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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호 Jan 09. 2024

#12. 지덕체 vs 체덕지

교육 잡설(雜說)

#12. 지덕체 vs 체덕지   

  

   저는 근대국가의 여러 특징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세와의 차이를 교육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특정 계층만 알 수 있었고 알고자 했던 세계의 비밀을 일반 대중이 보편적으로 알 수 있었던 사회가 근대 국가였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근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줬고 성경과 더불어 훌륭한 교육 교재였으며 문학과 예술 정치철학에 영향을 준 것은 단테의 신곡이었습니다.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여러 기준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근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하나의 사건을 꼽는다면 단테의 신곡을 일 번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단테는 근대문학의 아버지이자 이탈리아어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단테는 신곡을 라틴어로 썼고 후반에 추방당해서 그의 작품과 사상은 당대 이탈리아에서도 많이 읽어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어는 표준어보다 라틴어 방언에 가까웠습니다. 그의 사후, 14세기 이탈리어로 번역되었으며 이때 인쇄술의 발전과 더불어 일반 대중에게까지 읽히게 됩니다. 15세기가 되면 유럽 전역으로 번역되어 전파됩니다. 성경의 번역과 인쇄술로 인한 대중의 전파가 종교개혁을 낳게 되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여기에서는 1부 연옥이 근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간단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의 창세기 선악과 스토리가 인간 자유의지의 시작을 알렸다면 단테의 신곡은 무신론자들인 예수 이전의 사람들을 연옥 1층에 배치하여 그리스 철학자와 로마의 일부 위인에게 면죄부를 부여했습니다. 그리스철학은 로마 시대에 연구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기독교에 의해 철저하게 배척됩니다.      

신곡을 손에 든 단테

    이 시기에 그리스철학은 헬레니즘(오리엔탈)과 만나 더욱 꽃을 피웁니다. 사실 그리스철학은 오히려 지금의 중동 지역에서 연구되고 발전됩니다. 이후 이슬람 국가들이 확대됨에 따라 스페인 같은 당시 이슬람 국가에도 아랍어로 쓴 그리스철학이 전파됩니다. 그리고 이후에 중세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십자군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반종교적이며 반 인권적인 원정이 벌어지는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건 십자군 전쟁으로 대규모 학살과 피의 복수가 펼쳐지는 와중에 서유럽에서 그리스철학의 연구가 시작됩니다.  

   

    기독교 왕국이 되찾은 스페인 중부 도시인 톨레도에서 12세기 초부터 이슬람이 발전시키고 있던 그리스의 철학과 과학을 발견했습니다. 톨레도의 대주교였던 라이문두스 1세가 주도했고 번역 작업은 언어와 내용의 난이도를 고려해서 종교를 초월한 모든 지식인이 모여서 작업을 했습니다.      


    내용을 잠시 보면 유클리드 기하학,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문학, 갈레노스의 의학을 라틴어로 옮겼습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많은 저작을 번역했습니다. 중세를 암흑시대(dark age)로도 불리는 이유는 십자군 전쟁, 종교재판 등의 잔혹하고 반인권적인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지혜와 이성을 무시하고 신에게만 기댔던 중세인들의 사고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종교재판소 앞의 갈릴레

    기독교의 공인(4세기) 이후 끝없는 교리 논쟁과 승인받지 못한 교리와 종파의 이단화와 추방, 6세기 그리스철학 금지 등은 사상과 철학의 자유로운 연구와 교류를 막았고 결국 이성의 침체기로 접어들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하던 학자들은 동쪽으로 향했고 페르시아 등은 학자들을 환대했습니다.      


    그리스어 문헌은 처음에는 시리아어와 페르시아어로, 다음에는 보편 언어인 아랍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슬람 세계는 그리스철학과 과학으로 문명이 발전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주자처럼 아랍 학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글에 주석을 달았고 서유럽 학자들은 이를 다시 번역합니다. 그런데 종교개혁도 그렇고 동양 선교 시기, 일본의 란가쿠 시기처럼 지식은 교류를 통해 새로운 해석과 만날 때 확장성을 갖습니다. 

