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5】 240/498 외교사절 의전과 예절
(공자께서는) 궁궐에 들어가실 때는 몸을 구부려 마치 문이 작아 수용하지 못하는 것처럼 했다. 서 계실 때에는 문 가운데 서지 않았으며, 다니실 때는 문지방을 밟지 않으셨다. (임금이 계신) 자리를 지나실 때는 얼굴빛을 가다듬고 발걸음을 빨리하고 말씀은 부족한 것처럼 하셨다. 옷자락을 걷어 당에 오르실 때,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리시며 숨소리를 낮추어 숨을 쉬지 않는 것같이 하셨다. 나오셔서 섬돌 한 계단을 내려서는 얼굴빛을 푸시고 온화하고 기뻐하시며, 계단을 다 내려서서는 빨리 나아가시되 새가 날갯짓하듯 하셨다. 원래 있던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는 평온한 모습이었다.
入公門할때 鞠躬如也하사 如不容이러시다 立不中門하시며 行不履閾이
입공문할때 국궁여야하사 여불용이러시다 입부중문하시며 행불이역이
러시다 過位하실새 色勃如也하시며 足躩如也하시며 其言似不足者러시
러시다 과위하실새 색발여야하시며 족확여야하시며 기언사부족자러시
다 攝齊升堂하실새 鞠躬如也하시며 屛氣하사 似不息者러시다 出降一
다 섭자승당하실새 국궁여야하시며 병기하사 사불식자러시다 출강일
等하사는 逞顔色하사 怡怡如也하며 沒階하사는 趨進翼如也하며 復其
등하사는 영안색하사 이이여야하며 몰계하사는 추진익여야하며 복기
位하사는 踧踖如也러시다
위하사는 축적여야러시다
궁궐에 들어가는 과정과 자기 자리에 돌아오는 과정을 서술하고 있다. 조정의 법도에 맞게 예의를 다하는 모습을 보면 좀 지나칠 정도로 조심한다는 느낌이다. 수직적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 현재와 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본질은 큰 차이가 없다.
사람은 말과 행동이 품격이 있어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당당하게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품위 없는 태도로 인하여 부정적 인식하게 하면 안 된다. 문을 열고 들어갈 때 뒷사람이 오는지 살펴서 잡아주고 문 가운에 서 있으면 다른 사람이 다니기 불편하니까 옆으로 서서 통행을 편하게 해야 한다. 요즘은 문지방이 거의 없지만 문지방을 밟고 지나가면 경솔해 보인다. 계단을 오를 때 시선을 아래로 하여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도록 하고 계단을 내려갈 때 조심하여 다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자잘한 예의가 모여 태도가 되고 품격이 된다.
홀(왕명을 받는 사신이 가지고 가는 표시)을 잡으시면 몸을 굽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는 듯 공경하시고, 올리실 때는 읍하시듯이 하시며, 홀을 내리실 때는 물건을 주는 것같이 정중하게 하시고, 얼굴빛을 긴장하여 두려운 듯하시며, 발걸음을 종종걸음으로 좁게 자주 떼면서 앞사람을 따르는 듯하셨다. 예물을 드릴 때는 부드러운 얼굴빛을 하셨으며, 향례에 참석하여 개인적으로 만날 때에는 유쾌하고 즐겁게 하셨다.
執圭하사되 鞠躬如也하사 如不勝하며 上如揖하고 下如授하며 勃如戰
집규하사되 국궁여야하사 여불승하며 상여읍하고 하여수하며 발여전
色하며 足蹜蹜如有循이러시다 享禮에 有容色하시며 私覿에 愉愉如也러시다
색하며 족축축여유순이러시다 향례에 유용색하시며 사적에 유유여야러시다.
공자가 외교 사절로 갔을 때, 외교 사절의 징표인 옥으로 만든 홀을 잡는 모습이다. 앞부분은 공식 의례를 하면서 홀을 잡는 동안의 태도와 예의를 말하고 있다. 뒷부분은 외교적 연회를 하면서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뒷부분의 사람과 소통방법은 생각할 부분이 있다. 사람과 관계는 예의를 다해야 한다. 어느 누구든지 사람은 존중받는 느낌이 들 때 기분이 좋다. 윗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아랫사람도 존중하며 대해야 한다. 늘 표정을 밝게 하고 긍정적이고 유쾌한 태도를 지녀야 소통이 잘 되고 관계가 행복하다. 유쾌하게 함께 웃으며 마음이 통하면 만사형통이다. 늘 상대방을 존중하며 유쾌하면 소통이 잘 되어 행복하다.
