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왜 김훈 문학은 갈길을 잃었나?]

<칼의 노래>와 <하얼빈>에 대하여

by 백승호

문학의 대상은 인간과 삶이다. 문학은 우리 삶을 둘러싼 자연과 사회구조를 통찰하고 그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마음과 감정을 드러낸다. 작가는 시대정신과 올바른 세계관으로 현실을 통찰하고 글을 통해 어두운 시대의 빛을 밝혀주기도 하고 세계의 나아가야 할 방향과 불을 밝혀주기도 한다.


최근 작가 김훈의 칼럼이 논란이 되어 그의 문학과 지난날의 행적을 새롭게 조명하며 비판하기도 한다. 김훈의 세계관과 인식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가 살펴보기 위해 우선 김훈의 대표작 <칼의 노래>와 <하얼빈>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평론가 고명철은 김훈, 또는 김훈소설의 문제점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는 '문언유착'으로 김훈 소설에 대한 언론의 과도한 조명이며, 둘째는 역사적 주인공의 개별화 또는 개별화된 진실의 탈역사성 문제를 지적한다. 언론과 출판사, 평론가와 출판사의 유착관계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칭찬일색의 ‘주례사 비평’으로 독자의 판단을 흐리게하고, 광고는 감성마케팅으로 독자의 지적 욕망을 자극한다. 사회관계 소통망(SNS)은 대중매체보다 더 빠르게 평판을 확대재생산하고 책은 불티나게 팔린다. 타당성을 잃은 평론가의 비평은 신뢰를 잃은 지 오래고, 각종 문학상은 작품성보다 상품성을 보장하는 상표가 되었다. 또한 작가의 말과 글이 삶과 일치하지 않고, 많이 팔리는 사람이 최고라는 인식이 세상을 지배한 지 오래되었다. 독자의 감성만 자극할 것이 아니라 작가는 사회와 개인을 이해하며 독자를 헤아리는 따뜻한 감수성을 먼저 지녀야 한다.


문학은 현실에서 이상을 지향한다. 즉, 있는 것에서 있어야 할 것을 지향한다. 작가는 현실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문학을 통해 형상화한다. 그래서 작가는 당대의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올바른 세계관을 갖추어야 한다. 인류보편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세계관을 문학 속에 담고 있어야 한다. 작가가 현실을 도피하거나 허무주의나 패배주의로 비관하며 좌절하여 절망하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혁명적 낙관이나 현실주의적 낙관을 제시할 때, 우리 삶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고명철은 김훈의 <칼의 노래>에 관하여 “개별적 진실을 탐구하는 것과 개별적 진실을 맹목 화하는 것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그 예로 ‘나는 정치적 상징성과 나의 군사를 바꿀 수 없었다’(<칼의 노래> 1권 32쪽) 라거나, ‘나는 다만 임금의 칼에 죽기는 싫었다’(71쪽),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74쪽) 등도 결국 이순신의 개별적 진실이 담긴 고백이 아니라 김훈이 창조해 낸 이순신이란 인물이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고명철은 “독자들이 <칼의 노래>를 읽으며 이순신의 개별적 진실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고 있다.


김훈은 언제나 역사와 현실문제에 관하여 사회구조나 시스템보다 개인 내면에 집착하여 현학적이고 현란한 문체로 문제의식을 왜곡하거나 은폐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 관하여 김훈은 스스로도 “언어를 불신하기 때문에 언어로 표현되는 어떠한 것도 진실이라고 신뢰하지 못하며, 진실 표현의 불가능을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동어 반복의 뒤엉킴”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김훈은 이순신의 삶에 대하여 역사나 사회의 거대담론을 배제하고 개인의 내면적 고뇌와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전하기 위한 글을 썼다고 한다. 이태근은 <신역사주의와 한국 역사소설의 신경향>이라는 논문에서 이순신이 중시했던 충과 의라는 가치를 배제하고 공허한 가치와 자잘한 심리적 묘사로 가득 채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순신의 공적이고 사회적 삶을 도외시하고 생물학적이고 개인적 삶에 천착하여 이순신의 영웅적 모습보다 인간적 모습을 그리기는 했지만, 이순신의 진면목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김훈은 생물학적 존재로서 이순신의 모습을 감각적 느낌으로 묘사하여 징징거리며 늙은이 배 앓는 소리 같은 내면적 독백으로 여백 없이 매워놓았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도진순도 김훈의 <하얼빈>을 비판한 적이 있다. 도진순은 “안중근의 ‘영웅’ 그늘을 걷어내고 필부의 한국인으로 내려온 것은 이토를 쏴 죽인 ‘포수’로서가 아니라, 사형 선고 이후 40일 동안의 성찰을 거쳐 ‘대한제국의 일개 인민’이란 의미의 ‘대한국인’이라는 정체성에 도달한 지점을 중시하고 있다고 하였다. 도진순은 <하얼빈> 소설에서 강조한 ‘포수, 무직, 담배팔이’라는 세 단어 기본프레임을 비판한다. 안중근이 체포된 뒤 검찰 신문에서 직업을 ‘포수’라고 한 것은 동지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시간을 버는 전략에서 한 말이지 진짜 ‘포수’라는 것은 아니다. 안중근은 사냥꾼이나 포수 생활을 한 적이 없었다. 또 재판과정에서 ‘무직’이라 한 것 역시 실업자나 생활 곤궁자라는 의미가 아니라 ‘직업적 의병(義兵)’ ‘대한의군 참모중장’이라는 사실을 돌려서 표현한 일종의 복화술이었다”라고 했다. 그리고 도진순은 “우덕순이 스스로를 ‘담배팔이’라고 한 것은 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이었지만, 안중근과는 달리 ‘의병이 아니다’는 것을 강조해 죄를 면하기 위한 진술이다.”라고 했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거나 말과 글이 삶과 일치하지 않으면 말과 글을 줄이거나 쓰지 않아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 세계관이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현실을 직시하며 관찰을 새롭게 하여 올바른 세계관을 정립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세계관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따뜻한 감수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작가가 개인 삶의 총체성을 왜곡하여 허무주의를 내면적 독백으로 형상화한다면 사회 구조적 모순이나 인간 본연의 모습 그 어느 것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다. 이순신과 안중근을 작품화할 때, 영웅의 그늘을 걷어내고 한 인간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은 작가의 자유다. 하지만 지나친 개별화나 반역사성으로 역사적 인식과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살펴보지 못한다면 독자에게 현실과 역사 인식을 왜곡할 수 있으며, 희망과 낙관적 현실인식을 주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문학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돌아보게 하고, 더 살만한 세계로 나아가게 할 때 의미 있다. 역사적 주인공을 개별화하여 진실을 왜곡하는 것은 우리 삶의 설 자리와 갈 길을 더욱 어둡게 한다. 문학의 힘은 사람들에게 바르게 살아갈 길을 일러주고 낙관과 희망을 줄 때 더욱 커진다.



올바른 평론은 흐려진 거울을 닦아 작가와 독자를 성찰하게 하고 문학의 본질을 더 빛나게 하여 작가와 독자의 올바른 길라잡이 역할을 해야 한다. 칸트는 “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고 했다. 올바른 세계관으로 개념을 갖추고 내용을 충실하게 채워야 삶과 글이 일치하는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한다. 치열한 성찰과 노력을 축적하여 과정에 진정성을 다해야 문학의 알맹이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김훈의 문학이 허무주의 슬픈 울음이 아니라 혁명적 낙관의 기쁜 노래를 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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