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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적호 Jan 16. 2024

#13. 종교와 교육

교육 잡설(雜說)

#13. 종교와 교육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육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더욱이 바닥에 한 번 떨어졌던 경험(일제 식민시대)이 있기 때문인지 다른 나라 평가에도 민감합니다. 그래서인지 한국 사람이 다른 국가 사람에 비해 머리 좋다는 이야기 듣기를 원하고, 특히 현대 과학과 금융에 많은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비교되는 것도 좋아합니다. 어쩌면 이스라엘의 기구한 삶이 우리와 겹쳐 보일 수도 있고 일제 강점기 이후 급격히 증가한 기독교적 세계관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제는 많이 알려진 것처럼 2,000년 동안의 디아스포라(Diaspora)를 하고 다시 건국된 나라입니다. 그 오랜 시간 전 세계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이들에게 생존과 종교를 동시에 보존하는 것은 숙명과도 같은 난제(難題)였습니다. 후대에 자신의 정체성을 전해줄 체제가 없는 그들은 각자의 자손에게 교육이라는 시스템을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교육에 진심인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유대교는 그들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이고 유대교를 믿는다는 이유와 또 다른 모든 이유로 거의 전 유럽 국가의 박해를 받습니다. 그들은 단순하게 유대인임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오랜 시간 동안 여러 나라에 분포해서 살다 보니 언어를 잃어버린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유대교도 감추고 살았고 언어도 잃어버렸으며 이미 다른 민족과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있을까요? 그러니 유대인은 피보다는 유대교로 묶인 사람들의 집합을 의미하는지도 모릅니다.

기원전 8세기~1세기 유대인 디아스포라 경로  [출처] 유대인 디아스포라와 중세 유대인의 추방|작성자 크로노스와 가이아

    이스라엘 건국(1948년)과 동시에 전 세계에서 모여든 사람 중 히브리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소수였고 대부분 구전되었기 때문에 발음도 상이하고 본래 발음을 알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언어였으며 경전이었으므로 새롭게 정립하고 예루살렘에서 사용되는 발음을 기반으로 표준 히브리어 발음을 구축합니다.      


    2,000년을 다른 국가에서 살고 언어도 다른 사람들을 한 나라로 모으고 이웃으로 함께 사는 것은 인류역사상 처음 시도되는 일이었습니다. 인공 국가가 만들어지는 셈이었습니다. 이러한 건국 과정에서 교육은 다시 한번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로 통일하고 국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밑그림을 그려줍니다. 


    유대교는 오랜 박해 속에서 구전으로 종교를 전파합니다. 이런 종교일수록 본래 뜻을 후세에게 전달하기 위한 독특한 방법, 즉 교육이 존재합니다. 유대인은 본래 교육을 중시하는 민족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로마군에게 포위되어 함락 직전에 놓이게 되었을 때, 유대인이 제시한 항복 조건은 단 하나, 학교를 계속 유지하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디아스포라가 시작된 AD 70년 전통적인 교육기관 ‘예시바(Yeshiva)’가 시작됩니다. 예시바의 교육 목표는 유대교의 지식과 전통을 배우고, 유대교 지도자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예시바에서 학생들은 탈무드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유대교의 법과 윤리를 배우고, 유대교의 역사와 문화를 탐구합니다. 또한, 예시바에서 학생들은 토라를 암송하고, 유대교 기도문을 외우는 등 유대교의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법을 배웁니다.

칸막이 없는 예시바 도서관

   여기에서 배우는 토라는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이며 탈무드는 미슈나(구전 토라, 전통적인 해석과 실생활 적용 가르침 포함)와 게마라(당대 해석을 덧붙임)를 합쳐서 부르는 말입니다. 탈무드는 5세기 무렵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약 1,000년간 구술로 전해지고 지혜와 경험이 합쳐진 탈무드는 이후에도 이스라엘 민족의 방향키를 하게 됩니다.

토라(모세 5경)

    『탈무드』는 종교예배, 의식, 도덕, 법률, 신앙, 사회행동 등 생활과 문화 전체를 규제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에서는 종교와 도덕이 하나이며 모든 생활의 지침과 방식을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탈무드』에는 위와 같은 윤리적 가르침 외에 처세 관련 재치 있는 실용적 메시지도 많이 들어 있습니다.      


    한편 이스라엘 민족은 단단한 신용을 바탕으로 하는 상업 활동을 전 세계적으로 펼쳤기 때문에『탈무드』는 무역, 부동산, 상행위, 계약 이행 등 유대인의 광범위한 경제활동을 규제하는 국제 관습법 같은 역할도 수행했습니다. 중세 이후에도 종교와 민족에 대한 박해를 겪어도 탈무드와 교육은 손에서 놓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탈무드』가 다른 종교 관련 책과 달리 수많은 논쟁과 토론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출판할 때부터 지금까지 마지막 페이지는 늘 백지로 남겨져 있습니다. 탈무드는 지혜를 주는 책이 아니라 지혜를 얻는 방법을 알려주는 지침서입니다. 그래서 『탈무드』는 완성된 책이 아니라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는 책입니다.


