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법정스님의 말하기 3) 부드러움과 일기일회
3) 부드러움과 일기일회
날이 차갑습니다. 운정 호수공원에 얼음이 가득합니다. 아직 얼지 않은 얼음 사이로 물이 흘러갑니다. 비둘기 한 쌍 날아와 달게 물을 마시고 오래 앉아 있습니다. 법정 스님이 작은 오두막 의자에 앉아 물소리 바람소리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스님은 늘 비우고 내려놓으면서 얻은 깨달음을 사람들에게 전해주려 하면서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지혜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스님이 쓴 글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에는 임종을 앞둔 늙은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내 입안에 무엇이 보이느냐”
“혀가 보입니다.”
“이는 보이지 않느냐?”
“스승님의 치아는 다 빠지고 하나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는 다 빠지고 없는데 혀는 남아 있는 이유는 알겠느냐?”
“이는 단단하기 때문에 빠져 버리고 혀는 부드러운 덕분에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스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 부드러움이 단단함을 이긴다는 것. 이것이 세상 사는 지혜의 전부이니라. 이제 더 이상 너에게 가르쳐 줄 것이 없구나. 명심하거라.”
법정스님은 자신에게 엄격하면서도 남에게는 부드러운 사람이었습니다. 또 다른 글 <설해목>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잘 드러납니다.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 노승(老僧) 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 왔다. 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물을 떠다 주는 것이었다. 이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지만 스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시중만 들어주는 데 크게 감동한 것이었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천 마디 좋은 말보다는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는 가 버리고 안 계신 노사(老師)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게는 생생히 살아 있는 노사의 상(像)이다.
산에서 살아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들여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 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사이밧티이의 온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殺人鬼) 앙굴리마알라를 귀의(歸依)시킨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神通力)이 아니었다.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慈悲)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 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부드러운 것이 유약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도 말랑말랑하게 열어두고 어느 하나의 상에 매이지 않아야 합니다. 얽매이지 않으려면 마음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이러한 부드러움은 원효의 ‘화쟁’사상과 맞닿아 있고 불교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화쟁이란 하나 된 마음인 ‘일심’과 둘로 나누어지지 않은 ‘자타불이’로 나아가게 합니다. 마음이 부드럽고 열려있어야 나와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서로 화합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사람과 관계나 시대 상황은 통합이나 화합, 조화보다는 갈등과 대립을 많이 합니다. 양보와 타협보다 갈등하고 다투기 바빠 공공의 합의적 노력과 화합이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각계 각층의 대립과 갈등, 소통 부재 등은 부드럽게 포용하고 관용해야 합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을 평생 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 삶은 짧은 순간의 연속이고 일기일회(一期一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단 한 번의 시간이고 단 한 번의 인연입니다.
차茶의 세계에 일기일회一期一會란 말이 있다.
일생에 단 한번 만나는 인연이란 뜻이다.
개인의 생애에 볼 때도 이 사람과 이 한 때를 갖는 이것이
생애에서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여긴다면 순간순간을 뜻깊게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몇 번이고 만날 수 있다면 범속해지기 쉽지만, 이것이
처음이면서 마지막 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무렇게나 스치고 지나칠 수 없다.
기회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 놓치면 다시 돌이키기 어렵다.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니다. 오늘의 나도 어제의 나가 아니다.
오늘의 나는 새로운 나이다. 묵은 기간에 갇혀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라.
과거의 좁은 방에서 나와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살라.
우리는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삶을 당연히 여기지 말라.
일기일회一期一會
단 한 번의 기회, 단 한 번의 만남이다.
이 고마움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 우리는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이다.
삶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순간 속에서 살고 순간 속에서 죽으라.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을 가지려면 어떤 것도 필요로 함 없이 그것을 가져야 한다.
버렸더라도 버렸다는 관념에서조차 벗어나라.
바람이 나뭇가지를 스치고 지나가듯 그렇게 지나가라.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 하지 말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불필요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이것은 영혼의 공해와 같다.
얻었다고 좋을 것도 없고, 잃었다고 기죽을 것도 없다.
괴롭고 힘든 일도 그때 그곳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다 한때다.
시련이 우리 앞에 온 것도 다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를 안다면 고통스럽지 않다.
삶을 순간순간 맑은 정신으로 지켜보라.
그러면 행복에도 불행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때그때 감사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다음은 기약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일기일회一期一會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다.
지금을 어떻게 사는가가 다음의 나를 결정한다. 삶이 인간에게 주어진 길고 어려운,
그러나 가장 행복한 수행의 길, 매 순간 우리는 다음 생의 나을 만들어가고 있다.
모든 것은 생애 단 한 번,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간순간 새롭게 피어나라.
- 법정 스님 법문집 일기일회一期一會 중에서 -
스님은 일기일회의 삶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에게 맑고 향기로운 삶과 무소유 지혜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실천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은 삶입니다. 찬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봄을 기다리지만 바람을 맞으며 이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려 합니다. 스님이 남긴 말씀은 언제나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스님은 평소의 바람처럼 훨훨 날아가 어린 왕자를 만났을까요? 솔바람 불어오는 맑은 날 따사로운 봄꽃 가득한 날에 스님과 어린 왕자가 차 한잔 마시며 평온한 나날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