은 수준의 도덕을 누리겠다니, 이게 말이 되는가? 물론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유권자가 많다는 사실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진보의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하거나 위선과 이중성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면 그 책임의 무게가 더 무겁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평소에 자신이 다른 사람을 비판했다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 적절합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행위를 했다면 비판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조국 사태’를 진보의 위선으로 비판하는 것은 공정한 비판이라 할 수 없습니다. 말보다 실천을 하여 책임윤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은 마땅한 말이지만 이 모든 것을 진보의 위선으로 규정하는 것은 동일한 잣대로 사안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악보다 위선이 나쁜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는 보수와 진보 모두 동일한 잣대로 보아야 할 사안입니다. 같은 자로 무게를 달아 더 나쁜 것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밝혀야 합니다.
이재명 후보는 조국 장관에 대하여 사과를 하며 “민주개혁 진영은 사실 더 청렴해야 하고, 작은 하자도 크게 책임지는 것이 맞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추미애 장관이 쓴 ‘나는 고발한다 시대의 비겁함을’이라는 글을 읽고, 한 개인의 인권을 짓밟거나, 조국 장관이 ‘공공의 적’이 되게 하거나 만드는데 침묵하며 동조하지 않았는지 돌이켜 봅니다. 대통령 후보로서 이재명 장관이 사과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권 남용과 무리한 수사로 인한 문제점을 더 분명하게 지적했어야 했습니다.
이중 잣대 속에 민주개혁은 도덕적으로 더 우위에 있다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러한 사고방식은 문제가 있습니다. 직업윤리와 도덕성은 누구나 지녀야 할 품성입니다. 똑같은 잣대로 평가해야지 왜 진보라고 더 도덕적이어야 하고 크게 책임져야 합니까? 보수는 잘 살아야 하고 진보는 못 살아도 바르게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도덕적 잣대는 진보든 보수든 같은 기준으로 보아야 합니다. 진보라서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할 할 이유는 없습니다. 공정하게 같은 잣대로 검증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책임의 무게를 크게 느껴 간접 책임도 책임으로 느끼는 사람이 있고, 아무 나는 책임의 무게를 느끼지도 못하고 남 탓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양심의 무게와 책임의 무게는 동일한 잣대로 평가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의 도덕적 책임과 양심의 무게를 더 무겁게 지우는 경향, 도덕적 책임을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경향은 고쳐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노회찬 의원은 이러한 이중 잣대와 검찰, 언론 때문에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도덕성에 대한 비난, 양심과 부끄러움을 더 크게 느낀 두 사람을 우리가 가혹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았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윤석열 검찰은 대중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공정에 대한 요구, 강남좌파나 386 세대에 대한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것에 대한 불만을 언론과 합작하여 대중의 비판에 기름을 부어 조국 장관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공분을 하게 했고 한 가족의 인권을 짓밟았습니다. 검찰과 보수 언론은 국민의 공분을 살만한 입시 비리, 군병 역문제, 부동산 투기, 사모펀드 같은 부분의 위선을 들추어 불법을 지적하거나 불법이 나오지 않으면 불법이 아니더라도 도덕성이 문제가 있다며 도덕성 검증을 명분으로 가족 인질극을 벌였습니다.
요즘 윤석열 행보를 보면 검찰개혁과 이른바 '본부장' 비리를 막기 위해 조국 장관을 막고 차기 대권주자가 될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위하는 척하면서 자신의 정치행위를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면에 윤석열은 법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정치를 했다고 했지만 본인과 부인, 장모의 비리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윤석열 본인의 징계처분이 정당했다는 판결이 나왔고, 도이치모터 주가 조작도 사실로 드러났으며 윤석열 장모 최 씨는 법정 구속되었고, 윤우진도 구속되었습니다. 하지만 언론은 이중 잣대로 윤석열 후보를 검증하지 않고 김건희도 검증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의 내면에 작동하는 가치에 관한 문제나 사상을 도덕성이라는 잣대로 검증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여론 몰이식으로 도덕성을 검증하여 인권을 짓밟는 것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직자에 대한 도덕성 검증은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구분하되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 부분을 엄격하게 검증해야 합니다. 권력을 사적으로 쓸 수 있거나 남용할 여지가 있는 부분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합니다. 정의의 여신이 두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정의를 심판하는 것은 공정한 잣대로 평가하기 위한 것입니다. 윤석열도 대통령 후보로 나온 이상 엄격한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 후보자 토론도 많이 하고 국민에게 역량과 자질 검증을 받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