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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어느 곳을 펼쳐서 읽어도 되지만 논어의 전체 짜임을 먼저 보고 읽으면 주제를 더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논어의 전체 짜임은 우리 삶의 여정과 비슷하다. 사람은 좋은 인성을 갖추기 위해 인격을 수양한다. 그래서 항상 성찰하고 끊임없이 배우고, 예의를 갖추어 상대방을 존중하며 품격있는 언행을 한다. 또한 여러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사회 생활을 하고, 성숙한 사람(군자)이 되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치를 하고 자신의 삶과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다.
공자는 인격수양과 학문탐구를 끊임없어 하였으며 정치에 참여하여 임금을 바른길로 인도하고 백성의 삶이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후학을 양성하며 교육자로서도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 먼저, 인격 수양을 위해 내면적으로 인과 덕을 쌓고 행동을 할 때 충과 서를 실천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예의와 절제로 자신행동을 품위있게 했고, 예의를 통해 사람을 존중하며 사회질서를 중시하였다. 이러한 인덕과 예의는 늘 배움을 통해 쌓아 갔다. 사람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면서 군자로써 인간의 품격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자기 수양을 하고 사람 관계를 원만하게 맺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확장하기 위해 정치를 했다. 그리고 정치를 그만둔 후 책을 편집하거나 후학을 양성했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어진 마음인 인(仁)이 있기 때문이다. 어질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따뜻한 마음을 말한다. 어질다는 말의 반대는 모질다이다. 모진 것은 뾰족하여 찌르는 것이다. 남을 해치고 상대에게 아픔을 주는 것이 모진 것이다. 반면에 어진 것은 사랑과 따뜻한 마음으로 바다처럼 모든 것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 주는 것을 말한다.
주자는 학이편 주에서 인(仁)은 마음의 덕(심지덕 心之德)이라고 했다. 인은 의와 예와 지를 포괄하는 것이라 보았다. 인은 마음속의 가장 중요한 알맹이이기 때문에 사람의 알맹이이고 얼과 같다. 『중용』의 애공문정(哀公問政) 나오는 인자인야(仁者人也)의 의미이다. 인(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욕망인 본능을 누르고 인간 본성을 유지하게 한다. 이러한 인은 따뜻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다. 「안연편」에 번지가 인에 대하여 물으니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 했다. 즉 인이란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仁)은 내면적으로 자아의 바탕이 어 사람의 알맹이인 얼이 된다.
이러한 인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구체적 언행으로 드러난다. 교언영색하는 사람이 어진 마음을 갖는 것은 드물다고 했다. 교묘한 말과 꾸민 얼굴로 남을 속이는 사람은 자신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기를 치거나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사람이다. 어진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사로운 마음으로 편협한 혈연이나 지역주의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 대의를 중시한다. 패거리를 만들어 편을 가르지 않고 서로의 사이를 가깝게 하는 마음이 인(仁)이다. 인(仁) 중에서 가장 으뜸인 것은 호생지덕(好生之德)이다. 사람의 목숨을 아끼기 때문에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중시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인(仁)한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아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잘 성장하도록 돕는다. 위령공편에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의롭지 않은 삶에 연연하여 인을 해치지 않고, 제 몸을 희생해서라도 인을 이루는 일은 있다.” 하여 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잃기도 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남의 장점을 살려주고 도달하게 해 준다. 옹야편에는 “어진 자는 자기가 서고자 하면은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자기가 통달하고자 하면은 다른 사람을 통달하게 한다.”라고 했다.
인은 사람과 관계 속에서 어진 마음을 발현하게 한다. 인을 실천하기 위해 가까이로는 부모를 섬기고 형제에게 우애 있게 대한다. 남을 함부로 좋아하지 않고 미워하지 않는다. 인(仁)은 자기를 이기고 예의를 통해 절제한다. 이처럼 인(仁)을 실천하는 것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근본이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스승에게 인은 양보하지 않는다고 위령공편에서 말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본능대로 살지 말고 본성대로 사람답게 살게 하는 것이 인이다.
충서는 공자가 한 가지 이치로 여러 이치를 꿰뚫는 일이관지라고 했다. 증자는 이것이 충서(忠恕)라고 하였다. 마음속의 인(仁)을 좀 더 구체적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이 충(忠)과 서(恕)이다. 충(忠)은 중(中)과 마음 심(心) 자가 합쳐진 것인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잡아 공명정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남의 일이나 나의 일에 언제나 진심으로 진정성을 다해 자신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충(忠)이다. 서(恕)는 같을 여(如) 자와 마음 심(心) 자가 합쳐진 것이다. 타인의 마음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여기고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상황과 상황을 이해하여 나를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추기급인(推己及人)하는 것이 서(恕)이다.
