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초 8일 갑신일
7월 초 8일 갑신일 연암 최고의 명문장 통곡할만한 자리!
맑음.
정사와 같은 가마를 타고 삼류하三流河를 건넜다. 냉정冷에서 아침을 먹었다. 십여 리 남짓 가서 산모롱이 접어들었을 때였다. 태복泰ト 이가 갑자기 허리를 굽혀 몸을 조아리며 말 앞으로 달려 나오더니 땅바닥에 엎드려 큰 소리로 말했다.
“백탑白塔 현신現身을 아뢰옵니다.”
初八日甲申,晴。與正使同轎渡三流河,朝飯於冷井。行十餘里,轉出一派山脚,泰卜忽鞠躬,趍過馬首,伏地高聲曰:白塔現身謁矣。
태복은 정진사의 마두다.
백탑은 산모롱이에 가려 아직 보이지 않았다. 채찍을 휘둘러 말을 달리게 했다. 수십 걸음도 채 못 가서 모롱이를 조금 벗어나자,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갑자기 한 덩이 시커먼 물체가 오르락내리락한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인생이란 본래 어디에도 의탁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이리 저리 떠 도는 존재라는 것을.
泰卜者,鄭進士馬頭也。山脚猶遮,不見白塔。趣鞭行不數十步,纔脫山脚,眼光勒勒,忽有一團黑毬,七升八落。吾今日始知人生本無依附,只得頂天踏地而行矣。
말을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나도 모르는 게 두 손을 모아 이마에 얹고 말했다.
“정말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 훌륭한 울음터로다!”
정 진사가 물었다.
“천지간에 이처럼 시야가 탁 트인 곳을 만났는데, 별안간 통곡을 생각하시다니 무슨 까닭입니까?”
立馬四顧,不覺擧手加額曰:好哭場,可以哭矣。鄭進士曰:遇此天地間大眼界,忽復思哭何也。
내가 말했다.
“그래 그래 아니 아니. 옛날부터 영웅은 울기를 잘했고, 미인은 눈물이 많았다네. 하지만 그들의 눈물은 몇 줄기를 넘지 않았네. 기껏 소리 없는 눈물이 두어 줄기 옷깃에 떨굴 정도에 불과하였다네. 그들의 울음소리가 천지 사이에 울려 퍼지고 가득 차서 쇠 종이나 돌의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같다는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네.
사람은 다만 칠정七情중에서 슬플 때만 운다고 했지. 하지만 칠정의 감정이 생기는 모든 상황에서 사람은 울 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네.
余曰:唯唯否否。千古英雄善泣,美人多淚。然不過數行,無聲眼水,轉落襟前,未聞聲滿天地,若出金石。人但知七情之中,惟哀發哭,不知七情都可以哭。
너무 기뻐도 울 수가 있고, 너무 화가 나도 울 수가 있다네. 너무 즐거워도 울 수가 있고, 너무 사랑해도 울 수가 있는 것이지. 너무 욕망이 강해도 울 수가 있지. 마음의 우울함을 푸는 방법으로 소리를 내어 우는 것보다 빠른 것은 없다네. 천지간에 크게 한바탕 통곡하는 것은 우레와 같은 것이네. 지극한 감정이 북받쳐 터져 나올 수 있다네. 그렇게 감정이 터져 나와 이치에 맞는다면 울음이 웃음이 어찌 다르겠는가.
喜極則可以哭矣;怒極則可以哭矣;樂極則可以哭矣;愛極則可以哭矣;惡極則可以哭矣;欲極則可以哭矣。宣暢壹鬱,莫疾於聲;哭在天地,可比雷霆。至情所發,發能中理,與笑何異。
사람이 태어나서 사정이나 형편이 이런 지극한 경우를 겪어 보지 못하고 칠정을 교묘하게 배치하여 슬픔에서 울음이 나온다고 짝을 맞추어 놓았다네. 그리하여 초상이 나서야 비로소 억지로 ‘아이고’ 하는 등의 소리를 목이 아프도록 부르짖는 것이네. 그러면서 참된 칠정에서 우러나오는 울음을 억누르다 보니 세상에 그것이 마음에 답답하게 쌓여 뭉쳐 시원스레 드러내 놓고 크게 울음을 터뜨리지 못하는 것이지.
한나라 때 가의(賈誼)는 적당한 통곡의 자리를 얻지 못해 울음을 참다가 견뎌 내지 못하고 갑자기 한나라 궁실인 선실(宣室)을 향해 한바탕 길게 울부짖었다네. 그러니 이를 들은 사람들이 어찌 놀라고 괴이하게 여기지 않았겠는가?”
