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07】 47/498 공자의 활쏘기와 우리 양궁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다투는 일이 없으나, 반드시 활쏘기에서는 다툰다. 읍하고 사양하면서 당에 오르고 내려와서 지면 벌주를 마신다. 그러한 다툼이 군자의 다툼이니라.”라고 하셨다.
子曰 君子는 無所爭이나 必也射乎인저 揖讓而升하고 下而飮하나니
자왈 군자는 무소쟁이나 필야사호인저 읍양이승하여 하이음하나니
其爭也君子니라
기쟁야군자니라
공자는 활쏘기를 군자의 진정한 다툼이라 한 것은 활쏘기는 남과 겨루어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과 겨루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활쏘기는 다른 사람과 겨루거나 다른 사람이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실력으로 화살을 과녁을 향해 쏘고 과녁에 맞은 것으로 점수를 매긴다. 바람과 기온 등 날씨라는 외부의 영향이 있지만 자신의 경험과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 자신의 온몸으로 바람을 느끼고 과녁 근처에 부는 바람을 헤아려 활을 쏜다. 모든 것이 오로지 자신에게 달려있고, 그 결과도 자신의 책임이다. 이러한 활쏘기는 과정과 결과에 남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살아가다 보면 남과 겨루는 것을 피할 수 없지만 먼저 자신을 극복해야 한다. 힘과 슬기를 다하여 서로 이기려고 맞서는 것을 겨룬다고 한다. 다툼은 목숨과 관계없이 말로써 서로 겨루는 것을 말하고, 싸움은 목숨을 걸고 힘과 슬기로 서로 겨루는 것을 말한다. 군자는 서로 겨루기는 하지만 꼭 필요할 때 다투고 목숨을 해치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 겨루는 경쟁이란 같은 목적 혹은 같은 대상을 두고 사람들이 겨루거나 다투는 행위를 말한다. 각종 대회나 시험의 점수 경쟁, 선거판의 우열 경쟁, 컴퓨터나 차의 속도 경쟁 등 우리의 삶은 경쟁의 연속이다. '경쟁'이라는 라틴어의 어원은 '최선의 결론을 얻기 위해 함께 한다'라는 의미이다. 즉, 선의의 경쟁을 의미하는 것으로 공정한 규칙이나 규율에 따라 서로 겨루고 패배자가 승자를 인정하고 축하하는 것이 경쟁의 본래 의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정한 규칙이나 규율에 따르지 않고 경쟁의 출발선과 과정, 그리고 결과에 대한 공정성이 없으면 선의의 경쟁이라 할 수 없다.
경쟁은 이처럼 유용한 점이 많다. 열심히 노력하여 더 많은 성과를 낸 사람이 많이 분배받아야 하는 것은 누구나 부인하기 어렵다. 자유 경쟁 체제가 사회를 발전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경쟁으로 인한 폐해도 많다. 경쟁은 인간을 도구화하고 인간관계의 긴장을 초래하며, 강자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불평등이 굳어지어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현실적으로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경쟁의 폐해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경쟁의 기회 및 조건을 평등하게 하고 공정한 경쟁을 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그러한 제도적 보완 장치 없이 자율적 경쟁을 조장하거나 유도한다면 경쟁에서 패한 많은 사람은 우울한 미래를 맞이할 것이고 소수의 승자 중심의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다. 개인적인 경쟁을 하면서도 사회 전체의 공적 차원에서는 협력해야 한다. 경쟁의 원래 어원처럼 '함께 추구한다'라는 의식을 가질 때 진정한 의미의 경쟁이라 할 수 있다.
도쿄 올림픽 양궁 금메달을 딴 안산 선수는 유퀴즈에 나와서 양궁이 주는 매력은 공정성이라 했다. “누가 저를 평가해서 점수를 주는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결과, 스스로 저를 평가할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공자가 말한 활쏘기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이 책은 부제는 “경쟁은 누구도 승자로 만들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경쟁적 본성이 시작되는 영국의 한 가정에서부터 거대한 현대식 전쟁터가 되어버린 뉴욕의 월스트리트까지 저자는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현 모습을 선명한 활자로 담으며, 그들이 왜 이토록 경쟁에 내몰린 삶을 살게 되었는지와 그 근본적인 원인을 날카롭게 통찰한다. 한병철도 『피로사회』에서 성과를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쟁에 이기기 위해 긍정성을 바탕으로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아는 피로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은 우울증을 낳는다.”라고 지적한다.