     

    유럽의 학자들은 철학으로 신학의 토대를 세우고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다양한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17세기 유럽의 지식, 산업, 과학 혁명의 기반이 만들어졌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1095~1291년에 걸쳐 이루어졌고 신곡은 1320년에 완성되었으니 당시로는 아직 많은 이들이 예수 이전의 역사적 인물(특히 이탈리아의 위인들)에 대한 평가가 다분히 이중적이고 모호했습니다. 이전까지 기준으로 그들은 이단이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옹호하지 못합니다.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한 이후 그곳에 있던 이슬람교도·유대교인 등을 학살한 모습을 그린 그림

    그런 사람들에게 단테는 걱정을 달래듯이 연옥 1층에 당당하게 앉혔습니다. 더불어 신약 이전의 구약 성인들이 연옥 1층에 대기하다 예수가 부활하며 함께 하늘나라로 갔다고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이제 학자들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얻었을까요? 물론 오래된 종교, 사상, 신념 체계가 그렇게 쉽게 받아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종교적으로 조금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작지만 크게 달라진 포인트였습니다.     


   사실 본격적으로 근대의 산물인 산업혁명과 과학혁명의 태동은 프란시스 베이컨(1561~1626년)의 ‘신기관(Novum Organum)’부터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부제가 <자연 해석과 인간 세계에 관한 잠언들>로 우리가 알고 있는 제목보다 더 광오 하면서 그 시대 책 제목이 그렇듯이 무슨 책인지 알 수 없습니다.   

   

신기관

    그런데 책을 다 읽으면 왜 그가 자연과 인간을 대비해서 부제를 작성했는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이컨의 Novum Organum은 아리스토텔레스의 Organum(일본 번역인 기관으로 번역하기에는 지금 기준으로는 애매합니다. 현대에는 분석론, 논리학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을 비판하며 쓴 글입니다. 내용 중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교회가 구축한 절대론적(연역적) 세계관을 상대적, 경험적(귀납적) 세계관으로의 변화와 실험 등 과학적 합리주의를 주장한 내용입니다.      


    이렇게 베이컨이 인간 지성 발전의 위대한 족적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철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의미로 베이컨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고 단테와 같이 이탈리아인이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주장하다 교황청에 종교재판을 받습니다.      


    그런데 갈릴레오의 주장은 타원 운동을 부정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고 사후 비난받습니다. 사실 지동설은 이미 그리스 철학자들이 주장했습니다. 여하튼 갈릴레오 사망(1642년) 3일 후 뉴튼이 태어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갈릴레오는 천재임에는 분명하지만 이탈리아는 더 이상 주류 국가가 되지 못합니다.   

   

    길드 등 르네상스로 상공업이 발달하고 사상가와 예술가가 많이 배출되지만 근대국가, 통일국가로 도약이 늦어지며 유럽의 경쟁에서 뒤처집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1513년)도 이러한 이탈리아의 분열상을 비판하며 군주에게 부국강병을 건의한 책입니다. 그런데 이탈리아가 근대로 넘어가는데 상대적으로 늦고 영국이 빨랐던 이유 중 하나가 교황청과의 거리도 한몫하지 않았을까요?      

군주론

    이탈리아는 그리스와 최인접국이면서 로마도 그리스 문화를 흡수하며 비약적으로 문명국으로 발전합니다. 특히 시칠리섬에 있던 시라쿠사 등의 도시국가는 지중해의 중요 문명 도시였습니다. 플라톤은 시라쿠사에서 국가론의 이상국가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그리스철학은 인문 분야뿐 아니라 과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종합적으로 지식혁명이라고도 합니다. 지식의 축적과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 여건이 조성되었으며 사회적, 윤리적으로 명분이 생겼습니다. 또한 이 시기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사유 재산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고 특히 이 논의에는 지적재산권도 포함됩니다. 공부를 통해 실질적인 부와 명예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어떤 과목을 교육했는지 궁금합니다. 앞서 논의한 것처럼 당연히 라틴어는 필수 교육이었습니다. 아무리 번역을 잘한다고 해도 원서를 읽는 것과는 다르죠. 그리고 지식인들의 지적 허영. 번역서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교양으로도 라틴어는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철학도 중요했습니다. 특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고 정립된 학문체계는 근대교육의 시발점으로 충분했습니다.      


