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6일 임오일 7월 초 7일 계미일
7월 초 6일 임오일
날이 맑게 개었다.
불어났던 시냇물이 조금 줄어들어 드디어 출발했다. 나는 정사의 가마에 함께 타고 물을 건넜다. 하인 삼십여 명이 알몸으로 가마를 메었다. 강 한가운데의 여울목에 이르렀을 때 가마가 별안간 왼쪽으로 기우뚱하면서 몇 번이나 떨어질 뻔했다. 정말 위태롭기 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정사와 서로 부둥켜안고 중심을 잡으면서 겨우 물에 빠지는 것을 모면했다. 맞은편 강기슭에 건너와서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의 목을 타고 건너기도 하고, 어떤 이는 좌우에서 서로 부축하면서 물을 건너기도 했다. 더러는 나무를 사립문처럼 엮은 뗏목을 만들어 그 위에 올라타고 하인 네 명이 그걸 어깨에 메고 건너기도 했다.
말을 타고 물 위에 떠서 건너는 사람들은 모두 머리를 쳐든 채 하늘만 바라보고 있거나 어떤 이는 두 눈을 꼭 감았고, 어떤 이는 억지로 웃기도 했다. 말을 부리는 하인들은 모두 안장을 풀어 어깨에 메고 건넜다. 물에 젖을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이미 건너온 사람이 어깨에 짐을 메고 다시 건너가기에 이상해서 물어보았더니, 아마 빈손으로 물에 들어가면 몸이 가벼워 떠내려가기 쉬우므로 반드시 무거운 것으로 어깨를 내리누르는 것이라고 했다. 몇 번씩이나 강을 건너왔다 갔다 한 사람들은 모두 추워서 덜덜 떨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산골짜기에서 내려오는 물이라 몹시 차갑기 때문이다.
初六日壬午 (晴) 溪漲小减 故遂發行 余入正使轎中同渡 下隸三十餘人 赤身擡轎 至中流湍急處 轎忽左傾幾墮 危哉危哉 與正使兩相抱持 僅免墊溺 渡在彼岸 望見渡水者 或騎人項 或左右相扶 或編木爲扉而乘之 使四人肩擡而渡 其乘馬浮渡者 莫不仰首視天 或緊閉雙目 或强顔嬉笑 廝隷皆解鞍肩荷而渡 意其恐濕也 旣渡者 又肩荷而返 恠而問之 “盖空手入水 則身輕易漂 故必以重物壓肩也” 數次往返者 莫不戰慄 山間水氣甚冷故也
초하구草河口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른바 답동畓洞이라는 곳이다. 이곳은 항상 늪처럼 질척거리는 진창이기 때문에 조선 사람들이 그렇게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분수령分水嶺, 고가령高家嶺,유가령劉家嶺을 넘어 연산관連山關에서 묵었다. 이날은 육십 리를 이동했다.
中火草河口 所謂畓洞 以其長時沮洳 故我人所名云 畓本無字 我東吏簿水田二字合書作會意 借音沓 踰分水嶺 高家嶺 劉家嶺 宿連山關 是日行六十里
밤에 조금 취하여 선잠이 깜빡 들었는데, 내 몸이 홀연 심양에 있는 게 아닌가. 궁궐과 성지, 여염집과 저잣거리는 화려하면서도 번화하며,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나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이곳이 이렇게 장관일 줄이야! 집에 돌아가서 자랑해야지."라고 생각하면서 훨훨 날아서 가는데 수많은 산과 강이 모두 내 발아래에 있었다. 마치 날아가는 솔개처럼 빨라서 눈 깜박할 사이에 한양 야곡冶谷(아현동 일대) 옛집에 도착하여 안방의 남쪽 창문 밑에 앉아 있었다. 형님(박희원朴喜源)께서 내게 물으셨다.
"심양은 어떻더냐?"
내가 공손히 대답했다.