우리 뇌에는 ‘거울신경세포’가 있어서 남의 슬픔과 아픔을 보면 불쌍하게 여기고 공감을 한다. 남을 공감하고 이해하며 넓은 마음으로 포용한다. 이렇게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면 모든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하여 행복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충서이다. 서(恕)는 안연편과 위령공편에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하는 것이다.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성찰하는 사람이다. 반성과 성찰은 상하관계이다. 반성은 성찰의 의미에 포함된다. 반성은 자신의 생각이나 언행의 잘못을 돌이켜 살펴보거나 자신의 부족한 부분이나 단점 등 부정적 측면을 돌이켜 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반성은 후회의 감정이나 자책을 하기도 한다. 반성은 후회의 감정이 많아 자칫 잘못하면 자신을 비웃는 자조적 감정에 빠지거나 우울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성찰은 반성도 하지만 자신을 안으로 살펴 나아가야 할 점도 생각하며 자신과 세상을 통찰하는 긍정적 마음을 동반한다. 즉, 자기 생각이나 언행 등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객관적으로 두루 살펴보는 것이다. 이전을 잘못을 깨치고 뉘우쳐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성찰은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한다. 우선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을 조절하지 못했는지 성찰해야 한다. 기분이 태도가 되거나 화를 옮기면 안 된다. 옹야편에 애공이 제자에게 묻기를, “제자 중에 누가 배움을 좋아합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대답하시기를, “안회라는 자가 있어서 배우기를 좋아하여 화를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고,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기분이나 감정을 잘 조절하는 것이 성숙한 사람의 바탕이다. 학이편에서 증자는 날마다 세 가지를 반성을 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을 꾀할 때 충성스럽지 못했는가? 친구와 사귈 때 믿음을 주지 못했는지? 그리고 배운 것을 익히지 못했는지 반성을 한다. 위정편에서 공자는 자장에게 많이 들어서 의심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 때까지 비워두고 그 나머지를 삼가면서 말하면 허물이 적다. 많이 보아서 확실하지 않아 위태로운 것은 남겨두고 그 나머지만 조심스럽게 행하면 뉘우침이 적을 것이다. 자기가 한 말에 허물이 적으며 자기가 한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녹이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라고 하여 자신의 언행을 성찰하여 후회가 없도록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돈을 버는 것이 그 안에 있다고 말한다. 이인편에도 어진 사람은 본받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보면 성찰해야 한다고 한다. 자로편에는 자기 행동을 반성하여 부끄러울 할 줄 알고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성찰은 많이 할수록 앞으로 나아간다. 위령공편에는 “자신에 대한 성찰은 많이 하고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는 것을 적게 하면 곧 원망을 멀리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위령공편에 “군자는 문제의 원인을 자기한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 원인을 찾는다.”라고 하였다. 남 탓을 하지 말고 자기 성찰을 통한 성숙을 도모하는 것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이다.
왜 배우는가? 모르면 답답하고 막히면 갑갑하기 때문에 배운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데 모를 때 진작에 배울 걸 하며 후회한다. 또 모르면 불안하고 두렵다. 계씨편에 왜 배우는지 말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은 상등이요, 배워서 아는 자는 그다음이요, 어려움을 겪고서 배우는 자는 그다음이다.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배우지 않으면 그 백성은 하등이 된다.”라고 하였다. 태어나면서 아는 천재는 없다. 배워서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몰라서 어려움을 겪고도 배우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고 실행하다 보면 깨치고 깨닫는다. 지식이 지혜가 되는 순간 삶은 더 여유로워지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사라진다.
무엇을 배울 것인가? 춘추시대에는 육예를 배웠다. 예(禮)-예절, 악(樂)-음악, 사(射)-활쏘기, 어(御)-말타기, 서(書)-서예, 수(數)-산수, 이 여섯 가지를 배웠다. 그리고 시를 배우며 감성을 풍부하게 길렀고, 역사를 배우면서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의 원리와 이치를 배웠다.
어떻게 배울 것인가? 배우는 방법은 마음의 자세와 구체적 공부 방법을 익혀 배웠다. 마음의 자세는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다. 「옹야편」에 “바른 도리를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 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거워하는 자보다 못하다.”라고 했다. 즐거워하면서 배워야 한다. 배우는 것이 괴로우면 마음의 문이 닫히고 공부해도 들어오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분발하면서 좋아하고 즐거워해야 잘 배운다. 배우는 사람에게 하나를 이야기해 주면 두 개 세 개를 알려고 노력하고 간절하게 배우려고 해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신이 나서 더 많이 가르쳐 준다. 배움의 자세를 강조하는 이유는 배우려는 사람에게 가르쳐야 가르친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배움의 순서는 「자장 편」에 넓게 배우고(박학博學)➡뜻을 굳게 하며(독지篤志) ➡간절하게 묻고(절문切問)➡ 쉬운 예를 생각(근사近思)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판단을 잘하고, 실행을 잘하면 배움이 완성된다.