    물론 일부 수도사를 중심으로 중세에도 연구가 있었지만 앞서 본 것처럼 서양에서 본격적으로 연구하기에는 오히려 접근성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니 근대 교육의 핵심은 그리스 학문체계의 연구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의 분야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눕니다. 내용의 학문으로 물리학과 정치학을, 방법의 학문으로 변증법(논리학)이 있다고 했습니다. 근대 이후 칸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분류를 받아들여 학문의 영역을 크게 자연학(물리학 포함), 윤리학, 논리학으로 분류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지식의 분류와 맥을 같이해서 세부적인 이론지(아포데익시스. apodeiksis)에는 형이상학, 철학, 수학, 물리학(자연학) 등을 꼽았으며 실천치(프로네시스. phronesis)에는 정치학, 윤리학이 들어 있습니다.    

  

    제작지(테크네. thchnē)에는 수사학, 시학이 있습니다. 이외에 특별히 오르가논(Organon. 분석론)이 있는데 이는 모든 학문의 바탕이 되는 학문으로서 요즘 말로 논리학(logics)을 의미합니다. 오르가논은 오늘날 개념론, 논술, 삼단논법, 논증, 논박 등 대단히 중요한 학문의 기초로 여겨지며 베이컨은 이 오르가논에서 귀납법을 발전시킵니다.      


    그는 또한 생물학 등 자연 분야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탁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근대인들은 그의 학문적 성취뿐 아니라 방대한 저서와 호기심에도 깊은 영향을 받습니다. 2000년 전 당시의 한 인간의 이성만으로 이런 성취를 이루었다면 근대의 인간이 진화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중세 종교 탓으로 돌리게 됩니다. 그러니 근대 입장에서 중세는 암흑시대가 맞습니다.   

  

   새로운 시대로 가기 위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넘어야 하는 산이었습니다. 당연히 모든 분야에서 논박이 불가피했고 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이 시대는 종교적 관념론에서 벗어나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연구하며 보편적 이성을 추구합니다. 신의 의지로 정해진 세상이 아닌 신의 목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학문이 발전하고 지식이 축적되며 급기야 빅뱅이 이루어집니다. 18세기 경험주의도 이런 고민의 반동이었습니다.        


   근대국가의 교육 과목은 중세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 18세기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크게 변화했습니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강조하는 사상이고, 당연하게도 교육은 인간의 지성과 능력을 계발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교양 과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영국 대학의 경우 18세기 초반까지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집중되었다면 후반에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 등 다양한 언어와 역사, 철학, 사회과학 등이 추가되었습니다. 또한 법학, 의학, 신학 등의 전문 과목도 공학, 농업, 의학 등으로 확대됩니다. 영국의 대학도 옥스퍼드, 캠브리지와 같은 전통적인 대학 외에도 새로운 대학들이 설립되고 대학의 자율성이 확대되면서 교육 과목의 선택권이 증가했습니다.     

 

    19세에는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실용 과목의 중요성이 증가하였습니다. 산업혁명은 새로운 기술과 지식이 요구되는 사회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에 따라 교육은 학생들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근대 교육의 이념이 잘 나타난 학교가 영국의 이튼스쿨입니다. 이튼스쿨은 1440년에 설립된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공립 사립학교입니다. 이튼스쿨은 영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해 왔습니다. 이튼스쿨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중심으로 한 교양 교육을 강조했습니다. 

이튼 칼리지

    이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강조하는 사상이고 교양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지성과 능력을 계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확산시켰습니다. 또한 이튼스쿨은 전통과 규율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영국의 귀족 사회에서 형성된 가치관이 반영된 것으로, 학생들에게 훌륭한 품성과 도덕성을 함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튼스쿨은 스포츠와 육체 단련을 강조했습니다. 이것도 영국의 귀족 사회에서 형성된 가치관이 반영된 것으로, 학생들에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함양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군대식 교육이 필요했습니다.


   이튼스쿨의 교육 이념은 영국 근대 교육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양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영국의 교육은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데 중점을 두게 되었고, 전통과 규율의 강조는 영국의 교육에 일관성과 안정성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스포츠와 육체 단련의 중요성 강조는 영국의 교육에 건강과 체력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편 영국의 공립학교들도 이튼스쿨의 교육 이념을 바탕으로 교양 교육, 전통과 규율, 스포츠와 육체 단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튼스쿨의 교육 이념은 미국과 유럽의 다른 국가에도 전파되어 근대 교육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근대 교육하면 떠오르는 지덕체(智德體)도 이런 연구의 결과였습니다. 지덕체(智德體)냐 체덕지(體德智)를 가지고 어느 것이 옳은지 갑론을박할 일은 아니지만 그 과정은 의미 있습니다. 지덕체는 사실 플라톤의 철학 및 교육이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는 교육에 대한 생각이 남달랐으며 아카데메이아를 직접 설립하고 강의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국가론 등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것뿐 아니라 어떤 교육을 제공해야 하는지도 말했습니다. 