소통(疏通)이란 막히지 않고 잘 흘러가는 것이다. 내 몸도 혈관이 막히지 않아야 소통이 잘 되고 먹은 음식도 소통이 잘 되어야 위장이 편안하다. 고기만 먹으면 막히기 쉽다. 그래서 채소(菜蔬)를 먹는다. 채소라는 글자도 보면 트일 소(疏)자가 들어간다. 소통은 막힌 곳을 트이게 한다. 웃음과 유머는 사람들 사이를 트이게 하는 요소다.
군자는 청색에 붉은빛이 도는 감색과 붉은빛이 도는 검붉은 천으로 옷깃을 장식하지 않았으며, 붉은빛과 자주색으로 평상복을 만들어 입지 않으셨다. 더운 여름에는 올이 가는 홑 칡 베옷과 거친 칡 베로 만든 옷을 걸쳐 속옷이 비치지 않도록 하셨다. 검은 옷에는 양가죽으로 만든 가죽옷을 입으셨고, 흰옷에는 사슴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으셨으며, 누런 옷에는 여우 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으셨다. 평상시에 입는 갖옷은 길게 하되, 오른쪽 소매를 짧게 하시었다. 반드시 잠옷이 있었는데 길이가 한 배 반이었다. 방의 자리는 여우와 담비의 두꺼운 털가죽을 깔고 앉으셨다. 탈상한 뒤에는 장신구를 착용하지 않으신 적이 없으셨다. 조례와 제례의 예복이 아니면 천을 줄여 반드시 좁게 하시었다.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거나 검은 관을 쓰고 조문하지 않으셨다. 음력 초하루 길월에는 반드시 조복을 입고 조회를 하시었다.
君子는 不以紺緅飾하시며 紅紫 不以爲褻服이러시다 當暑하사 袗絺綌
군자는 불이감추식하시며 홍자 불이위설복이러시다 당서하사 진치격
을 必表而出之러시다 緇衣엔 羔裘요 素衣엔 麑裘요 黃衣엔 狐裘니
을 필표이출지러시다 치의엔 고구요 소의엔 예구요 황의엔 호구니
라 褻裘는 長호되 短右袂러시다 必有寢衣하시니 長一身有半이라 狐貉
라 설구는 장호되 단우몌러시다 필유침의하시니 장일신유반이라 호락
之厚로 以居러시다 去喪하사는 無所不佩러시다 非帷裳이어든 必殺之
지후로 이거러시다 거상하사는 무소불패러시다 비유상이어든 필쇄지
러시다 羔裘玄冠으로 不以弔러시다 吉月에 必朝服而朝러시다
러시다 양구현관으로 불이조러시다 길월에 필조복이조러시다
공자님은 바탕과 무늬가 잘 어울리는 문질빈빈을 몸소 실천 했다. 어울리는 색상을 맞춰 입었고 외출옷과 잠옷을 구분하여 입었다. 옷은 시간과 장소 상황에 맞게 입어야 한다. 잠옷을 아무 데나 입고 돌아다니면 온갖 세균이 옷에 묻는다. 예의를 차려야 할 때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가야 한다. 옷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게 인식되고 신뢰도도 다르다고 한다. 또한 옷은 단순하면서도 세련되고, 편리하면서도 아름답고 자신의 정체성과 개성을 드러내면 좋다. 옛날 사람들도 옷을 중시했다. 우리는 늘 ‘의식주’라고 하여 옷을 맨 먼저 이야기한다. 중요도로 보면 식과 주가 더 중요한데 ‘의’를 먼저 두는 것은 그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표현하는 것이 옷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관직과 관계에 따라 벼슬아치의 공복을 네 가지 색으로 구분하여 제정한 복색 제도가 있었다. 신라 법흥왕 때는 붉은 자(紫)색, 검붉은 비(緋)색, 초록 녹(綠)색, 푸른 청(靑)색을, 고려 시대에는 붉은 자(紫), 밝게 붉은 단(丹)색, 검붉은 비(緋)색, 초록 녹(綠)색으로 구분하였다. 조선 시대에는 오방색인 검은 흑(黑)색, 푸른 청(靑,綠)색, 붉은 적(赤색), 하얀 백(白)색, 누런 황(黃)색 등으로 옷을 지어 입었다. 과거에는 복색이 그 사람의 등급을 드러내는 시대였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유행을 이끌어 가거나 개인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낸다.
스티브 잡스의 청바지와 검은색 터틀넥, 마크 저커버그 회색 티 등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정체성은 지속성과 관련이 있다. 한 가지 옷을 계속 입다 보면 정체성이 생긴다. 그리고 결정 피로를 없애고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게 한다. 사람은 하루에 200회 이상 자잘한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한다고 한다. 옷 입는 것, 신발 신는 것 등을 결정하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본질에 집중할 수 있다. 제복의 매력은 바로 결정 피로를 없애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