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9】 397/498 의미 있게 살면 이름은 저절로 알려진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죽고 나서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몹시 아프게 여긴다.”라고 하셨다.
子曰 君子는 疾沒世而名不稱焉이니라
자왈 군자는 질몰세이명불칭언이니라
군자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의미 있게 살았기 때문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다. 삶의 목적과 방향이 바르고 의리 있는 삶이면 후세 사람들이 그를 본받고자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저절로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삶의 방향을 정하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에 유익한 것을 남기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가는 것이 군자의 삶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문제의 원인을 자기한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 원인을 찾는다.”라고 하셨다.
子曰 君子는 求諸己요 小人은 求諸人이니라
자왈 군자는 구저기요 소인은 구저인이니라
개인과 사회는 유기적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사회적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문제는 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춘추시대 전쟁과 권모술수가 사회를 지배하고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일이 늘 벌어지는 시대에 인간의 존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적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제의 원인을 자기한테서 찾고 외부적인 사회 탓을 하지 않기란 쉽지 않다. 공자도 이러한 상황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 탓보다 나 자신을 먼저 돌아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회 문제의 원인을 잘 살펴 헤아리는 것은 나의 일이다. 내가 그 원인을 잘 헤아려 살펴보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재앙이 나에게 미치지 않도록 살펴보고 대비하는 것은 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내적인 근본 원인을 찾고 외적인 간접적 원인을 찾아야 해결을 할 수 있다. 외적인 원인에 집착하거나 간접적이고 지엽적인 원인을 찾다 보면 근본 원인을 놓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때도 있다.
불교의 윤회사상인 인연(因緣)에서 인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나 근본 원인을 말하고, 연은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나 조건을 말한다. 인는 나의 내부에서 비롯된 것이고 연은 나 외에 밖에서 비롯된 것이다. 직접적이고 근본 원인인 인(因)을 살펴보고 그러한 인이 왜 일어났는지 외적이고 간접적인 조건인 연(緣)을 살펴보아야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사회구조적인 원인으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도 있다. 제도나 법규 때문이라든지, 사회 전체 현상 때문에 비롯된 것도 있다. 그러한 경우에도 사회제도나 외적 요인만 탓할 수는 없다.
반구제기는 『예기』「사의(射義)」편에 언급되어 있다. ‘활쏘기란 어짊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활을 쏠 때는) 스스로 올바름을 구해 나 자신을 바르게 한 뒤에야 쏜다. 쏘아서 적중하지 못하더라도 나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나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을 따름이다.’라는 뜻이다. (사자란 인지도야라 구정제기 기정이후에 발하여 발이중절이면 즉불원승기자하고 반구제기이의의라)‘射者란 仁之道也라 求正諸己하여 己正而后에 發하여 發而不中이면 則不怨勝己者하고 反求諸己而已矣’니라)
『중용』에도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활쏘기에는 군자와 같음이 있으니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도리어 그 몸에서 (잘못을) 찾는다. 자왈 사 유사호군자 실제정곡 반구제기신 (子曰 射 有似乎君子 失諸正鵠 反求諸其身)라고 했다.
『맹자』,「공손추(公孫丑)장구上」, 제6~7장,원문-풀이글.
仁者(인자)는 : 인이라는 것은 如射(여사)하니 : 활을 쏘는 것과 같으니 射者(사자)는 : 활을 쏘는 자는
正己而後發(정기이후발)하여 : 몸을 똑바르게 한 후에 화살을 발사하여
發而不中(발이불중)이라도 : 설사 과녁에 맞히지 못하더라도
不怨勝己者(불원승기자)요 :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원망하지 아니하고
反求諸己而已矣(반구제기이이의)니라 : 자기 몸에 반성해 볼 뿐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자긍심을 갖지만 다투지는 않고, 어울리기는 하지만 패거리 지어 편을 가르지는 않는다.”라고 하셨다.
子曰 君子는 矜而不爭하며 群而不黨이니라
자왈 군자는 긍이부쟁하며 군이부당이니라
군자는 나만이 옳다는 절대적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있고 자신을 아끼는 자존감이 높지만, 타인에게 나의 신념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잣대를 만들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은 신념이 아니라 아집이다. 꼰대처럼 충고를 늘어놓거나 조언을 한답시고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는다. 두루 어울리면서 패거리를 만들지 않고 잉어처럼 자유롭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
우리 사회는 진영논리로 패거리를 만들어서 모였다 흩어졌다가 한다. 패거리 만들어 편을 가르고 내 편이면 잘못해도 덮어주고, 상대편이면 잘해도 무조건 비판한다.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보려고 생각하지 않으니 늘 서로 다투기만 한다.
나와 다른 것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면 갈등은 잘 생기지 않는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대주의 관점은 갈등을 없애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다. 물론 상대주의 관점으로 살면서 옳고 그름이 없으면 어떤 기준으로 살아가느냐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윤리적 회의에 빠질 수도 있다. 상대주의 관점은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것, 남의 것을 훔치는 것, 남을 괴롭히는 것, 서로의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것 등을 인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극단적 상대주의를 제외하고 모든 것을 상대주의 관점으로 생각하며 살아가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