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의 의미
한낮은 몹시 무더웠다. 말을 달려 고려총高麗叢, 아미장阿彌庄(峨嵋庄의 오기)을 지나니 길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나는 주부 조달동 그리고 변군, 박래원, 정진사, 하인 이학령李鶴齡과 함께 옛 요양(요동성)땅으로 들어섰다. 옛 요양은 봉황성보다도 열 배는 더 번화하고 화려하다. 여기에 관해서는 따로 「요동기遼東記」를 썼다.
요양성의 서문西門을 나서니 백탑白塔이 보인다. 탑은 화려하고 섬세했으며 크고 높게 만들었는데, 드넓은 요동 벌판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뒤쪽에 「백탑기白塔記」를 따로 썼다.
다시 요양성으로 돌아왔다. 거리는 넘치는 수레와 말들로 요란스러웠고, 구경거리를 보고 몰려든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떼를 지어 다닌다. 큰 길가에는 붉은 난간의 주점들이 높다랗게 쭉 늘어서 있었다. 한쪽에는 금빛 글씨로 쓴 주기酒旗하나가 나부끼고 있었는데, 깃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곳 명성 들은 사람 말을 세워 머무를 것이고, 聞名應駐馬
향기 좋은 술을 찾는 사람 여기서 수레를 멈출 것이다. 尋香且停車
나도 깃발을 보니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는 구경거리를 에워싼 채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는데, 서로서로 어깨가 맞닿을 정도다. 문득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런 곳에는 좀도둑이 아주 많다고 했다.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은 구경하느라 마음을 빼앗겨 제 주위를 잘 살피지 못해 반드시 물건을 다 잃어버린다. 작년에도한 사행이 무뢰배 여럿을 하인으로 삼아 데려갔다고 한다. 윗사람, 아랫사람 수십 명이 모두 초행이었는데, 의복이며 말안장이 제법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꾸며서 요양에 들어갔다. 그런데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사이에 어떤 이는 안장을 잃어버렸고, 어떤 이는 말등자를 잃어버리는 등 낭패를 보지 않은 자가 없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자 장복이 갑자기 안장을 모자처럼 머리에 쓰고, 허리에는 등자 한 쌍을 차고는 앞장을 서면서도 전혀 부끄러운 기색도 없다.
내가 웃으면서 나무랐다.
"어찌하여 너의 두 눈은 가리지 않느냐?"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다시 태자하에 이르렀다. 강물이 많이 불어나 출렁인다. 배가 없어 건너갈 수가 없다. 강기슭 위아래로 한참을 서성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갈대숲에서 콩깍지만 한 고깃배 하나가 빠져나왔다. 그리고 작은 배 한 척이 강가의 모래톱에 아련하게 보였다. 장복과 태복 등에게 함께 소리를 질러 배를 부르게 했다.
배 위에는 어부 둘이서 배 양끝에 낚싯대를 드리워 놓은 채 앉아 있다. 강물에는 버드나무 그늘이 짙게 드리웠고, 비스듬히 내리비치는 석양빛이 금빛으로 물들고 있다. 잠자리는 물 위에 꼬리를 살짝 찍고는 다시 날아올랐고, 제비는 이는 물결을 차고 난다. 어부들은 천만번을 불러도 못 들은 척하고는 끝내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한참을 모래톱에 서 있었더니, 온몸에서 더운 기운이 후끈 달아 올랐다. 입술은 타들어 갔고 머리에는 땀방울이 솟았다. 배 속은 텅 비어 허기가 졌다. 내 평소 유람하는 것을 꽤 즐겼는데, 오늘 그 대가를 제대로 치르는구나 싶었다.
정 진사 등 여럿이 경쟁하듯 나를 놀리며 말했다.
"해는 저물어 가고 길은 막혔습니다. 모두 굶주려 허기지고 통곡을 하는 것 이외는 뾰족한 수가 없는 듯한데, 선생께서는 어찌 꾸욱 참고 울지 않으십니까?"
모두 다 같이 크게 웃고 있는데, 내가 말했다.
"저 어부들이 우리를 도와주려 하지 않으니, 내 저놈들의 심보를 알겠다. 설사 저놈들이 어부로 은거해 조용히 살던 육노망陸魯望 선생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이럴 때는 딱 주먹을 한 대 날려 패고 싶구려.
태복이 애가 타는지 걱정하듯 말한다.
"이제 들판에 해가 지는 것을 보니 다른 산기슭은 벌써 어두워졌겠는데요."
저 태복이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이미 연행을 일곱 번이나 다녀온 자로, 어떤 상황이든 익숙하다.
잠시 뒤에 사공은 낚시를 마쳤는지 배 밑에 매어 두었던 다래끼를 걷어 올렸다. 배는 짤따란 노를 저어 버드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곳까지 다가왔다. 작은 배 대여섯 척도 고깃배가 우리 쪽 강기슭에 닿은 것을 보고서야 먼저 도착하려고 앞다투며 다가왔다. 사공들은 높은 뱃삯을 받기 위해 우리를 애가 타도록 기다리게 한 뒤에야 겨우 배를 태워 주겠다고 건너온 것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참으로 추악했다. 배 한 척에 겨우 세 사람만을 태웠고 뱃삯으로 한사람 앞에 일 초鈔씩 받는다. 배는 모두 통나무 속을 파내서 만든 것이었는데,
이른바 두보杜甫가「남린南隣」이라는 시에서 "냇가의 작은 배는 딱 두세 사람만 태운다.(野航恰受兩三人)"라고 했던 구절에 나오는 배가 바로 이런 모양이었던 것 같다. 우리 일행은 열일곱 명이었고, 말은 여섯 필로 모두 함께 강을 건넜다. 뱃머리에서 말의 재갈을 잡고 강물을 따라 칠팔 리를 내려갔는데, 전날 통원보通遠堡에서 여러 강을 을 건널 때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신요양新遼陽의 영수사映水寺에서 묵었다. 이날 70리를 지나왔다. 밤에는 매우 무더웠다. 잠결에 홑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바람에 감기 기운이 조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