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해야 진짜 아는 것이다-
1. 사이비(似而非)란 비슷한 것은 가짜라는 말이다. 요즘 사이비 과학자와 정치인이 많다. 모든 사람은 모르는 것이 많다. 과학자나 정치인도 모르는 것이 많다. 따라서 확실하게 아는 것만 말해야 한다. 사이비 과학자정치인과 진짜 과학자와 정치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문궐의(多聞闕疑)하는가 하지 않는가이다. '다문궐의' 란 많이 들어서 의심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 때까지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2. 이 말은 『논어』에 나온다. 자장이 벼슬을 하기 위해 녹을 구하는 것을 배우려고 하니 공자는 “많이 들어서 의심하는 것을 확실하게 알 때까지 비워두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하면 허물이 적다. 많이 보아서 확실하지 않은 문제점 있는 위태로운 것은 남겨두고, 그 나머지만 조심스럽게 행하면 뉘우침이 적을 것이다. 자기가 한 말에 허물이 적으며 자기가 한 행동에 뉘우침이 적으면 녹이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3.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는 체 하다가 망신당한 다음에 후회하며 뉘우친다. 잘 모르거나 의심 나는 것은 말하거나 행동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가 일반인보다 어떤 사안에 대하여 더 잘 알기 때문에 전문가라고 한다. 전문가라고 해서 모든 것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을 잘 아는 것도 아닌데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는 착각을 하는 순간 국정은 혼란스러워지고 국민은 위태로워진다. 좀 더 겸손하고 좀 더 진중할 필요가 있다.
4. 이 세상에 그 어떤 천재도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래서 공자나 소크라테스도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르다고 하는 것이라 했고,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모르는 것이 많기 때문에 겸손하게 배우려고 노력한다.
5. 판토하가 지은 『칠극(七克)』에는 천주교에서 으뜸가는 7 가지 죄를 교만, 질투, 탐욕, 성냄, 식탐, 음란함, 나태함이라 말하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교만은 겸양을 쌓아 극복하고, 질투는 남을 아끼고 사랑하여 극복한다. 탐욕은 재물을 남에게 주고 인색함을 없애며 극복한다. 성내는 것은 참으며 극복한다. 식탐은 먹고 마시는 것을 담박하게 하여 극복한다. 음란함은 욕망을 끊음으로써 극복한다. 나태함은 선행을 부지런히 함으로써 극복한다. 악을 극복하는 것은 선이다. 겸손함, 사랑, 베풂, 인내, 담박, 절제, 부지런함 등이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후회를 덜 하게 한다. ‘칠극’에서 겸손함을 으뜸으로 제시한 이유도 인간이 겸손함을 잃고 오만하에 사로 잡히는 것이 모든 죄의 시작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집회서> 10장 13절에 “오만은 죄의 시작이므로 오만에 사로잡힌 자는 악취를 낸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런 자들에게 엄청난 벌을 내리시며 그를 명망 시키신다.”라고 했다.
6.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인간에게 아는 것에 신중하고 모르는 것은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겸손함을 강조한 것이다. 일본의 핵폐기수가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이비 과학자와 정치인의 오만함은 죄악의 시작이다. 과학은 실험과 관찰을 통해 검증하고 누구나 재현가능하며 예측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사이비 과학자는 이를 거부하고 근거없는 주장만 한다. 핵폐기수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모른다. 그런데도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다문궐의 하지 않는 것이고 이는 오만한 것이다.
7. 유시민의 『문과남자의 과학공부』 71쪽에 “칸트는 자신의 시대를 넘어서지 못했다. 칸트만 그런 게 아니다. 어떤 천재도 자신의 시대를 완전히 넘어서지는 못한다. 칸트의 인식론은 불가지론(不可知論)이다. 사물이 우리의 주관과 무관하게 존재하지만 우리는 사물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무얼 알고 무얼 모르는지 알았다. 그런 점에서 남달랐다. 존경받을 자격이 있다.”라고 했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 조금 더 겸손하고 조금 더 다문궐의 했으면 좋겠다. 사비이는 사회적 킬러문항이라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