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15. 중용의 본질은 균형과 조화]

-공자의 중용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by 백승호

【16-04】 43/130 귀신은 신령스럽다.

시경에 이르기를 “신이 강림함을 헤아릴 수 없거늘 하물며 싫어할 수 있는가?” 하였다.

詩曰神之格思를 不可度思어늘 矧可射思아

시왈신지격사를 불가탁사어늘 신기역사아


【해설】

주자는 “귀(鬼)는 음기의 신령스러움이고 신(神)은 양기의 신령스러움다.”라고 했다. 천신지귀(天神地鬼)나 신출귀몰(神出鬼沒)은 귀와 신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하늘의 신과 땅의 귀는 조화를 이룬다. 하늘의 신이 역할을 하면 땅의 귀는 한 발 물러선다. 신은 긍정적 의미를, 귀는 마귀나 악귀 등 부정적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는 뜻이다. 제사를 올리는 것은 하늘의 신에게 올리는 것이다. 신이 오는 것을 알 수 없으나 신은 모든 만물에 자취를 남긴다. 신을 긍정하며 정성을 다하면 하늘도 감동한다. 지성이면 감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16-05】 44/130 모든 것은 보이지 않지만 서로 작용하니 정성을 다해야

대체로 은미한 것이 드러나게 되니 정성스러움을 가릴 수 없는 것이 이와 같구나!

夫微之顯이니 誠之不可揜이 如此夫인저

부미지현이니 성지불가엄이 여차부인저.


【해설】

작은 사물하나, 미생물 하나라도 허투루 존재하는 것은 없다. 존재는 목적을 가지며 의미를 가지고 태어난다. 모든 사물과 생명을 만든 귀신의 정성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귀신의 성실한 작용은 멈추지 않으며 정성을 다하여 살아가도록 한다. 그래서 귀신의 덕이 정성스러워 가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귀신은 무시무시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사물을 움직이는 작동원리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우주와 생명은 보이지 않는 작은 원자나 광자, 입자에 의해 움직인다. 이는 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초끈 이론과 같다. 초끈 이론은 모든 물질과 생명체를 구성하는 것은 끊임없이 진동하는 끈이 다양하게 진동하며 다양한 물질을 만든다고 여긴다. 우리는 원자나 초끈을 볼 수 없지만 현상은 존재한다.

모든 사물이 존재하는 것은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균형과 조화를 잘 이루는 것이 곧 중용이다. 전체와 부분의 균형과 조화, 거시세계와 미시세계의 균형과 조화, 우주와 원자의 균형과 조화, 사회와 개인의 균형과 조화를 이해하고 중용을 실천하고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세상은 전체를 이해하면서도 부분을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환원주의와 전일주의의 조화이다. 중용은 카오스와 코스모스의 사이에 있는 복잡계이고, 이 복잡계에서 코스모스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보어는 입자와 파동은 서로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 한다는 ‘상보성의 원리’를 말했는데, 이것이 바로 중용이 지향하는 것이 중용일 것이다. 이러한 균형과 조화를 알기 위해 배우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배움이란 더 잘 알고, 더 잘 살게 하는 것인데, 균형과 조화를 더 잘 알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중용의 이로움이다.

서양에서도 중용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선한 의지를 습관화해서 행복해야 한다고 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다. 그는 이성을 바탕으로 도덕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중용을 실천해야 행복에 이른다고 했다. 모든 존재는 목적을 지니고 있고 인간의 최상위 목적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리의 최종 목적은 행복인데 행복을 실현하려면 이성을 바탕으로 중용을 실천해야 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중용을 산술평균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비겁과 무모함 사이에서 선의지로 정의를 실천하는 용기를 중용이라고 생각했다. 즉 양 극단에서 최상의 습관이 중용이고 이것을 덕(Arete)이고, 중용이 실현되면 공동체가 모두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이라는 인식방법과 ‘용’이라는 실천윤리를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편벽되거나 치우치지 않도록 인식하며, 선한 의지로 지속적 실천을 해야 한다. 즉, 비겁과 무모함 사이의 용기가 중(中)이고 선의지로 습관이 되어 실천하는 것이 용(庸)이라는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