배워서 무엇을 할 것인가? 배워서 성인(成人) 된다.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완성된 사람이 성인이다. 그리고 궁극적 목표는 성인(聖人)처럼 훌륭한 인품을 갖는 것이다. 이처럼 배우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고 세상을 더 잘 알고 삶을 더 잘 살 수 있다. 더 잘 안다는 것은 진리를 알기 때문에 선택을 올바르게 할 수 있고 올바르게 선택을 할 수 있어서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더 가치 있는 삶이 의미 있는 삶이다. 그리고 사람을 알 수 있고, 말을 알 수 있다. 사람은 소인, 군자, 현인, 성인 등이 있는데 더 좋은 사람을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리고 더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며 살아갈 수 있다. 말은 감정과 생각, 뜻의 집이다. 말을 안다는 것은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 뜻을 배려하여 상황이나 때에 맞게 말을 한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그 사람의 상황이나 때에 맞게 해 주어야 한다.
인덕과 충서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마음의 알맹이라면 예(禮)는 알맹이를 가치 있고 품위 있게 잘 담은 그릇이다. 많은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자신을 표현할 때 행위의 규범이 필요하다. 이러한 행위의 규범이 예(禮)이다. 사람은 본능과 욕심을 갖고 살아간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갖고 싶은 대로 가지려 한다면 힘센 사람만 살아남고 약한 사람은 제 명대로 살지 못할 것이다. 인간의 욕망과 욕심을 누르고 본성을 회복하는 것이 예이다. 즉 극기복례(克己復禮)하여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 예이다.
이러한 예(禮)는 인(仁)을 바탕으로 할 때 빛난다. 인이 없으면 잘 만든 빈 그릇이다. “사람이 어질지 아니하거늘 예로써 꾸민 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인이불인여예 (人而不仁如禮何) ”라고 했다. 그러므로 "예(禮)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행하지도 말라.”라고 한 것이다.
예(禮)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어하는 규범이다. 사람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 예이기 때문에 예를 다하기 위하여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예를 행해야 한다. 예의 본질은 진정성과 진심이다.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나 진심과 진정성이 없는 것보다 검소하더라도 진심을 다하는 것이 예의 본질이다. 개인과 개인 사이에 예의를 다하면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 예의는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어 주는 삶의 윤활유이고 행복한 관계를 만드는 규범이다. 사람과 관계 속에서 예의를 다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보다 여러 사람이 함께해야 하는 일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서로에 대한 예의는 더욱 중요해졌다. 부탁하거나 거절을 할 때도 예의를 다하여 서로의 관계를 더 좋게 해야 더 좋은 결과를 낳고 사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예의는 삶과 죽음의 과정, 죽은 다음에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도 필요하다. 특히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낳아주고 길러주신 고마움을 표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슬픔을 다하여 부모님의 장례를 지내고 정성을 다해 보내드리는 것이 자식의 도리이다. 제사도 정성을 다해야 한다.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여러 형식을 갖추어 제사를 지내는 것이 본질이 아니다. 제사는 현재의 관점에서 조상을 생각하며 과거의 좋은 점을 떠올리면서 계승할 것은 생각한다. 그리고 미래의 다가올 세상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창조적으로 대응해 나갈 마음을 다지는 시간으로 생각하면 된다.
음악은 우리의 정서를 더욱 풍부하게 하고 삶을 풍성하게 한다. 팔일편에 나오는 음악의 과정인 흡(翕)➡순(純)➡교(皦)➡(繹)은 우리 삶의 과정이다. 음악의 시작은 여러 악기가 만나 조화를 이루는 흡(翕)의 과정이다. 그다음은 순수한 열정이 타오르는 순(純)의 시기이다. 그다음은 음악의 최고의 절정에 이르러 빛나는 교(皦)의 시기이다. 절정의 순간이 지나가면 감동의 순간순간이 여운으로 남는 역(繹) 단계로 완성된다. 우리 삶은 다른 사람과 만나 조화를 이루고 순수한 열정으로 서로 의기투합하여 좋은 결과를 이루며, 성취의 감격이 마음에 남아 또 다른 삶의 동기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삶의 과정은 음악 연주 과정과 유사하다.
