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넓게 포용하고 나누어 주어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는 사람과 멀리 떨어진 것이 아니니, 사람이 도를 행하는데 사람의 삶과 멀리 떨어진 것을 한다면 이는 도를 행한다고 할 수 없다.
子曰 道不遠人하니 人之爲道而遠人이면 不可以爲道니라
자왈 도불원인하니 인지위도이원인이면 불가이위도니라
시경에 읊고 있다. 도낏자루를 벤다, 도낏자루를 벤다. 그 본이 멀지 않구나. 도끼 자루를 잡고 도낏자루를 베니 흘겨보고(대중 잡아보고) 오히려 멀다고 생각하니 그러므로 군자는 사람으로서(사람의 도리) 사람을 다스리다가 고치면 그친다.(그만둔다.)
詩云伐柯伐柯여 其則不遠이라하니 執柯以伐柯하되 睨而視之하고 猶以爲遠하나니 故로君子는以人治人하다가 改而止하니라
시운벌가벌가여 기칙불원이라하니 집가이벌가하되 예이시지하고 유이위원하나니 고로군자는이인치인하다가 개이지하니라
제13장은 12장의 군자지도(君子之道) 비이은(費而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도는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생활 속에 있다. 사람과 멀리 떨어지고 사람의 삶과 관련이 없다면 도라고 할 수 없다. 도는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일상 속에 도가 있다. 이는 마치 도끼 자루를 마련하려면 손에 쥐고 있는 도끼 자루를 보고 마련하면 되는 이치와 같다. 신발의 본은 발이다. 발은 나의 몸에 있다. 나의 발을 보고 길이와 넓이를 맞추면 되는데 멀리서 신발의 본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일상의 평범한 삶 속에 도는 살아있다.
충과 서는 도에서 떨어져 진 것이 멀지 않으니 자기에게 행하여(베풀어) 원치 않는 것을 또한 남에게 행하지(베풀지) 마라.
忠恕違道不遠하니 施諸己而不願을 亦勿施於人이니라
충서위도불원하니 시제기이불원을 역물시어인이니라
충서는 중용을 구체적 의지로 실현하는 원칙이다. 인간은 착한 본성을 하늘로부터 받았는데 자신의 의지로 선한 행위를 하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 선한 행위를 하려면 먼저, 자신이 선한 행위를 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선한 행위를 하려고 진심을 다하는 것이 충이다.
서(恕)는 나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은 같다는 것을 말한다. 『논어』「안연」「위령공」에 나오는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하는 것이다. 이는 다산이 말한 추서(推恕)라 할 수 있다. 다산은 『대학공의大學公議』에서 서(恕)를 추서(推恕)와 용서(容恕)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추서는 스스로 수양하는 것을 주로 하여 자기의 선을 행하는 것이고, 용서는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주로 하여 다른 사람의 악을 너그럽게 보아주는 것이다. 이 어찌 같은 것이겠는가?
推恕者。主於自修。所以行己之善也。容恕者。主於治人。所以寬人之惡也。斯豈一樣之物乎。《대학공의大學公議》 추서는 자신을 다스리고 나의 마음을 미루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다. 즉,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여 타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추서는 반구제기 혈구지도와 관련이 있다.
용서는 타인을 다스리는 것과 관련되어 다른 사람의 나쁜 것을 너그럽게 헤아려 주는 것을 말한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때 나도 그러한 요구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 돌이켜 보고 갖추려고 노력해야 한다. 남의 단점이나 나쁜 것을 말하려면 자신에게는 그러한 허물이 없는지 돌이켜 보아야 한다. 자신의 허물은 고치지 않고 남의 허물을 지적하거나 자신은 할 수 없으면서 남에게 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내로남불’ 하지 않는 것이 추서(推恕)의 의미이다.