자하가 묻기를, “『시경』에 ‘예쁜 웃음에 귀여운 보조개여! 아름다운 눈에 맑은 눈동자여! 흰 바탕에 고운 채색이여!’라고 하니 이 시는 무엇을 이르는 것입니까?” 하니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림을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다음에 한다.”라고 하셨다. 자하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예악이 인의보다 나중이라는 말이군요.”라고 하자 공자 말씀하시기를, “나를 일깨우는 자는 자하로다.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논할 만하도다.”라고 하셨다.
子夏問曰 巧笑倩兮며 美目盼兮여 素以爲絢兮라하니 何謂也잇고
자하문왈 교소천혜며 미목반혜여 소이위현혜라하니 하위야잇고
子曰 繪事後素니라 曰禮後乎잇가 子曰 起予者는 商也라 始可與
자왈 회사후소니라 왈예후호잇가 자왈 기여자는 상야라 시가여
言詩已矣로다
언시이의로다
사람은 바탕이 착하고 어질어야 사람다운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바탕은 인성이다. 인성의 바탕은 따뜻하고 어진 마음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착한 인성을 바탕으로 갖추고 난 이후에 예악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통해 사람의 본성과 본질을 중시하는 공자의 교육철학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자 자하에 대해 극찬을 하여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스승이 제자에게 ‘나를 일으키는 자는 자하로다’는 한 마디와 ‘시를 논할 만하다’라는 말을 하여 제자를 인정하는 말이다. 가르치는 선생이 학생을 인정하는 것 중에 최고의 말은 함께 학문을 논할 수 있다며 대등한 위치로 인정하는 것이다. 오늘날도 인성이 실력인 시대이다. 바탕을 바르게 닦은 후 전문성과 실력을 기르면 더 사람답게 인정받고 살아갈 수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라의 예에 대하여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지만, (후손인) 기나라에 대한 일을 충분히 증명할 수 없어 증거가 부족하구나. 은나라의 예를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지만 (후손인)송나라의 일은 충분히 증명할 수 없구나. 문헌이 부족한 까닭이다. 만약 자료가 충분하다면 내가 충분히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子曰夏禮를 吾能言之나 杞不足徵也며 殷禮를 吾能言之나 宋不足徵也
자왈 하례를 오능언지나 기부족징야며 은예를 오능언지나 송부족징야는
文獻不足故也니 足則吾能徵之矣로리라
는 문헌부족고야니 족즉오능징지의로리라
춘추시대에는 고대 문화에 관한 책이나 문화의 근거가 되는 문헌 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하나라와 은나라의 문명을 고증하려고 해도 자료가 부족하여 증명할 수 없었다. 문헌만 충분히 남아 있으면 얼마든지 증명할 수 있다고 한다.
가르칠 때는 주장과 근거를 명확하게 제시하여 설명해야 한다. 그래야 배우는 사람이 정확하게 배운다. 주장이 명확하지 않으면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다. 근거가 부족하거나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면 납득이 되지 않는다. 가르치는 사람은 근거나 이유를 알아야 하고 배우는 사람도 정확하게 알기 위해 근거나 예시를 풍부하게 공부해야 한다.
* 오늘 그림은 로빈후드 화살이다. 도쿄올림픽 양궁 혼성 준결승전에서 김제덕 선수가 쏜 10점 화살에
안산 선수가 쏜 화살이 꿰뚫었다. 로빈후드 화살의 확률은 0.0058%의 확률이라고 한다. 로빈후드의 화살은 과녁의 정가운데를 맞추는 불스아이(bullseye) 보다 훨씬 어렵다고 한다. 동쪽의 큰 활을 잘 쏘는 겨레 동이(東夷)의 후손답다. 이(夷)은 큰 대(大)와 활궁(弓)이 합쳐진 글자인데 큰 활 든 사람 이(夷)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