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에 열하일기 번역 연재를 할 예정입니다.
1. 최근에 연암 박지원에 관한 글을 많이 읽었다. 이재운의 <소설 연암 박지원>을 다시 읽고,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정민 <오늘 아침 나는 책을 읽었다> 정민 <산문집 1 체수유병집 글밭의 이삭 줍기> 정민 <사람을 읽고 책과 만나다> 박수밀 <박지원 글 짓는 법> 박수밀 <연암 산문의 멋> 박수밀 <연암, 경계에서 보다> 박수밀 <열하일기 첫걸음> 박희병 <연암을 읽는다> 김명호 <열하일기 연구> 그리고 여러 논문을 읽었다.
2. 『열하일기』는 이본이 많다. 이본은 대략 초고본 계열, 『열하일기』 계열, 『연암집』 외집 계열, 『연암집』 별집 계열 등으로 나눈다. 이중 가장 중요한 것이 『열하일기』 초고본 계열의 이본들이다. 『열하일기』 초고본들을 통해 그동안 필사본 형태로 존재했던 수많은 이본이 본래의 모습에서 어떻게 수정되고 변경되었는지, 『열하일기』의 개작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열하일기』 초고본은 연암이 쓴 『열하일기』의 처음 원고에 가장 가까운 자료로서 여타 이본들에서 삭제되거나 개작되기 전 『열하일기』의 최초의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하겠다.
3. 최근에 김혈조 교수가 『정본 열하일기』 간행했다. 『정본 열하일기』는 박영철 간행의 『연암집』 속에 별집의 형태로 수록된 『열하일기』를 그 저본으로 하여, 국내외의 수많은 『열하일기』 이본과 대조 교감해서 하나의 교합본으로 완성한 것이다.
돌베개 출판사에서 정본에 맞춰 김혈조 교수의 『열하일기』개정 2판을 펴냈다. 돌베개가 2009년에 출간한 완역본 『열하일기』(김혈조 옮김, 돌베개, 2009)는 ‘박영철본’을 저본으로 번역한 책이고, 8년 뒤에 출간한 개정신판 『열하일기』(김혈조 옮김, 돌베개, 2017)는 연민 이가원 선생이 기증한 친필초고본 『열하일기』 및 대표 이본 몇 가지를 교감하여 번역하고 수정한 책이다.
4. 조선을 대표하는 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창강 김택영(1850~1927)은 “조선 500년 역사에 퇴계, 율곡의 도학과 충무공의 용병, 연암의 문장, 이 세 가지가 나란히 특기할 만하다”라고 말했다. 현대에 들어와 서울대 국문과 명예교수인 박희병 교수는 그의 번역서인 『나의 아버지 박지원』(원제 ‘과정록’過庭錄; 돌베개, 1998) 서문에서 “영국에 셰익스피어가, 독일에 괴테가, 중국에 소동파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5. 윤규열은 열하일기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오늘 우리가 ‘조선 시대 최고의 고전’, ‘세계 최고의 여행기’라고 예찬하는 『열하일기』의 문학적 상업적 지위에 관해서는 더 이상 무슨 토를 달 수는 없을 것 같은 분위기이다. 하지만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오늘의 우리에게 있어서 『열하일기』의 번역 문제는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 있다. 중국의 우리 역사 왜곡이 심각한 오늘, 우리의 한문학은 영웅 만들기에 심취되어 부실한 번역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영국에는 셰익스피어가 있고, 독일에는 괴테가 있고, 중국에는 소동파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박지원이 있다”, “『열하일기』는 노마드(유목민)의 유쾌한 유목일지이다” 같은 유의 화려한 광고 문안이 『열하일기』의 오역이라는 서글픈 진실을 가볍게 가려 버렸다. 오늘날은 고전 번역에 있어서 과거에 비하면 옛 자료들을 찾아보기 쉬운 환경이다. 하지만 고전 원본을 뒤지기 싫어하는 게으른 번역 태도로 인하여 민족 최고의 고전이라고 찬미하는 문학 작품이 여전히 너무 깊은 오역의 구렁텅이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2017년 ‘새 번역 완역 결정판’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은 새 번역본에도 원본 문장의 전고나 낱말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아 잘못 옮긴 내용들이 많이 있었다. 박지원의 숨소리 하나조차 놓치지 않았다고 한 광고 문안과는 다르게, 리상호본과 이가원본의 잘못된 해석을 거의 그대로 베끼거나 엉뚱하게 해석한 문장도 꽤나 보였다. 원본의 여러 오류도 여전히 상당수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예컨대 「관내정사」에는 여인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화미조畵眉鳥라는 새의 울음소리에 비유한 구절이 있는데, 화미조의 울음소리를 여러 번역본에서는 ‘눈썹 그리는 소리’로 잘못 번역했다. 원문에는 “不識佳人何處在, 隔簾疑是畵眉聲”으로 나온다. (쉬욤출판사 『열하일기』 1권 424쪽 참조).