음악은 우리의 감정을 풍요롭게 한다. 풍요로운 감정을 가져야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다. 슬픔과 기쁨을 잘 조절하면 즐겁지만 음란하지 않고, 슬퍼하지만 마음을 다치지 않게 할 수 있다. 음악은 우리의 삶을 더욱 성숙하게 한다. 태백편에서 공자님은 시를 통해 나의 정서를 일깨우고 예를 통해 바르게 서고 음악을 통해 완성된다고 했다. 예악은 우리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꽃 피우는 문화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권력이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내면적 아름다움과 문화적 성숙이 더 소중하다는 것도 기억해야 한다. 예악은 참되고 착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문화의 핵심이다.
논어에서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것은 관계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행복할 수 있을까? 사람은 혼자 있어도 좋아하는 것을 하고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여러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즐거움을 함께 누리며 살아가야 더 행복하다. 우리의 행복 시작은 좋은 관계에서 비롯된다. 가족, 직장동료, 사회생활하면서 만나는 여러 사람과 관계가 평온해야 삶이 더 행복하다. 한 사람의 행동은 여러 사람과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며 사회성을 가진다.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사람과 상황의 상호작용”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고 설득하며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여 자기의 생각과 뜻을 관철하려고 한다. 가족, 친구, 이성, 직장, 조직, 자연 등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소통과 공감, 배려하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간다. ‘편안하고 안락한’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가족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가정이 편안하면 정서적 안정감이 있고 모든 것이 편안하다. 가장 가까운 가족 관계가 불편하면 마음이 늘 편하지 않아 불안하다. 가족 관계가 편안하려면 화목해야 한다. 화목하려면 먼저 부모에게 효를 다해야 하고 형제들끼리 우애 있게 지내고 부부 사이가 좋아야 한다. 학이편에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가 있는 사람은 어지러운 일을 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부모의 마음을 살피고 물질적 봉양을 하여 효를 다하는 것이 어진 마음의 근본인 것도 행복의 시작이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 좋은 관계 속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부모님을 잘 모시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슬픔을 다하여 극진하게 모시는 것이 부모와 관계를 잘 마무리하는 것이다.
친구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학이편에서 즐거움의 시작은 벗이라고 한다. “벗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즐겁지 않은가?”라고 한 것도 가족 다음으로 친구가 관계 형성에 중요하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가 중요하기 때문에 벗은 잘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 나와 뜻이나 기질이 너무 다르면 불편할 수 있다. 그래서 자한 편에 “자기만 못한 자를 벗하지 말고”라는 말이 있다. 물론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벗하지 말라는 문맥의 의미는 기질이 너무 차이 나거나 뜻이나 생각이 너무 다르면 친구로 지내기는 조금 불편하다는 말이다. 자기만 못한 사람과 벗하지 말라고 하면 이 세상에 벗할 사람이 없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하면서도 조화롭게 살아야 하는데 진짜 친한 친구가 되려면 뜻과 기질이 비슷하면 서로 마찰이 적고 존중하며 지낼 수 있다는 말이다.
계씨편에 “유익한 벗이 세 가지이고 해로운 벗이 세 가지이다. 벗이 정직하며 벗이 믿음직스럽고 견문이 많으면 유익하다. 벗이 편벽되고 유순하면서 아첨을 잘하며 말재주는 좋으나 심술이 나쁜 사람은 해롭다.”라고 하여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고 했다. 신뢰는 언행이 일치하는 진정성에서 생긴다. 학이편에서는 “벗을 사귈 때 말을 미덥게 하면 비록 배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반드시 배웠다고 말하리라.”라고 하여 신뢰를 강조한다. 친구와 서로 신뢰가 쌓이면 조심스럽게 충고하고 큰 허물이 없으면 오랜 친구를 버리지 않는 것이 덕이다. 미자편에는 “사귄 지 오래된 친구가 아주 큰 죄악이 없으면 버리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관계를 오래가기도 하고 행복하게 하려면 말과 행동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 관계의 시작과 끝은 말이다. 상대방을 존중하며 배려하여 따뜻한 말을 해야 좋은 관계가 오래오래 간다. 관계의 시작은 인연이지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노력이다. 그래서 위령공 편에는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더불어 말할 만한데도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을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 않으며 또한 말을 잃지 않는다.”라고 하여 지혜로운 사람은 말과 사람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말은 의사소통만 잘하면 된다고 한다. 소통을 잘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하는 말의 진의를 잘 파악해야 한다. 헌문편에 “남이 나를 속이지 않을까 미리 생각하지 말고 또 남이 믿지 않을까 미리 억측하지 말아야 한다. 도리어 또한 먼저 깨닫는 자가 현명한 사람이다.”라고 하여 상대방의 마음을 잘 파악하는 것이 소통을 잘하는 것이라 하였다. 안연편에는 서서히 스며드는 참소와 절절한 하소연을 조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남의 허물을 말하는 사람과 동조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말은 더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 할 말과 못 할 말을 잘 구분해서 해야 관계가 멀어지지 않는다.