    가령 군인들의 강한 성정을 부드럽게 만들고 절제할 수 있도록 음악과 시 교육이 제공되어야 하고(나쁜 시와 음악은 제거) 우월한 지도자를 위해서는 철학 교육도 제공해야 한다는 식으로 매우 구체적으로 주장했습니다. 특히 그의 사상이 반영된 진선미(truth and good and beauty)는 후에 지덕체 사상의 근간이 됩니다. 


    플라톤은 인식능력, 실천능력, 심미능력이 삼위가 되어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사실 순서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칸트 이후 정립된 사상으로 진선미, 지덕체가 완성됩니다. 존 로크는 체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체덕지 순으로 아이들을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존 로크가 영국인이었으니 이튼 스쿨과 이후 미국의 교육은 체육을 근간으로 삼았습니다. 


    아이들의 심리적 문제도 몸을 쓰지 않고 지(知)만 강조하다 불균형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했을 만큼 체(體)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당연히 일본을 시작으로 우리나라도 체육을 모든 교육의 기초로 생각하고 힘쓰게 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덕체를 유지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것도 유학의 유산이라고 생각됩니다. 여하튼 조선이 체를 천 대시했던 건 사실이었고 지금 우리의 문화는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일본은 근대화 시기에 재미있는 교육 방법을 만듭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최상위 계급이 공식적으로 사무라이였습니다. 당연하게도 체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근대국가의 선두 국가이며 일본 근대화의 모델 국가였던 영국이 체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이거 다 했을 겁니다. 여하튼 일본의 다이쇼 시대(1912~1926년) 무도 단체를 하나로 통합한 무덕회가 유도, 검도, 궁도에 단급제를 도입합니다. 단급제는 바둑 등에서 일부 적용하고 있었지만 이 시대 일본은 빠르고 이해하기 쉬운 교육체계, 관리 용이성 그리고 유단자 관리 등을 위해 무도 교육을 표준화합니다.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용한 제도입니다. 이 체제를 정립한 일본은 상당히 진심입니다. 어릴 때 주산학원에 다니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일본은 단급 제도가 없는 스포츠나 비 스포츠에도 적용하고 활용합니다. 단점이 있지만 그 시대에 무예 실력을 객관적 지표로 만들려고 한 것은 대담한 시도였습니다. 

1920년대 일본의 검도 수련 모습

    단급제도를 철저하게 도입한 태권도는 스포츠화에 잘 적응했고 기술 또한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무술 도장은 열면서도 기술 전수는 폐쇄적으로 직계에게만 하고 객관적인 실력을 측정할 길이 없었던 중국의 무술은 그 기술마저 소멸하게 됩니다. 


   이러한 교육 이념은 현대에도 유효합니다. 미국과 영국은 여전히 체육을 중요시 여기고 있으며 일본은 필수 과목으로 체육과 무도를 선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입시 중심의 교육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습니다. 사실 과거 군사정권 시절에는 체육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일본의 잔재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앞서 논의한 것처럼 근대 교육의 일환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체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이 잘못된 교육이었을까요? 영국이 체육을 중요하고 많은 스포츠의 원류가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체와 정신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히려 입시 중심의 국가의 미래가 어둡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홀로 서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생존할 수 없었습니다. 동물의 군집을 뛰어넘는 수의 집단만이 생존할 수 있었고 많은 수를 관리하고 주변의 집단과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협력과 타협을 선택했습니다. 한 사람의 두뇌와 신체 능력으로는 문명을 만들 수 없습니다. 체육은 이렇게 생존한 인간의 역사입니다.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것처럼 독수리가 새끼에게 날고 사냥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지속 가능한 육체 단련이 중요합니다. 스포츠를 통한 지능 발달이나 정신 건강에 대한 과학적 결과는 여전히 모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육체를 단련하는 것이 정신을 단련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입시에서 체육이 사라진 이후 세대의 체력이 많이 저하된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입시에서 체육이 없어졌다고 체육교육을 약화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입시와 연동된 교육체계를 유지해야 된다면 입시에 반영해서라도 강화해야 합니다. 과거 같은 입시 유지의 체육이 아닌 다양한 체육교육이 필요합니다. 


