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균 죽음의 미안(未安)함과 지안(至安)을 바라며
“지안, 편안함에 이르렀나?”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며
마음의 평온과 평화, 편안함을 주었던
나의 아저씨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자신의 많은 외로움과 고통을 넘어
또 다른 고통을 껴안아 주며
어른다운 어른의 모습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던 그의 모습은 이제 영상 속에만 남아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아픔 속에서 고통스러워할 때
다정하고 따뜻한 웃음으로 너그럽게 품어주었던
거의 넉넉한 마음
담담하게 웃음 지으며
떠나는 박동훈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명한데
그는 이제 가고 없어 안타까움이 가슴 깊은 곳에 밀려오고
그를 그렇게 만든 이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차가운 겨울밤, 공원의 차 속에서
얼마나 울었을까요?
외로움과 고독과 불안과 공포는
죽음보다 더 두려웠을 것입니다.
세상을 아수라 지옥으로 만드는
모질고 악랄한 검경언은 살인집단이라 생각합니다.
검경은 피의사실공표하고 기레기들은 확성기로 퍼뜨리고
사이버렉카는 확대재생하하고 대중은 온갖 혐오와 가시 돋친 비난을 했습니다.
검경언과 모멸의 말을 쏟아낸 사람들이 합작하여
여론재판을 했고
그는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명백히 사회적 타살입니다.
양심과 성찰적 자아가 강했던 그는
명예와 인격이 사라지고 삶의 존엄을 수시로 짓밟혀가는 순간순간이
죽음보다 더 괴로운 시간이었을 것이고
숨 쉬고 견디고 버티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피의사실 공표는 사회적 관계를 끊어버리고
인격적 존재를 죽이고
실존적 살인을 하는 것입니다.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면 극도의 외로움에 빠지게 되고
인격 살인과 실존적 살인을 당한 사람은
고독과 우울 속에 극도의 불안을 느끼며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형제도는 있지만 사형은 없는 나라라고 했지만
수시로 공권력을 남발하고
검경언 합작으로 인격살인 공개처형 하는 악마의 나라입니다.
피의자가 죽으면 '공소권 없음'을 발표하고
책임을 다한 듯, 선심을 베풀듯,
“그래 보았지 죽어야 해결된다” 라고 말하며
하나의 사건으로 종결짓고 맙니다.
언론은 잠시 혐오와 모멸의 말을 멈추고 동정과 추모 소식을 전하며
언제 그랬냐는 듯 기사를 쏟아내고
또 하나의 사건이 터질 때까지 잠시 슬픈 척하고
또 잊히고 잊고 살아갑니다.
언제까지 이러한 것을 되풀이해야 하는지 안타깝고 갑갑하고 답답합니다.
<나의 아저씨> '어른'의 노랫말처럼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아무도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해 미안(未安)할 뿐입니다.
세상이 그에 대한 혐오와 모멸감을 줄 때
그는 잠시 멈추었다 다시 일어나길 바랐지만
차가운 한겨울 얼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살아남자의 미안(未安)함이 두 번 다시없기를 바라고
그곳에서는
진심으로 지안(至安)! 편안함에 이르길 바랍니다.
비록 이선균은 없지만 박동훈의 웃음과
넉넉한 마음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