충고는 조심스럽게 해야 한다. 자장편에는 “윗사람에게 믿음을 얻은 다음에 바른말을 할 것이니, 그들에게 신임을 얻지 않고 말을 하면 자기를 비방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인편에도 “임금을 섬길 때 간언하기를 자주 하면 곧 곤욕을 당하고 친구에게 자주 충고하면 두 사람 사이가 소원해진다.”라고 하였다. 서로 인간적 신뢰(라포)가 형성되면 충고를 해야 한다.
말은 진정성과 진심을 담아서 해야 한다. 말재주꾼은 미움을 받고 신뢰를 받지 못한다.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고 칭찬과 비판도 사심 없이 공정하게 해야 신뢰할 수 있다.
유교의 교육 목표는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다. 성인은 누구나 될 수 있지만 아무나 될 수 없다. 가장 이상적이고 완벽한 사람이 성인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도달 가능한 이상적 사람을 설정한 사람이 군자다. 군자는 덕과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논어에는 크게 세 부류의 사람으로 나눈다. 군자, 소인, 향원이다. 향원은 덕을 해치는 자이기 때문에 논외로 하고 군자와 대비되는 사람은 소인을 말하며 군자의 삶을 지향하게 한다.
군자는 바른 인성을 갖추기 위해 배우고 노력하고, 말과 행동을 할 때 신중히 생각하며 예의를 갖추어 실행하는 것을 중시한다. 사람 관계가 원만하면서도 반듯하고 정치에 나아가면 성과를 내는 사람이다. 군자의 조건은 인덕, 충서, 호학, 예의이다. 인덕과 충서는 자기 수양을 하여 인격을 완성하는 바탕이다. 인격을 완성하려면 아홉 가지 생각(구사九思) 반듯하게 해야 한다. 호학은 학문탐구를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예의는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고 절제된 행동을 하여 타인을 배려하고 공감하여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이룬다. 또한 인덕을 갖추고 근심하지 않고 지혜를 갖추어 미혹되지 않고, 용기를 갖추고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군자이다.
군자는 말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헌문편에 “자신의 말이 실행보다 앞서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인편에는 “군자는 말을 더듬거리듯 천천히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한다.”라고 하여 늘 말보다 실행을 강조한다. 위령공편에는 “말을 잘한다고 추천하지 않으며 나쁜 사람이라고 그 사람의 좋은 말을 버리지 않는다.”라고 하여 말재주는 배격하지만 좋은 말은 비록 그 사람이 나쁘더라도 취한다고 했다. 이러한 군자의 말하기는 위령공편에서 공자님의 말씀처럼 “더불어 말할 만한데도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잃고, 더불어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을 더불어 말하면 말을 잃을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을 잃지 않으며 또한 말을 잃지 않는다.”라고 하여 말과 사람을 잃지 않는 것이 군자라는 의미이다.
군자는 자긍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의리를 바탕으로 행동한다. 위령공편에는 “군자는 긍지를 지니고 살아가면서도 남들과 다투지 않고, 어울리면서도 패거리를 만들지 않는다.”라고 했다. 군자는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살아간다. 헌문편에는 자로가 군자에 대하여 여쭈어보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경건하게 수양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위령공편에는 “군자는 의리를 바탕으로 행동하고 실행할 때는 예절을 지키며 표현은 겸손하게 하고 신의로써 성취한다.”라고 하여 군자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러한 군자의 태도는 소인과 항상 대비된다. 논어에는 군자의 행동과 소인의 행동을 대비하여 보여줌으로써 더욱더 군자다운 행동을 선명하게 부각한다.
군자는 늘 마음이 평온하고 너그러우며 사사로운 욕심을 누르고 자신의 이익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의리에 따라 행동한다. 군자는 여러 사람과 두루 잘 지내고 패거리를 만들지 않는다. 늘 다른 사람의 장점을 칭찬하고 성장을 돕는다. 안연편에 “군자 성인지미”라고 한 것이 군자와 소인의 대비되는 행동을 잘 보여준다. 다른 사람이 잘되도록 돕기가 쉽지 않다. 자기의 자존감이 아주 강하고 건강한 자아를 가지고 있어야 가능하다. 상대주의 관점으로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람마다 개성을 존중할 때 가능하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자로편에 나오는 “군자 화이부동”을 실행한다. 송사리 떼나 멸치 떼처럼 몰려서 왔다 갔다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잉어나 고래처럼 주체성 있고 여유가 있게 행동한다.
