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9일
7월 초9일 을유일
맑고 몹시 더움
1. 너무 더운 날이다. 새벽의 서늘함을 틈타 먼저 길을 떠났다. 장가대張家臺, 삼도파三道巴를 거쳐 난니보爛泥堡에서 점심을 먹었다. 요동에 들어선 이후부터는 마을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길 너비가 수백 보나 되는데, 길을 따라 양쪽으로 모두 수양버들을 심었다. 여염집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에는, 마주 선 문과 문 사이로 장마 때 고인 빗물이 빠지지 않아 저절로 큰 못이 되어 있다. 집에서 기르는 거위와 오리가 떼지어 그 위에 떠서 논다. 연못 양쪽에 있는 시골집들은 모두 물가의 누대처럼 붉고 푸른 난간이 좌우에서 비치어 어렴풋이 강호江湖의 풍경을 생각나게 했다.
군뢰가 세 번 나팔을 불고 난 뒤 반드시 몇 리 앞서 가면, 앞줄 군관前排軍官 사신 일행의 앞쪽을 총괄하는 군관도 군뢰를 따라 먼저 떠난다. 나는 움직임이 자유로워서, 매양 변군과 함께 서늘한 새벽을 틈타서 길을 나섰다. 그러나 10리도 못 가서 전배가 따라와 만나게 되고, 그러면 그들과 고삐를 나란히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가곤 했다. 매일 이렇게 했다.
마을이 가까워질 때마다 군뢰를 시켜서 나팔을 불고, 넷이 합창으로 어이 물렀거라 하면서 권마성勸馬聲을 외쳤다. 말이나 가마가 지날 때 위세를 더하기 위해 하졸들이 부르는 소리을 부른다. 그러면 집집마다 문이 미어지도록 여인들이 뛰어 나와서 구경을 한다. 늙은이건 젊은이건 간에 차림새가 비슷하다. 머리에는 꽃을 꽂고 귀고리를 드리웠으며 화장을 엷게 했다. 입에는 모두 담뱃대를 물었고, 손에는 신발 바닥에 깔기 위해 누빈 베와 바늘, 실 등을 들고 있다. 어깨를 잇대고 빽빽이 서서 우리를 보고 손가락질하며 웃는다. 한족 여자는 처음 보았는데, 발은 모두 전족을 하고 궁혜를 신었다. 자색姿色은 만주 여자만 못하다. 만주 여자들은 꽃 같은 얼굴에 자태가 고운 사람이 많다.
만보교萬寶橋, 연대하烟臺河, 산요포山腰鋪를 거쳐서 십리하+里河에서묵었다. 이날 50리를 갔다.
비장과 역관들은 말을 타고 가면서, 자기가 본 만주족이나 한족 여자들을 첩으로 찍으며 장난을 친다. 만일 남이 먼저 찍은 여자라면 감히 가로채지 못하는데, 그 나름대로 법도가 몹시 엄격하다. 이를'구첩' 口妾이라 한다. 가끔 서로 샘을 내기도 하고 화도 내고 욕도 하고 놀리기도 한다. 이것도 먼 길에 무료함을 달래고 시간을 때우는 한 방법이다. 내일은 심양으로 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