“내가 듣던 것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나는 공손히 대답하면서 그곳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신이 나서 쉴 새 없이 계속 이야기했다. 남쪽 창문 밖을 내다보니 옆집의 무성한 회나무가 희미하게 보였는데, 그 위로 큰 별 하나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나는 큰 형님에게 공손히 여쭈었다.
"저 별을 아십니까?"
큰 형님이 대답했다.
"글세 별 이름은 잘 모르겠구나."
내가 말했다.
"저 별이 노인성(老人星남극성)입니다."
그러고는 일어나 형님께 절을 올리고 말했다.
"제가 잠시 집에 돌아온 것은 심양 이야기를 상세히 알려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 이제 다시 일행을 쫓아가야겠습니다."
방문을 나와서 안채를 지나 바깥채 쪽에 있는 문을 밀어젖혔다. 고개를 돌려 북쪽을 바라보았다. 지붕 위로 안현鞍峴(무악재)의 여러 봉우리가 또렷하게 보였다.
夜小醉微睡 身忽在瀋陽城中 宮闕城池閭閻市井 繁華壯麗 余自謂壯觀 不意其若此 吾當歸詑家中 遂翩翩而行 萬山千水 皆在履底 迅若飛鳶 頃刻至冶谷舊宅 坐內房南牕下 家兄問“瀋陽如何” 余恭對所見 “勝於所聞” 誇美亹娓 望見南牕外 隣家槐樹陰 陰上有大星一顆 炫爛搖光 余奉禀伯氏曰 “識此星乎” 伯氏曰 “不識其名” 余曰 “此老人星” 遂起拜 伯氏曰 “吾暫回家中 備說瀋陽 今復追程耳” 出戶經堂 推開外廊一門 回首北望 屋頭歷歷認鞍峴諸峯
그제야 퍼뜩 생각이 났다.
“이런 멍청한 일이 있나. 나 혼자 책문을 어떻게 통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여기에서 책문까지 천여 리나 되는데, 누가 사행을 멈춘 채 계속 나를 기다리고 있을꼬."
그래서 큰 소리를 질러보았지만, 후회스러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 했지만, 문지도리(돌쩌귀)가 너무 빡빡해서 열리지 않았다. 큰 소리로 장복을 불렀지만, 소리가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 않는다. 힘껏 대문을 밀어젖히다가 잠에서 바로 깨어났다. 마침 정사가 불렀다.
“연암燕巖”
나는 비몽사몽간에 이렇게 물었다.
"아 어 여기가 어디입니까?"
정사가 말했다.
“아까부터 잠꼬대를 했는데 웬 잠꼬대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이를 부딪치고, 뒷골을 툭툭 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제야 바로 머리가 상쾌해졌다. 하지만 서운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여 오랫동안 마음이 뒤숭숭하다. 그렇게 다시 잠에 들지 못한 채 뒤척거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날이 새는 줄도 몰랐다. 연산관은 일명 아골관鴉鶻關라고도 부른다.
忽自大悟曰 “迂闊迂闊 吾將何以獨自入柵” 自此至柵門千餘里 誰復待我停行乎 遂大聲叫喚 不勝悔懊 開門欲出 戶樞甚緊 大叫張福 而聲不出喉 排戶力猛 一推而覺 正使方呼燕巖 余猶恍惚應之 問曰 “此卽何地” 正使曰 “俄者夢囈頗久矣” 遂起坐敲齒彈腦 收召魂神 頓覺爽豁 而一悵一喜 久難爲悰 遂不能更睡 轉輾思想 不覺達曙 連山關 一名鴉鶻關
7월 초 7일 계미일
맑음.
길을 2 리쯤 더 가서 말을 타고 강을 건넜다. 강이 아주 넓지는 않았지만, 어제 건넜던 곳보다 물살이 훨씬 세차고 빨랐다. 무릎을 옹그리고 두 발을 모아서 안장 위에 옹송그리고 앉았다.