논어에는 군자의 도리를 실행한 사람으로 정나라 재상 공손교(자산)와 위나라 대부 거원(백옥) 두 사람이다. 정자산은 처신을 공손하게 했고 윗사람을 공경하며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고 의리로 백성을 다스렸다. 거백옥은 나아가고 물러나는 처신을 의리에 맞게 잘했다.
군자는 이처럼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의리를 중시하여 행동하며 예의로써 자신의 행동을 절제했다. 어떤 경우에도 패거리를 만들어 행동하지 않았다. 군자의 더욱더 멋진 것은 남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자신의 올바른 기준을 따라 한결같이 행동한 것이다. 학이편 첫머리에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으면 군자라 했다. 군자는 자신의 정체성이 확고하여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다.
자기 몸을 바르게 하여 군자의 조건을 갖추면 정치를 한다. 정치를 통해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하고 모든 사람이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이상 사회인 대동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치 목적이다.
공자의 정치사상의 핵심은 정명 사상이다. 안연편에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 물으니 공자 대답하기를,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며,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며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라고 하셨다. 공이 말하기를, “좋은 말씀입니다. 진실로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며,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며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며, 자식이 자식답지 못하면 비록 곡식이 있더라도 내가 어찌 먹을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정명 사상은 수직적 질서를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할 수 있지만, 이 자체를 보면 사회 구성원들의 책임과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사회는 유기적 관계이다. 사회는 개인을 위하고 개인은 사회를 위하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통해 개인과 사회가 발전한다. 이렇게 개인과 사회가 발전하려면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태백편에 “높고 크도다! 순임금과 우임금은 천하를 차지하고도 훌륭한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고 자신은 간여하지 않으셨다.”라고 하며 순임금과 우임금의 정치를 극찬한다.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면 나라 운영은 시스템에 따라 잘 되고 위기 상황에서도 매뉴얼이 있으면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답게’ 하려면 먼저,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자로편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자신을 바르게 하면 정치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으며, 자신을 바르게 하지 못하면 어떻게 남을 바르게 하겠는가?”라고 하여 가장 먼저 자기 수양을 통해 바른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정치는 정책을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행위이다.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 자원을 분배하는 과정에 사사로운 욕심이 개입되면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공자는 늘 삼환의 국정농단과 계씨의 독단을 비판한다. 안회 편에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관해 물으니 공자는 “정치는 바르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바른 것으로 통솔하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여 사욕으로 가득 찬 정치인, 잘못된 제도 등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 정치는 어떻게 하는가? 위정편에 ‘위정이덕’ 즉, 덕으로써 정치를 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덕과 예로써 정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정편에 “법과 제도로써 백성을 인도하고 형벌로써 다스리면 백성이 형벌은 면하여도 부끄러운 마음은 없어진다. 덕으로써 백성을 인도하고 예법으로써 다스리면 백성들이 부끄러움도 알고 또 마음이 바르게 된다.”라고 하였다. 법과 제도만으로 정치를 할 수 없다. 국민이 예의와 염치를 알고 타인을 배려하는 품격 높은 삶을 살아가게 해야 올바른 정치라는 것이다.
자로편에는 공자가 정치하면 3년 안에 성과 낼 수 있다고 했다. 좋은 정치의 결과는 백성을 기쁘게 하고 먼 곳의 사람들이 오도록 한다. 자로편에 섭공이 정치에 물으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먼 곳에 있는 자는 오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중국에서 가장 태평성대였던 요순시대나 주나라 무왕의 시대에 공통점은 착한 사람이 복을 받는 공정한 사회, 민생문제를 잘 해결하는 능력, 넓은 마음으로 통합하는 너그러움, 사회 신뢰가 구축되어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국가 시스템을 매뉴얼로 만들어 어느 누가 정권을 잡던 국정이 일관성과 연속성이 있도록 해야 국민이 편안할 수 있다.
교육은 가르쳐서 자라게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따뜻하고 착한 심성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사람, 유능한 사람을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올바른 인성을 기른 다음에 전문성과 창의성을 쌓아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인성이 더 중요해졌다. 사회는 모든 것을 훤하게 볼 수 있는 투명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거의 다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쁜 마음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적어지고 여러 사람이 협력해야 할 수 있는 일이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 서로 협력하고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인성이 더 중요하다. 이러한 인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교육을 잘 받은 사람이 더 잘 알고, 더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다. 교육은 삶을 위한 교육일 때 살아있는 교육이 된다. 삶과 동떨어지면 교육은 학생들에게 외면당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설 자리가 줄어든다.