    변변한 자원 하나 제대로 없는 나라에서 유일한 강점인 사람을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게 관리하면 안 됩니다. 최근에는 생활체육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공동체와 연계한 다양한 선택형 교육과 기초 체력을 키우고 유지할 수 있는 노력이 필수적입니다. 엘드릭이라는 골프 스윙머신은 2016년 웨이스트매니지먼트 피닉스 오픈 16번 홀에서 홀 인온을 기록했으며 박세리와의 대결로도 유명해졌습니다. 


    엘드릭의 정식 명칭은 LDRIC(Launch Directional Robot Intelligint Circuitry)이며 지능형 회로를 장착한 발사 로봇 정도로 이해됩니다. 현재 인공지능은 골프 사업과 연동해서 활발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카메라, 스크린 등과 연동해서 훈련을 돕거나 캐디 역할을 수행하는 등 보조적인 역할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뇌와 달리 인공지능은 아직 제한적이고 한정된 기능만을 수행할 수 있으며 다행히도 아직은 인간이 더 잘하는 분야가 더 많습니다.

엘드릭

   “Mens sana in corpore sano”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라는 명언을 남긴 로마의 시인 유베날리스(55년~140년)는 본래 신체를 강조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 이후로 로마인들도 쾌락주의에 빠졌으며 특히 육체의 아름다움을 선망했습니다. 심지어 로마 검투사들의 대결보다 그들의 단련된 육체에 환호합니다. 유베날리스는 이러한 세태를 풍자, 비난하며 시를 썼습니다. 사실 위의 문장 앞에는 “orandum est ut sit, ~하게 되도록 기도합시다”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본래 뜻은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 있도록 공부하자, 있기를 기원한다’라는 의미 정도로 정리됩니다. 


    지금의 의미로 재해석한 사람은 영국 계몽주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입니다. 그는 <미래를 위한 자녀교육>에서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하며 아이들을 교육할 때 건강한 육체의 소중함부터 가르치자는 것이 그의 교육론 요체였습니다. 사실 계몽주의자들은 육체와 정신의 관계를 인과적으로 설명하려 했고 이는 근대과학의 패러다임과 함께 보편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영국의 체덕지의 이론적 배경이 되며 이후 근대국가 교육 사상의 틀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본래 뜻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자연스럽게 깃든다는 인관 관계는 다소 억지스럽습니다. 사실 대중이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측면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대중의 욕망이 투영되어 육체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자동으로 정신적 성숙도 따라온다고 믿고 싶은 것입니다. 


    성경의 주인공 중 가장 극적인 인물 중 하나가 다윗(다비드)입니다. 미켈란젤로는 다윗을 극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어느 종교나 신들은 최고로 무서우면서 동시에 아름답습니다. 다비드상이 나체인 명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도 내면의 아름다움과 용기를 표현하기 위해 굿이 옷을 벗겼을 거라 생각해 봅니다. 목동이었던 다윗의 비장함이 보입니다. 


    국가적이나 개인적으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신에 대한 믿음과 심신의 조화로 거대한 적을 물리친 다비드는 메디치 가문의 로마시에 대항하는 피렌체가 본받고 싶은 인물이었습니다. 


    공자는 “ 心正而後身修(심정이후신수)” 마음을 바르게 한 후에 몸을 수양하고, “身修而後家齊(신수이후가제)” 몸을 수양한 후에 집을 다스린다는 점진적인 수양의 단계를 말했고 수신을 위해 조선의 선비들은 경전 공부 외에 활쏘기를 사랑했습니다. 평소 신체를 단련하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헌신하며 집중력을 키우고 일석삼조(一石三鳥) 정도 되는 일이었습니다. 왕을 비롯한 문무반의 어느 기록에나 화살을 몇 순 쐈는지와 결과가 기록되어 있는 것을 봐도 그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총이 보편화되는 구한말까지도 심신의 수련을 위해 장려되었습니다.      


