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
'쪽'이라는 말은 여러 뜻으로 쓰입니다.
얼굴(쪽팔린다), 쪼개진 조각(한쪽), 올린 머리(쪽찌다), 한해살이 풀(쪽빛), 한 바닥(한쪽)
국자(쪽자), 방향(동쪽, 서쪽)등 여러 말로 푸짐하게 쓰입니다.
그중에 얼굴을 뜻하는 말 '쪽'과 관련된 ‘쪽팔린다’에 대하여 말하려 합니다.
쪽은 짝으로 쓰여 '볼 낯이 없다'거나 부끄러울 때 ‘낯짝’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쪽팔린다’는 말은 부끄러워 얼굴을 차마 들지 못할 때
‘볼 낯이 없다’, ‘낯 깎인다’, ‘낯 뜨겁다’ 등과 같은 말로 쓰입니다.
예의와 염치가 땅에 떨어지고 눈에 뵈는 게 없는 세상이 되어서인지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너무 뻔뻔하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았다.”라고 큰소리치는 정치인이 있습니다.
제 가족이나 자신의 허물에는 눈감고 남의 허물은 크게 들추어내는 사람이
국민을 향해 큰소리치는 것을 보면 무슨 낯짝으로 그러는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 쪽팔립니다.
윤동주 시인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조국 광복을 위하면서도 늘 겸손하게 낮추며
하늘을 삶의 준거로 여기고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겸손한 사람은 완전, 완성, 완공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완(完)은 겸손한 사람이 쓰는 말이 아닙니다.
논어에도 '완(完)'이라는 글자를 한 번 정도 나올 정도로 조심해서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부끄럼 없이 살았다’와 ‘부끄럼 없기를’의 차이를 알고
늘 성찰하며 겸손하게 사람이 윤동주 시인이었습니다.
쪽팔리면서도 부끄러운 짓을 많이 한 사람은 제 몸의 똥은 보지 못하고
남의 몸에 묻은 겨를 보며 큰소리로 꾸짖습니다.
반성은커녕 오히려 국민에게 화내고 성질을 냅니다.
앞뒤가 뒤바뀐 말, 모순된 행동을 하면서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은 궤변으로 두둔하여 듣는 이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자신을 돌이켜 살펴보는 정치인의 품격이 그립습니다.
부끄러움이 없고 성찰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성찰하고 부끄러움이 없도록 해야 사회가 발전합니다.
쪽팔리는 줄 아는 사람은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인데
그러한 사람이 드문 쪽이 정치인입니다.
일반 시민들 중에
저마다의 자리에서 향기를 나누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면서도 표 내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간혹 낯짝 두껍고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 있어
거짓 호의 속에 저의를 살펴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의와 염치를 아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제 스스로 똑똑한 사람이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여 쪽팔리게 합니다.
꽃을 보는 기쁨보다
꽃피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기쁘다고 하는데
부끄러움으로 자신을 다스릴 줄 아는 멋진 사람을 기다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