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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호 Feb 21. 2024

[중용 17. 부모의 역할]

-부모는 자식에게 나침반이고 거울이 되어야 


제18장 순임금의 도를 이은 문왕과 무왕

【18-01】 50/130 근심 없는 문왕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근심이 없는 사람은 오직 문왕이로구나! 왕계를 아버지로 삼으셨고, 무왕을 아들로 삼았시니 아버지가 왕업을 일으켰고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셨다.

子曰 無憂者는 其惟文王乎인저 以王季爲父하시고 以武王爲子하시니 父作之하고 子述之하시니라

자왈 무우자는 기유문왕호인저 이왕계위부하시고 이무왕위자하시니 부작지하고 자술지하시니라     


【해설】

 훌륭한 부모, 좋은 아들을 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문왕은 훌륭한 아버지 왕계, 좋은 아들 무왕을 두었으니 근심이 없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린 시절 상처를 가지고 살아간다. 상처를 극복하고 삶의 밑거름으로 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정서적인 따뜻함을 느끼지 못한 상처는 마음 둘 곳을 몰라 방황하기도 하고 조그만 정에도 쉽게 마음을 주기도 한다.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 중에 동기가 분명하지 않거나 삶의 목적이 좌절되어 지속적인 무력감에 빠지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매 맞고 자란 사람 중에 폭력을 행사하고 약자를 짓밟는 사람이 간혹 있다. 버려진 경험이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의심이 많아 신뢰를 하지 못해 불행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도 한다. 

 부모와 관계는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고 사람 관계를 맺는데 바탕이 된다. 부모와 관계가 좋은 사람은 고난과 좌절을 잘 극복하고 사회생활을 잘한다. 문왕은 너그럽고 공정하며 따뜻하고 자애로운 아버지 왕계의 사랑을 받고 자랐을 것이다. 이러한 부모아래 자란 문왕은 무왕에게도 따뜻하고 넓은 사랑을 주었을 것이다. 공자는 훌륭한 부모와 좋은 자식을 둔 문왕이야 말로 근심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부모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아이의 삶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좋은 부모가 되려는 노력이 자식에게 복이 되는 것이다. 자식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란다. 자식들에게 훈계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눈길이 중요하며 솔선수범이 소중한 가르침이 된다. 부모가 좋은 습관을 갖고 자기 관리를 잘하면 아이들도 부모를 본받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자기 관리는 엉망이면서 아이들에게 훈계하면 어느 자식이 부모를 좋게 보겠는가? 부모는 휴대폰 보고 TV시청하면서 자식들에게 공부하고 독서하라고 하면 아이들이 부모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에게 삶의 방향이 되는 나침반이 되고 성찰의 매개가 되는 거울이 되어주어야 한다.    


【18-02】 51/130 훌륭한 무왕

무왕이 태왕· 왕계· 문왕이 일으켜 놓은 왕업을 계승하여 한 번 군복을 입고 천하를 차지하셨다. 무왕 자신은 천하의 훌륭한 이름을 잃지 않아 존엄하기로는 천자가 되셨고, 부유하기로는 천하를 소유하시고, 종묘에서는 흠향하고 자손들이 그를 보존하는구나.

武王이 纘大王王季 文王之緖하사 壹戎衣而有天下하시되 身不失天下之顯名하사 尊爲天子시고 富有四海之內하사 宗廟饗之하시며 子孫保之하시니라

무왕이 찬대왕왕계 문왕지서하사 일융의이유천하하시되 신불실천하지현명하사 존위천자시고 부유사해지내하사 종묘향지하시며 자손보지하시니라     


【해설】

무왕의 성(姓)은 희(姬), 이름은 발(發)인데, 문왕의 둘째 아들이다. 기원전 1046년에 무왕이 군사를 일으켜 폭군 주(紂)를 정벌했다. 탕(湯)이 하(夏)의 폭군 걸왕(桀王)을 몰아내고 은(殷) 왕조를 세웠다. 은왕조는  주(紂)의 향락과 달기의 퇴폐적이고 엽기적인 행각으로 인하여 민심을 잃었다. 폭군 주(紂)의 횡보가 심해질 무렵, 주나라 문왕은 어진 정치를 펴서 백성의 신뢰를 받고 있었다. 또한 강태공을 재상으로 등용하여 나라의 체계를 세웠다. 문왕의 아들 무왕은 기원전 1046년 12월 중순, 주나라와 수많은 동맹 부족 및 국가들로 이루어진 연합군은 상나라의 수도 안양 바로 남쪽에 위치한 목야 평원에 진을 쳤다. 한편 주왕은 산둥반도에서 이민족들을 정복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기습 소식을 듣고 주력을 서쪽으로 회군하였지만 역부족이었다. 1045년 1월 20일, 주나라 연합군은 목야에서 전투를 하여 폭군 주를 물리친다.      


【18-03】 52/130 천명과 상제례

무왕이 말년에 천명을 받으셨기 때문에, 주공이 문왕과 무왕의 덕을 이루고, 태왕과 왕계를 왕으로 추존하고 무왕의 조상들을 천자의 예로 제사 지내니, 이러한 예는 제후 대부와 하급관리 백성들에게도 통용된다. 아버지가 대부고 아들이 선비가 되면 장례는 대부의 예로써 하고, 제사는 선비의 예로써 했다. 아버지가 선비이고 아들이 대부면 장례는 선비로 지내고 제사는 대부로 지냈다. 1년상은 대부까지만 통용되고, 3년상은 천자까지 통용되었며, 부모의 상은 귀천의 구분 없이 모두 한 가지다.”     

 武王이 末受命이어시늘 周公이 成文武之德하사 追王大王王季하시고 上祀先公以天子之禮하시니라 斯禮也 達乎諸侯大夫及士庶人하니 父爲大夫요 子爲士면 葬以大夫요 祭以士하며 父爲士요 子爲大夫면 葬以士요 祭以大夫하야 期之喪은 達乎大夫하고 三年之喪은 達乎天子하니 父母之喪은 無貴賤一也니라       

  무왕이 말수명이어시늘 주공이 성문무지덕하사 추왕대왕왕계하시고 상사선공이천자지례하시니라 사례야 달호제후대부급사서인하니 부위대부요 자위사면 장이대부요 제이사하며 부위사요 자위대부면 장이사요 제이대부하야 기지상은 달호대부하고 삼년지상은 달호천자하니 부모지상은 무귀천일야니라.     


【해설】

은나라 폭군 주(紂)를 물리친 무왕은 주왕의 아들 무경을 은나라의 새로운 지배자로 임명했다. 그리고 무왕의 동생 관숙과 채숙에게 무경을 감시하게 했다. 무왕은 기원전 1043년에 죽고 난 뒤 무왕의 아들 성왕이 대를 이었지만 무왕의 동생인 주공이 섭정을 하였다. 주공은 문왕과 무왕의 덕을 이루고, 태왕과 왕계를 왕으로 추존임금으로 모시고, 무왕의 조상들을 천자의 예로 제사 지냈다. 장례는 죽은 자의 신분에 따라 지내고 제사는 산자의 신분에 따라 지낸다는 관례를 만들어 장례와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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