   그런데 플라톤이 말한 것처럼 몇몇을 제외하고 공부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리고 공부의 깊이는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특히 수양의 단계는 공부에서도 최상의 수준입니다. 많은 이들이 도에 얻어 우화등선하지 못하고 삶을 마감합니다. 육체적 수양과 정신적 수양을 동시에 추구하는 대표적인 종교가 요가학파입니다. 


    물론 기독교 등의 문명권에서도 수도승들의 신체 단련을 위한 공부법이 있었지만 요가만큼 체계화되고 철학적이지 못합니다. 요가 명상법은 심지어 석가모니도 달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의 불교에서는 스님들의 명상 및 양생법이 남아있습니다. 도교도 영향을 받아 종교와 공부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다만 다른 종교나 철학에 비해 요가의 신체단련과 정신수양은 체계적이고 조화롭기까지 합니다. 인도의 탄트라(비베다 경전)는 비전적 수행체계를 뜻하기도 하는데 흔히 밀교(Exoteric Religion)로 번역하며 성 에너지를 수행합니다. 육체적 합일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신과 연결된다는 밀교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극한의 육체적 수행을 합니다. 


    여하튼 인류역사의 많은 단편에서 신체를 통해 정신을 수행하는 공부법이 존재했고 지금도 각광받습니다. 만일 정신 수양의 결과가 일본 만화, 드래건볼의 스카우터처럼 전투력이 눈에 보인다면 심신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 없을지도 모릅니다.


   동양의 무도, 서양의 스포츠 정신, 목숨을 걸고 결투하는 검투사에게 정신적 수양을 강조하는 것은 무력의 사용을 국가에 응집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였습니다. 일종의 기술인 살상 기술을 개인의 복수에 활용하지 못하도록 중앙집권화된 정부는 법을 제정합니다. 한편으로는 관습적으로 그들에게 정신 수양을 강조합니다. 스스로 절제하고 권력화될 수 있는 육체적 능력을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결투

    신체적 훈련만으로 정신의 고양이 전적으로 동반된다는 것은 바람일 뿐입니다. 물론 신체가 건강해야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정신 활동이 이루어질 것도 같습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정신이 안 좋은 사람의 신체가 문제가 있다는 관점은 오히려 불평등을 야기할 수 있으니 보이지 않는 정신을 갈고닦으면 신체로 배어 나온다는 것이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말로 느낀다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 수양을 10년 한 사람의 몸이 저절로 환골탈태했다는 말은 무협지 말고 현실에서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동양은 서양에 비해 정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사회적 역할에 따라 치중하는 정도를 다르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신 수양을 극도로 강조한 사상 중 동양에는 도교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깨달음을 얻고 우화등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으니 현실에 고통을 겪는 일반 백성에게 각광받습니다. 


    중앙집권적인 유교에 비해 도교는 다분히 서민적이고 지방분권적입니다.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정신적 깨달음을 강조해서인지 가짜 도인들도 많고 오히려 백성의 고혈을 짜내는 사기꾼도 많습니다. 사실 도교의 전신인 노장철학에서 강조하는 것은 조화입니다. 영화 <역린>으로 유명해진 중용 23장은 이러한 사상을 잘 대변합니다. “작은 것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되고, 정성스러우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글도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처음부터 조화로울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 정성을 다하면 그다음 단계가 열리고 조화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싯다르타는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지만 신념 때문에 상한 음식임을 알면서 먹고 열반합니다. 부처가 될 요량이 아니라면 운동도 적절하게 하는 편이 오히려 덜 쾌락주의자로 보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대한민국도 건강, 스포츠, 미용이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공부에 대한 여러 담론이 언론 매체를 통해 보도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생각합니다. K 문화의 세계적인 열기는 국민에게 그 어느 때보다 자긍심을 주고 많은 사람들이 이 사업에서 일익을 담당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와 더불어 공인으로서의 도덕적 잣대에 거의 매일 누군가는 웃고 슬퍼합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성공과 아름다움의 극적인 분야이면서 신체적 아름다움이 정신의 건강을 반드시 담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일반 대중은 그들이 공인으로서 자각하고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이기를 원하고 과거 정치인들에 원했던 공정함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다소 과장처럼 아름다운 그들의 모습도 동굴 속의 그림자에 불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외면하고 싶습니다. 그들도 나와 같은 동등한 인간이므로 그 정도의 시선이면 족할 것 같습니다. 다만 내외적으로 조화로운 사람에게는 신의와 격려의 박수를 더 많이 보내고 잘못한 사람에게도 그 정도에 맞는 비난이 적당합니다. 