리상호본: 모를러라 예쁜 그대 어데 있던고? 주렴 속에 들리는 그 소릴러라.
이가원본: 아리따운 님이시여 있는 곳을 몰랐더니 눈썹 그리는 그 소리 주렴 넘어 들리는 듯
김혈조본: 모를레라, 임이 어느 곳에 있는 줄. 발 넘어 눈썹 그리는 소리, 그 님이 아닐까?
윤규열본: 아름다운 여인이 어느 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렴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마도 화미조가 노래하는 소리일 것이다.
다음은 「곡정필담」에서 곡정이 연암에게 피곤해하는 윤가전은 매일 한낮에 ‘웅경조신熊經鳥伸’이라는 양생법을 행한다고 설명하는 구절이다. 웅경조신은 『장자』에 나오는 도가의 양생법으로, 곰처럼 나무에 매달리고 새처럼 다리를 쭉 뻗는 동작을 취한다. 원본에는 “不欲令人見他, 熊鳥小數”로 나온다. (쉬욤출판사 『열하일기』 2권 449쪽 참조).
리상호본: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의 초라한 꼴을 보이지 않도록 하고 싶어 그렇지….
이가원본: …남들에게 그의 이런 꼴을 뵈지 않으려고 했긴 하나….
김혈조본: …남들에게 자신이 하는 양생법의 하찮은 기예를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윤규열본: …남에게 자신의 하찮은 웅경조신 수련법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6.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문 원본은 읽기가 쉽지 않다. 중국 문헌과 우리나라의 수많은 전고와 성어로 이루어져 있어 온전하게 이해하기란 어렵다. 고전을 온전하게 번역하는 것도 쉽지 않다. 『열하일기』의 번역본은 김성칠본, 이가원본, 리상호본, 김혈조본, 고미숙본, 윤규열본이 있다. 김성칠 번역본은 부분적으로 읽어보았을 뿐 전체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열하일기 원본과 열하일기 번역본을 대조하여 열하일기를 정독하고자 한다.
『열하일기』1, 2, 이가원 역, 민족문화추진회, 1966.
『열하일기』1, 2, 이가원 역, 올재, 2013
『열하일기』 상, 중, 하, 리상호 역, 보리, 2004.
『열하일기』 상, 하, 고미숙 역, 그린비, 2008
『열하일기』 1, 2, 3 김혈조 역, 돌베개 2017 개정신판
『열하일기』 1, 2, 3 김혈조 역, 돌베개 2025 개정 2판
『열하일기』 1, 2 윤규열 역, 쉬욤, 2020
7. 윤규열이 김혈조 『열하일기』 1, 2, 3의 오역을 지적했지만 다시 읽어보니 한 곳 정도를 수정했다. 『열하일기 3』, 돌베개(2017), p208 고라니 뿔은 큰 사슴뿔로 고쳤다. 그래서 이번에 한문 원문과 번역본 여러 개를 함께 읽어 보려고 한다.