初七日癸未 (晴) 行二里 乘馬渡水 水雖不廣 而悍急尤猛於前日 所渡攣膝聚足 竦坐鞍上
창대는 말머리를 꽉 껴안고, 장복은 힘껏 내 엉덩이를 떠받쳤다. 모두가 무사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순간 말을 부리면서 내는 소리가 바로 ‘오호嗚呼’ 하고 탄식하는 소리처럼 구슬프게 들린다.
昌大緊擁馬首 張福力扶余尻 相依爲命以祈 須臾其囑馬之聲 正是嗚呼 囑馬聲 本好護 而東音與嗚呼相近
말이 강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 갑자기 몸이 왼쪽으로 쏠렸다. 말의 배가 물에 잠기면 네 발이 저절로 떠올라 말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헤엄쳐 건넌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이 오른편으로 기울어져 물에 빠질 뻔했는데, 마침 앞에서 가고 있던 말의 꼬리가 물 위에 짝 펴진 채 떠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 꼬리를 움켜잡고 몸을 바로잡고 앉아 겨우 빠지는 것을 피했다. 나 역시 나 자신이 이렇게 손발이 재빠른 줄 몰랐다. 창대도 말 다리에 차일 뻔하여 위험했는데, 말이 갑자기 머리를 들고 몸을 바로 가눈다. 물이 얕아져서 발이 땅에 닿았다는 것을 알 수 수가 있었다.
馬至中流 忽側身左傾 盖水沒馬腹則四蹄自浮 故臥而游渡也 余身不意右傾 幾乎墜水 前行馬尾散浮水面 余急持其尾 整身一坐 以免傾墜 余亦不自意蹻捷之如此 昌大亦幾爲馬脚所揮 危在俄頃 馬忽擧頭正立 可知其水淺著脚矣
마운령摩雲嶺(마천령摩天嶺)을 넘어 천수참千水站(첨수침甜水站의 오기. 첨수향甜水鄉)에서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몹시 무더웠다. 또 청석령靑石嶺을 넘는데 고갯마루에 관제묘가 하나 있다. 매우 영험하다고 하여 역참 일꾼들과 마두들이 앞다투어 제단으로 가서 머리를 조아렸다. 어떤 이는 참외를 사서 바치기도 하고, 역관 중에는 향을 피우고 점괘가 적힌 댓가지를 뽑아서 평생의 길흉을 점쳐 보는 사람도 있다. 도사 한 명이 바리때를 두드리며 돈을 구걸한다. 머리를 깎지 않고 상투를 했는데, 마치 우리나라의 환속한 중처럼 보였다. 머리에는 등나무 삿갓을 썼고, 몸에는 야견사野繭紗로 만든 도포 한 벌을 입고 있었다. 꼭 우리나라 선비들의 옷차림 같은데, 다만 검은 빛깔의 동구래깃이 조금 다를 뿐이었다. 다른 한 도사는 참외와 달걀을 판다. 참외는 맛이 매우 달고 수분이 많았고, 달걀은 맛이 조금 짭짤했다.
踰摩雲嶺 中火千水站 午後極熱 又踰靑石嶺 嶺上有一所關廟 極其靈驗 驛夫馬頭輩爭至供卓前叩頭 或買供靑蓏 譯官亦有焚香抽籤 占驗平生休咎者 有道士敲鉢丐錢 獨不剃髮爲椎髻 如我東優婆僧 頭戴藤笠 身披一領野繭紗道袍 恰似我東儒士所著 而但黑色方領少異耳 又一道士賣蓏及鷄卵 蓏味甚甛且多水 鷄卵淡醎
밤에는 낭자산狼字山(浪子山의 오기)에서 묵었다. 이날 큰 고개를 둘이나 넘었다. 80리를 지나왔다. 마운령은 회령령會寧嶺이라고도 부른다. 산은 높고 험준한데, 우리나라의 북관北關에 있는 마천령摩天嶺에 못지않다고 한다.
夜宿狼子山 是日踰兩大嶺 通行八十里 摩雲嶺 一名會寧嶺 其高峻險絶 不减我國北關摩天嶺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