공자는 배우기를 좋아하고 잘 가르쳤다. 배우는 것은 스스로 배워 익히고 자라는 것이고, 가르치는 것은 남이 자라도록 해 주는 것이다. 공자는 늘 배우고 익혀 몸으로 실천했다. 공자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 제자들을 자라게 하고 잘 살게 했는지 살펴보면 교육자인 공자의 참모습을 알 수 있다.
공자는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나 차별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었다. 위령공편에 ‘유교무류’라 하여 누구나 평등하게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제자가 되려면 간단한 예를 표하면 되었다. 술이편에 제자의 예를 표시하는 ‘속수 지례’만 다하면 가르쳤다.
공자가 가르친 교과목은 도덕, 언어, 정치, 문학이었고, 네 가지 중점내용은 술이편에 ‘문행충신’이었다. 인성과 예절, 이러한 교육을 통해 도달하고자 한 것은 개인적으로 완성된 사람 성인(成人)이었고, 구체적으로는 군자와 성인이 되는 것이었다.
살아가면더 다양한 도덕적 물음을 맞닥뜨리기도 한다.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옳은가?" "이것은 공정한가?" "정의란 무엇인가?" 등등 도덕적 물음에 답을 찾기 위해 생각을 한다. 공자는 도덕적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하여 많은 교육을 한다. 논어는 도덕교육 교과서라 할 수 있다. 공자는 착한 인성을 강조했다. 팔일편에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다음에 한다.”라는 것을 통해 착한 인성을 바탕으로 갖추고 난 이후에 예악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사람이 행복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이 도덕이라는 것이다. 도덕을 갖춘 다음에 전문성과 실력을 갖추어야 어른으로 성숙한 삶을 살아가고 사람답게 살 수 있다.
말이란 무엇인가?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마음은 느낌, 생각, 뜻, 얼로 되어있다. 말은 느낌을 담고 생각을 담고 뜻을 담고 얼을 담는다. 말을 안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이다. 논어의 맨 마지막 장은 말을 알아야 한다고 하며 지언(知言)을 강조한다. 요왈편에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공자는 말재주를 경계했다. 공야장편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옹은 어질기는 하지만 말재주가 없습니다.”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찌 말재주를 쓰겠는가. 사람을 대하는 데 말재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막으면 사람들에게 자주 미움만 받는다. 그가 어진지는 모르겠으나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라고 하여 말재주를 부리는 것을 경계한다.
옹야편에서도 말재주와 외모를 중시하는 세태를 비판한다. 공자는 “축관 타의 말재주와 송나라의 조와 같은 고운 얼굴이 아니고는 지금 세상에서는 화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하여 말재주꾼이나 겉모습만 꾸미는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선진편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논의를 돈독하게 하는 이를 인정한다면 참다운 군자이겠느냐? (아니면) 외모만 장중한 사람이겠는가?” (잘 살펴보아야 한다.)라고 하셨다.
말재주를 이렇게 싫어한 이유는 말재주 있는 사람은 자기를 합리화하거나 변명, 거짓말 등을 하여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고 나라를 망치기 때문이다. 선진편에는 자로가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자 공자는 “이 때문에 말재주 있는 자를 미워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위령공 편에 “정나라 음악은 추방하고 말재주꾼은 멀리하라. 정나라 음악은 음란하고 말재주꾼은 위험하다.”라고 하였다. 양화편에도 말재주를 부리는 사람이 나라를 전복하는 것을 미워한다.”라고 하셨다.
