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자로 보는 세상 112]

by 백승호

시(時)와 시(詩) 사이에 머물러 있습니다.

선거 이후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시(詩)를 보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저마다 슬픔과 분노를 삭이느라

자신을 위로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슬픔 또한 지나가겠지만

마음을 다지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햇살을 마주하며 걷고

아내와 이야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좀 더 선한 사람이 좀 더 약하고 착한 사람을 위해

나라를 이끌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그 사람이 당선되길 바라며

마음을 주고 나의 일부를 떼어 간절한 마음으로 빌고 빌었습니다.


패배의 순간을 확인하며

일시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부정과 분노의 시간이 지나

슬픔과 허무함을 지나

위로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박완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

“등 따습고 배불러

정신이 돼지처럼 무디어져 있을 때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나고 싶어 시를 읽는다.

라는 말을 마음으로 되뇌며 좋아하는 이문재 시인의 시를 읽었습니다.


이문재 <모래시계>

이쯤에서 쓰러지자

이쯤에서 쓰러져서

조금 남겨두기로 하자

당분간 이렇게 쓰러져 있기로 하자


누군가 나를 일으켜 세워

멈춰 있던 자신의 시간을 살릴 수 있도록

자기 시간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누군가의 아픔이 기쁜 아픔이 될 수 있도록

누군가의 기쁨이 아픈 기쁨이 될 수 있도록


아니다

상체를 완전히 비우고

우두커니 서 있도록 하자

누군가 나를 뒤집어

자신의 새로운 시간과 만날 수 있도록

이렇게 하체의 힘으로

끝끝내 서 있도록 하자


숨을 죽이고

가느다란 허리의 힘으로

꼿꼿이 서서 기다리기로 하자

누군가 나를 뒤집어

누군가의 맨 처음이 시작되도록

누군가의 설레는 맨 앞이 되도록


이문재 시집, 『혼자의 넓이』에서


“누군가의 아픔이 기쁜 아픔이 될 수 있도록

누군가의 기쁨이 아픈 기쁨이 될 수 있도록

누군가의 맨 처음이 시작되도록

누군가의 설레는 맨 앞이 되도록”


당선된 사람은 누군가의 아픔을 더 잘 보살펴 주길 바라고

낙선한 사람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설레는 앞날을 준비하시길 바랍니다.


시간(時間)을 시(詩)로 위로하며

“시의 가시에 찔려 정신이 번쩍” 들어

3·15 아침에 다시 일어섭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재미있는 논어 읽기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