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4】 64/498 공자는 세상을 깨우치는 목탁
의(義) 땅의 국경을 수비하는 관원이 공자를 뵙기를 청하여 말하기를, “군자가 이곳에 오면 제가 일찍이 뵙지 못한 분이 없었습니다.”라고 하자, (공자를) 따르는 자가 그로 하여금 스승을 뵙게 하였더니, 그는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씀하시기를, “여러분은 공자께서 지금 관직 없이 지내고 계신 일을 어찌 근심하고 있습니까?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으니 하늘이 장차 선생님을 세상을 깨우치는 목탁으로 삼으실 것입니다.”라고 했다.
儀封人이 請見曰君子之至於斯也에 吾未嘗不得見也라 從者見之한대
의봉인이 청현왈군자지지어사야에 오미상부득견야라 종자현지한대
出曰二三子는 何患於喪乎리오 天下之無道也 久矣니 天將以夫子爲
출왈이삼자는 하환어상호리오 천하지무도야 구의니 천장이부자위
木鐸이시리라
목탁이시리라
의땅의 국경 수비 관원은 여러 사람을 보았기 때문에 사람을 보는 안목이 있었다. 그래서 공자를 뵙고 나서 제자들에게 근심하지 말라며 용기를 북돋우어 주었다. 공자는 장차 세상을 일깨우는 목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목탁은 세상을 깨우치는 도구이다. 당대에는 정치적 뜻을 크게 펼치지는 못했지만, 공자는 성인이 되어 몇천 년이 흘러도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깨우치는 목탁이 되었다.
공자께서 (순임금이 만든) 소를 듣고 논평하시기를, “지극히 아름답고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하셨으며, 무악(武樂)에 대하여 논평하시길, “지극히 아름답지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는 않도다.”라고 하셨다.
子謂韶하시되 盡美矣하며 又盡善也라하고 謂武하시되 盡美矣요 未盡
자위소하시되 진미의하며 우진선야라하고 위무하시되 진미의요 미진
善也라
선야라
순임금의 음악이나 무왕의 음악이 더할 나위 없이 좋지만, 순임금은 왕위를 선양하고 천성의 덕을 이루었다. 무왕은 정벌을 통해 천하를 차지하여 본성의 덕을 이루었다. 두 임금이 백성을 구제하고 정치적 공적을 세운 것이 비슷했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공자는 음악의 순수한 예술성과 함께 덕성을 고려하여 두 임금의 음악을 평가했다.
순임금이 만든 음악인 소를 듣고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순임금은 요임금에게 임금의 왕위를 선양했다. 그래서 순임금의 음악인 소(韶)도 아름답고 훌륭했다. 하지만 주나라 무왕은 은나라 폭군 주(紂)를 정벌하고 백성을 구제했다. 그래서 무왕의 음악인 무를 듣고 평가하기를 아름답지만 극진하고 순수함이 조금 부족하다고 말씀하신다. 음악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음악을 듣고 평가를 하고 있다.
우리가 이상으로 삼는 것을 진선미(眞善美)로 표현한다. 진은 참이고 내면적 본질이 가장 훌륭하고 으뜸인 것을 말한다. 그다음은 선으로 좋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아름다움을 갖춘 것으로 평가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 않고, 예를 행하면서 공경하지 않으며, 장례에 임하여 슬퍼하지 않으면 내가 그 사람의 잘잘못을 무엇을 보고 알겠는가?”라고 하셨다.
子曰 居上不寬하며 爲禮不敬하며 臨喪不哀면 吾何以觀之哉리오
자왈 거상불관하며 위례불경하며 임상불애면 오하이관지재리오
어른이 되거나 지도자가 되면 인성을 갖추고 품격이 있어야 한다. 먼저 마음이 넓고 너그럽고 품위가 있어야 한다. 마음이 넓지 못하고 너그럽지 않으면 사람들이 주변에 모여들지 않는다. 소나무는 세한고절로 높이 평가하지만 사군자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소나무 아래는 다른 생명체를 자라지 못하게 한다. 여유가 없고 각박한 사람은 여지(餘地)가 없다고 한다. 여지는 여유다. 남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주변 사람을 들볶고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여지가 없는 사람이다. 윗자리에 있으면 일처리는 면밀하고 꼼꼼하게 하되 사람을 대할 때는 넓게 포용해야 한다.
그리고 예의를 표현할 때 형식도 중요하지만 공경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진정성은 더 중요하다. 또한 상황에 맞게 처신을 해야 한다. 결혼식에는 기쁘고 즐거움 모습으로 있고 장례식에 가면 슬퍼하고 상주를 위로해야 한다. 윗자리에 있으면서 너그럽지도 않고 진정성도 없으며 장례식에 가서도 슬퍼하지 않는다면 어찌 사람의 도리를 다한다고 하겠는가? 이러한 사람을 달리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사람은 때와 장소에 맞게 언행을 해야 한다.
정민 교수의 글은 눈길이 오래 머물고 울림이 크다. 여러 책 중에서 아끼는 세 책을 들라고 하면 ‘한시미학산책’,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그리고 ‘일침’이다. 이 셋 중에서 여러 번 반복하여 읽은 책은 일침이다. ‘일침’의 책 표지에 이렇게 씌어 있다. “오래 아껴 만지고 다듬었던 글들이다. 저마다 시절의 표정이 담겼고, 내면의 풍상이 녹아들었다. 말을 아끼고 글을 줄이고 싶지만 그마저도 뜻 같지가 않다. 차고술금借古述今옛것을 빌어 지금에 대해 말한다는 뜻이다. 현실이 답답하면 옛글에 비추어 오늘을 읽었다.”
한줄한줄 읽다 보면 생각의 깊이와 넓이, 표현의 적확함 등 고수의 글솜씨가 마음을 일깨우고 정신을 맑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