말을 교묘하게 꾸미거나 거짓말, 변명하는 것은 덕을 해치고 어진 것과 거리가 멀다. 그래서 말은 진정성을 담아 참말을 하고 약간 어눌한 듯하면서도 느리게 한다. 이인편에 “군자는 말할 때는 더듬거리며 천천히 하고, 일을 실행할 때는 재빠르게 하고자 한다.”라고 했다. 이렇게 말을 천천히 하고 실행을 빠르게 하라고 한 이유는 실행보다 말이 앞서면 부끄럽고 신뢰를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인편에서 “옛사람이 말을 함부로 쉽게 하지 않는 것은 몸소 실천하는 것이 말에 미치지 못할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자로는 성격은 급했지만, 언행일치의 삶을 살고자 했다. 공야장편에 “자로는 스승이나 다른 사람이 깨우쳐 주는 말을 듣고서 미처 실행하지 못하면 또다시 (실행을 하기 전에) 좋은 말을 들을까 염려하였다.” 하여 실행을 중시하는 삶을 살았다. 자신의 말이 자신의 행동으로 이어질 때 진정성이 있는 것이다. 진정성이 있어야 신뢰를 할 수 있다. 신(信)이란 사람(人)의 말(言)이다.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
공자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에게 우애 있게 하는 것도 정치라고 하였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정치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고 정치에 참여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중시했다. 백성을 괴롭히는 요소를 배제하기 위하여 삼환가의 잘못을 비판하고 계씨편에 “나라를 소유하거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백성들이 적은 것을 근심하지 않고 재산을 고르게 나누지 못한 것을 근심하며, 재산이 모자라는 것을 근심하지 않고 상하가 서로 안정되지 못한 것을 걱정한다고 했다. 대개 부가 고르게 분배되면 가난한 사람이 없고, 서로 화합하면 부족한 것이 없을 것이고 서로 편안하면 위태로움이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 곳이 있는 전유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문덕을 닦아 그들을 오게 한다. 오고 난 다음에는 그들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나라의 평화를 유지하면서 복지국가를 만들어 부를 공정하게 분배하여 서로 더불어 잘 살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가르친다.
공자는 문학 중에서도 시 교육을 강조했다. 공자는 시 삼백 수를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사무사思無邪)’ 라고 말했다. 시를 읽으면 아름다운 마음이 생기고 아름다운 마음이 생기면 거칠고 사나운 마음, 더럽고 나쁜 마음이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공자는 아들에게 시를 읽게 했다. 계씨편에 공자는 아들에게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잘할 수 없다.”라고 하여 시를 배우길 권하고 있다. 양화편에서도 공자께서 (아들) 백어에게 “너는 주남과 소남을 배웠느냐 사람이 주남과 소남을 읽지 않으면 그것은 바로 담벽을 대하고 서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여 시를 읽는 것을 강조한다.
시는 자신의 정서를 풍부하게 하고 표현을 잘하게 한다. 시는 또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부드럽게 하고 대화를 하거나 협상을 할 때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자로편에는 “시 삼백 편을 외우고도 정치를 맡았을 때 통달하지 못하고 사방에 사신을 보내어 능히 홀로 대응하지 못하면 비록 시를 많이 읽은들 또한 무엇에 쓰겠느냐.”라고 하였다. 협상할 때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흔들어 감동을 주는 것이다. 정치적 해결을 논리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감성적 해결도 한다. 이처럼 시는 풍부한 정서, 감성적인 언어 표현, 대화와 협상의 매개체가 되기도 하는 유용한 가르침이다.
공자의 교육 방법은 일방적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대화를 통한 교육 방법이다. 공자는 대화를 통해 깨우치고 제자는 깨치고 깨닫는다. 가르치는 도달점은 깨닫고 행동을 하는 것이다. 공자의 말은 짧고 쉽다. 공자는 생각을 깊게 하여 쉽고 짧게 말하기 때문에 그 속뜻이 깊어 많은 깨달음을 준다. 대화하면 다른 사람의 말에 집중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질문을 하여 생각을 기르고 발전시킬 수 있다. 대화하면서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꿰뚫어 보고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느끼고 깨닫는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도 ‘산파술’이라 하여 제자들의 생각을 끌어내 성장하게 한다. 유대인의 교육법인 ‘하브루타’도 대화를 통해 생각을 발전시키고 지식과 지혜를 확장한다.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부분은 대화를 통한 교육을 많이 하여 학생들이 재미와 감동을 많이 느껴 깨달음이 풍부하고 성장하는 자기 계발 교육을 하도록 해야 한다.
가르치는 방법 술이편에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배우는 사람이 분발하지 않으면 그를 열어 주지 않았고, 깨달은 이치를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더 깊은 내용을 말해주지 않으며, 한 모퉁이를 들어 이야기할 때 나머지 셋을 말하며 대답이 돌아오지 않으면 다시 가르쳐주지 않는다.”라고 하셨다.
또 가르칠 때 제자의 상황과 수준에 맞게 가르쳤다. 이는 평소에 제자의 성격 장단점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있어야 가능하다. 소극적인 사람은 더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하고 적극적인 사람은 신중하도록 가르쳤다. 선진편에 “구(염유)는 (소극적이라) 물러나는 성향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고, 유(자로)는 다른 사람을 이기려 하므로 물러서도록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때로는 무언의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양화편에는 “나는 말을 하지 않으려 한다.”라고 하니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만일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면 저희는 어떻게 기록을 하겠습니까.”라고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 그래도 네 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겨나지만, 하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더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