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
'깜'은 토박이 말로 일정한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거나 또는 그런 사람을 말합니다.
깜이 되는 사람은 '깜냥'이 있어야 합니다.
깜냥은 '깜'과 한자 헤아릴 '량(量)'이 합쳐진 말입니다.
깜냥은 스스로 일을 헤아리거나 또는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민주주의 시대에는 깨어있는 시민이 깜냥을 지녀야 하고
지도자 깜이 되는지 헤아려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일을 슬기롭게 잘 헤아리려면 기준이 필요합니다.
논어를 제대로 읽으면 공자의 가르침이 정명(正名)이라는 것을 알고
맹자를 제대로 읽으면 의(義)가 무엇인지 알고
퇴계를 제대로 배운 사람이라면 의당당(宜當當)을 알기 때문에 ‘마땅하고 당당한’ 것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깜냥의 기준은 바름(정 正)과 바르지 않음(부정不正),
옳음(의 義) 그름(불의 不義), 국익(國益)과 국해(國害)라는 것을 압니다.
정의(正義)를 기준으로 이치를 헤아려 슬기롭게 일처리를 해 내야 깜냥이 있다고 말합니다.
마땅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 공명정대(公明正大)입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은 사사로운 이익보다 공익을 위해야 합니다.
사익을 쫓는 사람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면 나라와 국민에게 해롭습니다.
국민도 사익을 추구하는 지도자인지 공익을 추구하는 지도자인지
헤아려 사람을 보는 안목을 길러야
깜냥을 알아보고 지도자 깜을 제대로 가릴 수 있습니다.
사사로운 이익을 좇는 사람은 패거리를 만듭니다.
국가 조직인 검찰을 사사로이 이용하여 정치공작을 하거나 보복수사 시도하려 했다면
이는 검찰을 패거리 집단인 검찰당(檢察黨)을 만든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작은 일을 크게 만들어 사람을 괴롭히고
나라 전체를 소란스럽게 하는 것은 공명정대한 것이 아니라
나쁜 깡으로 뭉쳐 패거리 된 '깡패'입니다.
오늘날 정당에도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려는 사람과 공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섞여 있어
이를 잘 헤아려 보고 판단을 해야 깜냥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깜냥도 없이 술수와 잔꾀로 가볍게 말장난을 하는 것을 '까분다'라고 합니다.
까부는 사람은 깜냥은 없고 궤변과 임기응변에만 능수능란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공당의 대표가 되거나 언론인이 되면 나라를 위태롭게 합니다.
세상의 바람은 언제나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불어온다고 합니다.
바람의 방향이 바뀔 때마다 덩달아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린다면
몸이 피곤하고 마음이 헝클어집니다.
몸이 아프면 병(病)이 되고 마음이 아프면 근심 환(患)이 됩니다.
깜냥을 길러 어떤 방향에서 바람이 불더라도 대비 해 두면 병환이 오지 않습니다.
조용히 큰 일을 감당할 능력도 기르고 분수에 넘치는 일이면 과감하게
던질 줄 아는 용기도 있어야 깜냥이 있는 사람이고
마땅하게 살아 이름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지도자 '깜'입니다.
'붕당(朋黨)에 대하여'
정의를 중시하는 군자와 사익을 중시하는 소인을 나누는 기준이 붕당입니다.
중국의 구양수는 <붕당론>을 지어 군자는 도리로써 벗을 삼아 붕(朋)이 되고, 소인은 이익으로 벗을 삼아 당(黨)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의 꺔냥을 안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이치 때문입니다.
조선 선조5년 1572년에 영의정 이준경(李浚慶) 선생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선조에게 올린 유소(遺疏)에 붕당(朋黨)일 일어날 것을 염려했습니다. 이준경의 유소를 배척한 사람은 이이(李珥)였는데, 나중에 이이로 인하여 동인과 서인의 붕당이 생깁니다. 이이는 심의겸과 김효온 두 사람이 모두 옳고 모두 나쁘다는 양시양비설을 내서 정과 부정, 의와 불의가 명쾌하게 가려지지 않아 패거리 싸움을 하도록 했습니다.
인조때 조익이라는 사람도 붕당에 대하여 말합니다.
"사사로이 아첨하여 영합하는 것을 당(黨)이라고 하는데 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어울리되 패거리를 만들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 그 예이다.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 군자는 서로 도와 몸을 닦고, 조정에 서면 세상을 위해 일한다. 소인은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한다. 군자의 붕과 소인의 당이 이렇게 나뉜다."라고 하여 패거리의 폐해를 지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