김혈조의 열하일기 번역은 훌륭하다. 그리고 윤규열의 지적도 타당한 부분이 있다.
8. 『열하일기(熱河日記)』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이자 문인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이 1780년(정조 4년) 청나라 건륭제의 칠순 만수절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단에 참가하여, 연경(北京)과 열하(熱河)를 다녀온 뒤 작성한 기행문이다. 김명호는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사상적 논설, 시화와 잡록, 문서나 서적으로부터의 발췌 등 다종다양한 내용을 수록한 백과전서적 체제를 갖춘 저작이다.”라고 했다. 『열하일기』는 여행기록이면서 독서일기다. 그 속에 문학과 역사, 철학, 사상 등이 녹아있다.
박지원은 1780년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에 입국하여, 10월 27일 서울로 돌아올 때까지 약 4개월간의 사행 여정을 기록하였으며, 이후 3년에 걸쳐 이를 26권의 분량으로 정리하여 『열하일기』를 완성하였다. 특히 1783년에 작성된 「도강록서」의 존재로 미루어 보아, 이 해에 전체 집필이 마무리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32년 박영철에 의해 『연암집』에 수록되어 간행되며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 기록을 넘어, 박지원의 현실 인식과 실학적 사유가 녹아든 종합적인 문명 비평서로 평가된다. 공간적 관점에서는 중국의 산천과 풍토, 지리적 특성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시간적 관점에서는 중국의 역사와 문명의 흐름을 포착하고자 했다. 문화적 관점에서는 문물과 제도, 풍속을 비교하며 조선과 청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였다. 특히 실학의 핵심인 이용후생(利用厚生)의 관점에서, 중국의 기술 문물과 사회 제도의 실용성과 경제적 효용성을 면밀히 탐구하였다.
『열하일기』는 기행문이라는 외양 아래 우언과 외전의 형식을 빌려, 현실 정치·경제·문화에 대한 통찰과 비판을 담은 조선 후기 최고의 문예 산문이자 사상서이다.
『열하일기』는 기행문이라는 외양 아래 우언과 외전의 형식을 빌려, 현실 정치·경제·문화에 대한 통찰과 비판을 담은 조선 후기 최고의 문예 산문이자 사상서이다.
9. 『열하일기』 1권부터 7권까지는 날짜별로, 8권부터 25권까지는 주제별 혹은 사건별로 이루어져 있다. 날짜별로 구성한 것을 편년체라고 하고, 사건별로 기록한 것을 기사체라고 한다. 기사체 대부분이 열하에서 체험한 일을 다룬 것이고 『황도기략』『알성퇴술』,『앙엽기』정도가 북경의 견문을 다룬 것이다.
전반부- 날짜별 일기 형식으로 된 편년체(編年體)
1권 도강록(渡江錄: 6월 24일~7월 9일)압록강을 건넌 이야기. 호곡장론, 이용후생론.
연암은 1780년 5월 25일 한양에서 출발했다.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넌다.
2권 성경잡지(盛京雜識: 7월 10일~7월 14일)심양의 이모저모,가상루와 예속재 방문 경험. 기상새설 소동.
십리하十里河에서 소흑산小黑山까지 5일 동안의 여정을 담았다. 성경(심양-선양)의 이런저런 이야기이다.
3권 일신수필(馹汛隨筆: 7월 15일~7월 23일)역참을 지나며 붓가는 대로 쓰다. 신광녕新廣寧에서 산해관山海關에 이르기까지 9일간의 기록. 일신수필은 말을 타고 달리듯 붓가는 대로 빠르게 쓴 이야기이다. 삼류 선비의 장관론. 수레 제도.
4권 관내정사(關內程史: 7월 24일~8월 4일) 산해관에서 연경燕京(북경)에 이르는 기록이다. 관내는 산해관을 말하는데, 만리장성 가장 동쪽의 성문이다. 백이관련 기사와 「호질虎叱」이 실려 있다.