人生情會,未甞經此極至之處;而巧排七情,配哀以哭,由是死喪之際,始乃勉强叫喚喉苦等字。而眞個七情所感至聲眞音,按住忍抑,蘊鬱於天地之間,而莫之敢宣也。彼賈生者,未得其塲;忍住不耐,忽向宣室一聲長號,安得無致人驚恠哉。
정 진사가 다시 물었다.
“지금 울기 좋은 곳이 저토록 넓으니, 저도 선생님을 따라 한바탕 통곡해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칠정 중에서 어느 감정에 북받쳐 울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鄭曰:今此哭塲,如彼其廣,吾亦當從君一慟,未知所哭求之七情,所感何居。
내가 말했다
"그건 갓난아기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네. 그 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느낀 것이 칠정 중에 어느 감정인지. 아기가 태어나 처음으로 해와 달을 보고, 그다음에 눈앞에 가득한 부모와 친척들을 보고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런 즐거움과 기쁨은 늙을 때까지 두 번 다시는 없을 것이네. 이러한 이치로 본다면 아기는 슬퍼하거나 화를 낼 이유는 없을 것이고, 단지 즐겁게 웃기만 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오히려 한스러워하는 마음과 분노가 가슴 가득 찬 듯 끝없이 울부짖기만 한다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기도 하지.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현명한 자나 어리석은 자나 모두 죽게 되어 있고, 살아있는 동안에도 온갖 근심 걱정을 겪어야 하기에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면서 먼저 슬프게 울어 자기 자신을 조문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하지.
余曰:問之赤子。赤子初生,所感何情。初見日月,次見父母,親戚滿前,莫不歡悅。如此喜樂,至老無雙,理無哀怒,情應樂笑。乃反無限啼叫,忿恨弸中,將謂人生神聖愚凡,一例崩殂;中間尤咎,患憂百端,兒悔其生,先自哭吊。
하지만 갓난아기의 본래의 정은 결코 그런 것은 아닐 것이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아기는 캄캄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웅크린 채 갇혀 지내가다 어느 날 갑자기 탁 트이고 훤한 곳으로 힘차게 나와 손을 펴고 다리를 뻗으니 온 마음이 시원했을 것이네. 어찌 억눌린 감정을 마음껏 담아 참된 울음을 쏟아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우리도 갓난아기의 꾸밈없는 그 울음소리를 본받아야 할 것이네. 금강산의 비로봉毗盧峯 정상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울어볼 만하고, 황해도 장연長淵의 금모래 해변을 거닐면서도 한바탕 울어볼 만할 것이네.
此大非赤子本情。兒胞居胎,處蒙冥沌塞,纏糾逼窄。一朝逬出寥廓,展手伸脚,心意空闊,如何不發出眞聲盡情一洩哉。故當法嬰兒聲無假做,登毗盧絶頂,望見東海,可作一場;行長淵金沙,可作一塲;
지금 우리는 요동 벌판에 이르렀네. 여기서부터 산해관山海關 천이백 리 사방에는 한 점의 산봉우리도 보이지 않는다네. 하늘 끝과 땅끝 맞닿아 마치 아교풀로 붙인 듯 실로 꿰매어 놓은 하네. 예나 지금이나 비가 내리고 구름이 떠 있는 대지는 아득하니 푸르기만 하니, 이곳 역시 한바탕 울어볼 만한 곳이 아니겠는가?"
今臨遼野,自此至山海關一千二百里,四面都無一點山,乾端坤倪,如黏膠線縫,古雨今雲,只是蒼蒼,可作一塲。
[해설]「호곡장론」에 나타난 연암의 감각과 문체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여행 기록을 넘어 조선 후기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 가운데 「호곡장론」은 연암 문체의 정수를 가장 압축적으로 담아낸 대목이다. 이 글은 단순한 기행문의 한 구절이 아니라, 요동 벌판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연암의 사유 방식, 감정의 구조, 나아가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의 심리를 극적으로 드러낸 텍스트다. 요동 벌판의 장관을 마주한 순간, 연암이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은 일반적 감탄의 언어가 아니라 “한바탕 통곡하기 좋은 곳이로구나”라는 파격적인 감상이었다. 이 한 문장은 「호곡장론」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자, 연암이라는 사유의 틀을 읽어내는 출발점이다.