   사실 건강한 신체라는 개념은 한편으로 장애인과 우수 혈통에 대한 차별적 정서를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서양의 예술작품들은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공식을 충실하게 따릅니다. 신체가 정신을 결정한다는 세계관에 따라 장애 이미지를 생산합니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에 우회로를 제보했다고 전해지는 에피알테스는 후에 그리스어로 ‘악몽’이라는 단어가 되었고 영화 <300>에서 꼽추로 그린 것은 다소 과장이었지만 서양인들의 시각을 반영했다고 생각됩니다. 실제 꼽추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헤로도토스는 에피알테스가 등이 굽었다고 표현했고 방진에 참여하지 못한 것으로 몸이 불편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영화 <300>에서 에피알테스의 배신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는 건강한 외모의 지킬은 아름다운 정신을 가진 의사지만, 그 외모가 흉측하게 바뀌면서 살인마 하이드가 됩니다. 프랑켄슈타인은 더욱 극적이지만 휴머노이드라는 측면에서 그래도 어린이들의 악몽에만 나오고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는 면죄부가 부여됩니다. 


    <피터 팬: 자라지 않는 아이>의 ‘후크 선장’, <보물섬>의 ‘외다리 실버’, <모비딕>의 ‘아합 선장’, <오페라의 유령>의 ‘에릭’은 모두 신체적 문제가 트라우마가 되었으며 정신적으로 타락하는 인물입니다. 장애인이 일반인에 비해 아름다운 정신을 가진 캐릭터로 묘사한 경우는 <파리의 노트르담> 주인공 ‘콰지모도’ 정도입니다. 다만 이 인물도 아름다운 정신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습니다.

 

<노트르담의 꼽추> 포스터 여주인공과 대비를 이룬다

    눈으로 볼 수 있는 표현하는 연극과 영화는 더욱 강렬합니다. 신체-정신 인과론을 가장 충실하게 재현한 영화는 <배트맨> <스타워즈>입니다.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며 각종 무예를 펼치며 평범하지 않은 외모를 가지고 있는 악과 싸우지만 항상 정신적 문제로 충돌하고 실패하고 성장합니다. <반지의 제왕>의 ‘골룸’은 표현 가능한 모든 장애와 악의 총체입니다. 


    서양과 달리 동양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건강한 정신”이 먼저 깃들어야 합니다. 서양의 전통과 달리 동양은 “건강한 정신에 건강한 신체가 깃든다”라고 교육합니다. 그래서 동양은 신체적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동상이나 그림은 일반 백성들의 길거리 문화에만 남아있고 선비 등의 지배층 유학자의 정신을 책으로만 전합니다.      

    따라서 동양의 문화에서 장애인은 가련하고 안타까운 존재로만 묘사됩니다. 선천적인 장애든 후천적 장애든 장애로 인한 트라우마로 정신이 왜곡될 수는 있지만 모든 장애가 그 사람을 삐뚤게 하지는 않습니다. 유전병적인 장애는 지식이 부족했던 지배계층에게 인구는 노동력과 군사력 양 측면에서 매우 중요했고 장애는 치명적이었습니다.      


    당연히 장애의 원인과 관계없이 다음 세대의 불확실성이 제거되기를 원했고 방법은 접촉을 제한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공포는 질병과 동일하게 취급되었고 그렇게 확산되었습니다.  

   

   현재 교육환경은 급변했지만 그래도 과거시험과 연계되었던 조선의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인간에 대한 깊은 탐구와 사색을 했던 근대의 사람들만큼 현대의 우리가 고민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근대교육의 시작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조금 늦기는 했지만 유사한 길을 걸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현대 국가가 과거와는 다른 방법으로 공부하고 있을까요? 현대에도 여전히 과거의 공부 방법과 내용을 고수하는 국가는 없을까요? 무조건 새로운 것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조선시대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은 아니니 미리부터 놀랄 일은 아닙니다. 여하튼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미래 교육의 이정표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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