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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EC에서 발견한 웃음 외교의 매력]

― 유머와 여유가 만드는 가장 인간적인 매력 ―

by 백승호

1. 이번 APEC회의를 보고 신라 천년의 웃음이 현재에 이어지고 내일에도 이어졌으면 한다. 매력 있는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있고 유머가 있는 사람이다. 유머는 단순히 웃기는 능력이 아니라,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면서 세상을 부드럽게 만드는 지혜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웃게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리고 그 웃음에는 언제나 여유가 깃들어 있다. 진짜 매력은 그런 여유에서 시작된다.


2. 유쾌한 유머와 매력의 본질을 이야기할 때마다 연암 박지원이 떠오른다. 그는 천재였고, 다정하며 유머 감각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열하일기』 속에서 연암은 늘 유쾌한 웃음을 사람들에게 전했다. ‘호질(虎叱)’을 베껴 쓰던 그에게 주인이 물었다. “그걸 그렇게 열심히 베껴서 어디에 쓰려는 겁니까?” 연암은 웃으며 대답했다. “조선에 돌아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한바탕 웃게 하려고 합니다.” 그 대답에는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세상의 위선을 비판하면서도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 않는 온기가 남아 있었다. 연암의 웃음은 인간의 따뜻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세상을 풍자하고 인간의 허위의식을 비판하면서도 웃음을 사랑할 줄 알았다. 그런 태도야말로 매력의 시작이다. 진지하면서도 너무 가볍지 않은 그 절묘한 균형 속에서 사람들은 연암의 매력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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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025년 가을, 경주에서 열린 APEC 회담에서도 그런 웃음의 순간이 있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중국 브랜드 샤오미 스마트폰을 선물하자, 이 대통령은 웃으며 물었다. “통신보안은 잘됩니까?” 샤오미폰이 과거 보안 논란을 겪은 적이 있었기에 순간 주변 공기가 미묘해졌다. 그러나 시 주석은 웃으며 이렇게 응수했다. “백도어(뒷문)가 있는지 한번 확인해 보세요.” 그 한마디에 회담장은 웃음으로 가득 찼다. 민감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지만 유머 한마디가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었다. 그 웃음에는 정치적 계산보다 인간적인 신뢰와 말의 온도를 담고 있었다. 유머는 때로 외교보다 빠르고 언어보다 정확한 신호가 되기도 한다. 그날의 웃음은 “서로를 경계하기보다 웃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작은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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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PEC 공식 만찬에서 ‘나비, 함께 날다(Journey of Butterfly: Together, We Fly)’라는 주제로 문화 공연이 열렸고, 무대 위로 모터 소리가 나는 인공 나비가 날자 이재명 대통령이 웃으며 말했다. “나비는 원래 조용히 나는데, 이건 모터 소리가 나네요. 내년엔 진짜 나비를 만들어 날려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시 주석이 재치 있게 답했다. “그럼 노래하는 나비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짧은 대화 속에 ‘연결성이라는 APEC의 정신이 담겨 있었다. 서로 다른 언어, 다른 체제, 다른 문화권의 두 정상이 잠시 인간적인 웃음으로 교감하는 순간이었다. 정치적 담판보다 오래 남는 것은 이런 유머의 기억일지도 모른다. 웃음은 언제나 벽을 허무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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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 장면을 보며 문득 김이나 작가의 말을 떠올렸다. 그녀는 『보통의 언어들』에서 이렇게 썼다. “누군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많은 표현들 중 ‘매력 있다’는 말은, 한 사람이 가진 여러 면들의 다름이 기분 좋은 밸런스를 이루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나오는 말이다.” 매력은 완벽함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모순된 요소들이 기분 좋은 조화를 이룰 때 생긴다. 진지함 속에 허당미가 있고, 카리스마 속에 따뜻함이 있는 사람, 그런 균형을 갖춘 사람이 매력 있다. 유머는 분위기를 따뜻하게 하면서도 재미있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말의 온도를 유지하게 한다. 좋은 유머는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와 진정성에서 나온다. 그런 유머가 진짜 매력적인 유머다. 유머는 상대의 마음을 열고 관계의 온도를 조절하는 매개체다. 유머는 상대방에게 “나는 당신을 편하게 대하고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다. 그 한마디로 사람 사이의 거리감이 녹아내린다.


6. 사람의 관계를 무겁게 만드는 것은 대체로 진지함의 과잉이다. 서로를 오해하고, 말에 뼈가 있어 그 뜻을 곱씹고, 사소한 다름에도 마음이 굳어지기 쉽다. 그때 필요한 것이 유머다. 진심 어린 웃음은 오해를 지우고 마음의 경계를 낮춘다. 유머가 없는 진지함은 경직되고, 웃음이 없는 정의감은 사람을 멀어지게 만든다. 한 번은 친구가 크게 실수를 했을 때, 나는 괜히 충고하려다가 문득 멈췄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넌 실수조차 스타일리시하게 하네.” 친구는 웃었고, 그 웃음 뒤에야 진심 어린 대화가 이어졌다. 그때 알았다. 유머는 말을 열기보다 마음을 연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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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번 APEC 회담의 ‘웃음 외교’는 그래서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장면처럼 느껴졌다. 이재명 대통령의 유머는 사람의 마음을 열었고, 웃음은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유머는 인류의 공통 언어이자, 웃음은 서로 다른 문화를 잇는 가장 인간적인 다리다. 웃음이 있는 외교는 매력적인 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웃음이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인간이 된다. 유머와 웃음은 결국 여유와 이해의 다른 이름이다. 세상이 팍팍할수록, 진지한 얼굴보다 웃는 얼굴이 더 큰 용기가 된다. 김혜경 여사도 의장국인 한국 대통령의 배우자로서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정상들의 배우자 6명을 불국사로 초청했다. 김 여사가 길목에서 한 명씩 맞이했는데, 차에서 내린 이들은 김여사의 웃음에 웃음으로 화답하고 한눈에 들어오는 우리 한복의 아름다움에 연신 감탄사를 쏟아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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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람 관계를 좋게 하는 매력적인 유머는 남을 웃기기보다 함께 웃을 줄 아는 것이다. 말로 상대를 이기지 않고 웃음으로 마음을 얻는다. 자신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실수에도 미소로 답할 줄 아는 여유 있는 사람이 매력 있는 사람이다. 유머와 여유가 있을 때 사람은 매력적이고 세상은 가까워진다. 세상은 점점 빠르고 복잡해지지만 마음을 잇는 기술은 여전히 단순하다. 한 줄의 유머, 한마디의 웃음, 그것이면 충분하다. 진심이 담긴 웃음은 언제나 가장 매력적인 외교다. 사람 사이에서도, 나라 사이에서도, 그리고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도 많이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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