5권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8월 5일~8월 9일) 연경에서 열하에 이르는 5일 동안의 기록이다. 막북은 사막의 북쪽을 뜻하는데, 만리장성의 북쪽 변방에 있다. 행정이란 여정을 말한다. 이별론과 고북구 관련 기사. 마두 창대의 고생담.
6권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8월 9일~8월 14일)태학관에 머문 기록.연암이 숙소인 열하의 태학太學에 묵으면서 청나라 학자들 필담을 나누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열녀와 효자에 관한 대화. 판첸라마 접견 소동.
7권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8월 15일~8월 20일)북경으로 돌아오다. 열하에서 연경으로 되돌아오는 6일 동안의 기록이다. 오미자 소동. 관우 숭상 풍속 비판.
후반부- 주제별로 묶은 기사체(記事體)
8권 경개록(傾蓋錄) 열하에서 만난 친구들. 태학관에 머물면서 만난 중국 학자들이야기.
9권 황교문답(黃教問答) 황교는 라마교이다. 라마교는 티베트 불교인데 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10권 반선시말(班禪始末) 판첸라마(반선)의 내력. 청나라 황제의 판첸라마 정책을 논평하고 황교와 불교의 다른 점을 밝힘.
11권 찰십륜포(札什倫布)반선을 만나다. 찰십륜포(수미복수지묘)는 티베트어로큰 스님이 살고 있는 곳이란 뜻. 반선에 대한 기록을 하고 있다.
12권 행재잡록(行在雜錄)사행 관련 문건들.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주고받던 외교 문서와 외교 문건들을 소개하고 있다.
13권 망양록(忘羊錄) 고금의 음악과 그 이론에 관한 필담을 기록한 것이다. 중국 학자와 음악에대한 견해를 주고받은 기록.
14권 심세편(審勢編)천하의 형세를 살피는 것이 심세다. 청나라의 문화 정책을 통해 천하의 대세 등을 살핀 글이다.
15권 곡정필담(鵠汀筆談)천체, 정치, 종교 등의 여러 주제로 곡정 왕민호와 16시간 필담한 내용이다.
16권 산장 잡기(山莊雜記)피서산장에서의 글. 열하 산장에서 쓴 여러 가지 글.「일야구도하기」 「야출고북구기」「상기」등 수록되어 있다.
17권 환희기(幻戯記) 열하에서 본 스무 가지 요술을 구경한 기록.
18권 피서록(避暑錄)피서산장에서 보고 들은 내용, 조선과 중국의 시문 논평한 기록이다.
19권 구외이문(口外異聞)장성 밖 기이한 이야기. 고북구 밖에서 보고들은 기이한 이야기.
20권 옥갑야화(玉匣夜話)옥갑에서의 밤 이야기. 「허생전」 수록.
21권 황도기략(黃圖紀略)북경의 이모저모. 북경의 명승지와 건물을 견학한 이야기.「황금대기」,「천주당」등 수록.
22권 알성퇴술(謁聖退述)공자 사당을 참배하고서. 북경의 유교 명승지를 중심으로 견문한 이야기. 「관상대」등 수록.
23권 앙엽기(盎葉記)적바림모음. 북경에 있는 유교 이외의 유적지.「마테오리치무덤」등 수록.
24권 동란섭필(銅蘭涉筆)동란재에서 쓰다. 구리로 만든 난초가 있는 방이란 뜻으로 이름 붙인 북경의 동란재에서 머물 때 쓴 글. 조선과 중국의 문화, 역사, 음악 등 수록.
25 권금료소초(金蓼小抄)의약처방 기록. 왕사정의 『향조필기』에서 의약에 관한 내용을 초록한 글. 박영철본에는 「보유」(補遺) 가운데 하나로 되어 있으나 다른 이본의 일반적인 구성을 고려하여 별도 권으로 나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