대부분의 연행록들은 요동 벌판을 스쳐 지나가며 “넓고 웅대하다”, “산이 없이 지평선이 펼쳐진다” 정도의 묘사를 남긴다. 그러나 연암은 감탄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는 그 장관을 목격한 직후 곧바로 감정의 근원을 파고든다. 왜 하필 통곡인가? “눈물은 곧 슬픔”이라는 인식에 익숙한 동행자 정 진사는 당연하게도 연암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한다. 질문이 이어지고, 연암의 대답은 예상 밖이다. 사람의 감정은 ‘슬픔’에만 울음을 동반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분노·즐거움·사랑·미움·욕망—칠정(七情)이 모두 극에 달하면 울음으로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울음은 단일한 감정의 결과가 아니라, 감정이 임계점을 넘어서서 폭발하는 순간의 ‘형식’이다. 슬픔이 웃음으로 변하는 순간이 있고, 기쁨이 눈물로 변하는 순간이 있음을, 연암은 통념을 전복하는 논리로 증명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연암의 논리가 건조한 주장으로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호곡장론」은 치밀하게 구성된 ‘변론’이다. 그는 자신의 사유를 정 진사와의 문답 형식에 실어 전개한다. 독백이 아닌 대화의 형식은 논리의 압박보다는 설득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상대가 끊임없이 이해하지 못하는 듯 굴고, 연암은 다음 비유를 던지며 다시 한 번 사고의 틀을 흔든다. 이러한 운용법은 사고의 흐름을 시각화하고, 독자가 정 진사의 입장을 따라가다가 연암의 논리를 이해하는 순간 문득 새로운 세계에 도달하도록 한다. 텍스트는 독자를 지적 체험의 ‘전환점’으로 이끌어 가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연암의 논증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갓난아이의 울음 비유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처음 맞이하는 세계는 어둠에서 광활함으로의 급격한 전환이다. 태중에서의 억눌림과 제한으로부터 벗어나 갑자기 드넓은 우주와 마주한 순간, 아이는 슬퍼서가 아니라 기쁨이 극에 달해 감당할 수 없어서 울음으로 감정을 쏟아낸다. 이 대목은 「호곡장론」을 단번에 하나의 철학적 서사로 승격시킨다. 연암이 요동 벌판을 보고 울고자 했던 까닭은 “슬픔”이 아니라, 좁은 조선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마침내 광대한 세계 문명의 중심을 직접 눈앞에 두게 된 충격—기쁨, 해방감, 기대, 그리고 비애가 뒤섞인 감정의 포화였다. 연암의 울음 충동은 절망도 희열도 아닌 무엇인가의 혼합이며, 특정한 감정에 귀속될 수 없는 복잡한 존재 의식의 외침이었다.
이 지점에서 연암의 감각은 철저히 ‘개성적’이고 ‘창의적’이다. 일반적·보편적 관찰자는 요동 벌판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감탄하는 데에 머무른다. 그러나 연암은 감탄—감정—정념의 폭발이라는 사유 과정으로 직행한다. 자연을 본 것이 아니라, 자연이 자신의 내부를 뒤흔든 것이다. 더 나아가 연암은 순간적 감각을 문체의 실험으로 끌고 간다. 고문체에 조선식 한자어·구어 표현을 섞고, 4자구의 리듬을 유지하다가 갑작스레 깨뜨리고, 감정이 고조되면 문장 길이를 늘려 숨을 몰아쉬게 만드는 방식은, 사고에 따라 문체가 확장되고 파열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의 문체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감각의 즉각적인 반응, 흔히 말하는 “사유의 질감”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따라서 「호곡장론」은 단순한 기행문이나 감상문이 아니다. 이것은 연암이 스스로의 감정, 세계 인식, 문체 실험을 동시에 폭발시키는 하나의 문학적 사건이다. 요동 벌판은 단지 지리적 공간이 아니라, 연암의 사유가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 한 단계 도약하는 결정적 장면이다. ‘통곡’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자기 확장의 순간,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각성, 기존의 틀을 벗어나려는 정신의 외침을 함축한다.
이처럼 「호곡장론」은 연암이 왜 조선 후기 문학의 혁신가로 평가받는지 명확하게 증명하는 텍스트다. 그는 자연을 새롭게 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새롭게 보았다. 감탄을 넘어서 사유로, 사유를 넘어서 정념의 폭발로 나아가는 그 비약적 사고는 곧 연암 문학의 핵심이자, 『열하일기』가 시대를 초월해 읽히는 이유다. 요동 벌판을 보고 “통곡하기 좋은 곳”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 지점에서 연암은 조선의 다른 지식인들과 분명히 달라진다. 그는 타인의 시선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 앞에서 자기만의 울음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