김주환은 『내면소통』에서 용서를 이렇게 말한다. “긍정적 내면소통의 첫걸음은 용서다. '용서하기(forgiving)'는 무엇인가를 '앞으로 주는 것 (giving forward)'이다. 뒤돌아보아 과거에 집착하거나 얽매이기보다는 앞을 내다보고 미래를 향해 나가면서 다 내어주는 것이 용서다. 뒤돌아보아 앙갚음하고 빼앗는 것이 복수라면 앞을 보고 내어주는 것이 용서다.” 용서가 시중(時中)의 의미를 갖는다는 것도 말하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또 김주환은 용서를 자기 용서와 타인용서 두 가지로 설명한다. “용서의 대상에는 자기 용서와 타인용서가 있다. 자기 용서란 자신이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스스로 비난하고 자기혐오와 죄책감에 빠지는 것을 그만두는 것이며, 타인용서란 다른 사람이 내게 끼친 해악에 대해 용서하고 너그러운 마음을 지니는 것이다”
김주환은 자기 용서로 자기혐오와 지나친 죄책감에 빠지는 것을 경계한다. 물론 자기 성찰을 통하여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지 자신의 모든 잘못을 무조건 용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타인용서는 똘레랑스 즉, 관용이다. 나와 다른 점을 인정하고 타인의 잘못에 대해 넓은 마음으로 헤아린다는 것이다. 타인용서는 남의 악한 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인류보편적 윤리를 훼손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군자의 도는 네 가지인데 나는 하나도 능히 할 수 없도다. 자식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아버지 섬기는 것을 할 수 없으며, 신하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임금 섬기는 것을 능히 할 수 없으며, 아우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형 섬기는 것을 능히 할 수 없으며, 친구에게 요구하는 것으로 먼저 베푸는 것을 할 수 없도다. 늘 떳떳하게 덕을 행하며 늘 말을 조심하여, 부족한 것이 있거든 감히 힘쓰지 않을 수 없으며, 남음이 있거든 감히 다하지 않으며,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아 (언행이 일치하도록 해야 하니) 군자는 어찌 삼가고 조심조심하지 않겠는가?
君子之道四에 丘未能一焉이로니 所求乎子로 以事父를未能也하며 所求乎臣으로 以事君을 未能也하며 所求乎弟로 以事兄을未能也하며 所求朋友로 先施之를未能也로니 庸德之行하며 庸言之謹하야 有所不足이어든 不敢不勉하며 有餘어든不敢盡하야 言顧行하며 行顧言이니 君子胡不慥慥爾리오
군자지도사에 구미능일언이로니 소구호자로 이사부를미능야하며 소구호신으로 이사군을 미능야하며 소구호제로 이사형을미능야하며 소구붕우로 선시지를미능야로니 용덕지행하며 용언지근하야 유소부족이어든 불감불면하며 유여어든불감진하야 언고행하며 행고언이니 군자호불조조이리오.
충과 서를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말한다. 내 자식에게 바라는 바가 있으면 이를 바탕으로 부모님에게 잘해드려야 한다. 자식에 이런저런 효를 바라면서 나는 불효를 한다면 이치에 맞지 않다. 아랫사람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이를 바탕으로 윗사람을 섬겨야 한다. 부하 직원이 업무를 잘하고, 문제 해결도 잘하길 바란다면 자신도 그러한 능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자신이 윗사람이 꼰대짓 하는 것을 싫어하면 아랫사람에게 꼰대짓 하면 안 된다. 형제끼리도 동생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이를 헤아려 형에게 잘해야 한다. 친구에게도 바라는 것이 있으면 이를 바탕으로 친구에게 잘해야 한다.
애덤 그랜트가 쓴 『기브 앤 테이커』에서 기버(Giver), 테이커(Taker), 매처(Matcher) 세 부류의 사람을 말한다. 남에게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려는 사람(giver)은 손해 보는 삶처럼 보이지만 더 많이 성장하고 성공한다. 이러한 사람은 남들에게 신뢰를 받고, 상호 협력을 잘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작은 이익을 추구하며 이기적인 사람(taker)은 남들이 신뢰하지 않고 싫어한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 테이커가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아갈 가능성이 많다. 가장 성취도가 높은 사람은 받아가는 것에 비해서 더 많이 주려는 성향을 지닌 사람이다. 남이 주는 만큼만 베푸는 사람(Matcher)은 손익을 잘 따져 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깍쟁이 같아서 사람들이 깊이 신뢰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마음을 잘 헤아려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진 기버가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