   우리도 지금은 일반적으로 탈무드를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성경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본뜻을 이해하고 생활에 적용하기 어려운 것처럼 탈무드를 읽는다고 유대인 수천 년의 비기를 배우기는 어렵습니다. 


    조선의 유학도 유사했습니다. 유학도 조선의 삶이고 실천 학문이었습니다. 선비들은 유학의 도를 실천하고 현실 정치에 적용하며 백성을 교화시켜 조선을 문명국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렇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종교와 생활을 일치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종교교육은 매우 강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특히 어린 시절의 교육은 후천적 유전 효과가 있습니다. 각인된 삶의 모습이 어른이 되어도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는 ‘하레디(Haredi)’라는 초정통파 종교인이라고 부르는 그룹이 있습니다. 이들은 유대교의 율법을 가장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로 삶의 모든 부분에서 종교적인 가치를 가장 우선시합니다. 스마트폰 등의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집단 거주를 하며 오직 종교적 활동만 하고 살아갑니다. 다소 세속적인 일은 여자가 주로 하며 남자는 공부만 합니다.(이점도 조선 선비와 유사합니다.) 이들은 결혼할 때 토라 성적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그 성적에 따라 결혼 지참금이 정해진다고 할 정도입니다. 일단 어려운 공부과정을 거치고 나면 랍비가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랍비는 대 스승입니다. 당연히 탈무드에는 스승을 존경하라는 메시지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레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방법으로 공부하지 않습니다. 물론 다른 종교나 학문처럼 암기가 기본 방법이지만 암기는 모든 공부의 기본 소양입니다. 이들은 토라 등 경전을 조용히 암기하지 않고 소리 내서 읽어야 합니다. 따라서 종교 교육기관의 도서관이 엄청 시끄럽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떠드는 도서관

   조용히 속으로 음미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 당연히 도서관도 시장 같습니다. 이렇게 소리 내서 암송하는 교육 방법은 현재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사용합니다. 유학이나 불교도 경전을 이러한 방법으로 공부했습니다. 당연히 유대인들은 어쩌면 일반적인 이런 교육을 뛰어넘는 창의적 공부법이 존재합니다. 


   본래 탈무드는 구술로만 전할 수 있었으며 많은 해석과 토론으로 더욱 정교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보통 종교는 다른 해석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다른 해석이 인정받으면 그 교리를 가진 다른 종교가 만들어지는 게 보통입니다. 그리고 이런 토론은 종교인들이 주도합니다. 그런데 유대교에는 사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논쟁이 자유롭습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전통적인 토론식 학습 방법을 하브루타(Chavruta)라고 합니다. 히브리어로 "친구" 또는 "동반자"를 의미하는 단어로, 두 명의 학생이 함께 텍스트를 읽고, 질문을 주고받으며, 논쟁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브루타는 유대교 경전인 탈무드의 연구를 위해 고안된 방법이고 AD 70년경에 예시바가 탄생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고 오늘날에는 다양한 분야의 학습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공부할 수 있도록 고안된 하브루타는 지금도 예시바에 들어가면 조 편성부터 시작하는 실용적인 방법입니다. 하브루타는 학생들이 서로의 질문과 의견을 교환하며 주어진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와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인 전달 방법을 익힐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협업 능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아름다운 결과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슬람 세계에는 마드라사(madrasah)라는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마드라사는 중세 시대에 이슬람 세계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이후 이슬람의 전파와 함께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 생각에는 수도원 같은 느낌도 있습니다. 다만 교육 대상의 차이 때문에 수도원보다는 이스라엘의 예시바와 가깝습니다. 마드라사는 이슬람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이슬람 공동체의 통합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마드라사

    마드라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종교적 교육에 초점을 맞춘 전통적인 마드라사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적인 교육과 이슬람의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개혁적인 마드라사입니다.


    전통적인 마드라사는 주로 코란과 하디스(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 샤리아(이슬람 개인의 삶과 사회의 모든 측면을 규정하는 법률 시스템)를 가르치며, 학생들은 매일 코란을 암송하고, 종교의식을 수행하는 법을 배웁니다. 또한, 학생들은 이슬람의 역사와 철학을 탐구하고, 이슬람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개혁적인 마드라사는 전통적인 마드라사의 교육 방식을 보완하고, 현대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개혁적인 마드라사는 이슬람의 기본 교리를 가르치면서도, 과학, 수학, 컴퓨터 등 현대적인 교육을 병행합니다. 또한, 학생들이 사회 참여를 통해 이슬람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합니다.


    오늘날 마드라사는 전 세계적으로 약 1 만여 개가 운영되고 있으며, 약 1천만 명의 학생들이 재학 중입니다. 마드라사는 이슬람 세계의 교육, 문화, 인재를 양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슬람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이슬람 공동체의 통합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육기관입니다. 이슬람에는 이스라엘의 랍비처럼 ‘이맘(Imām)’이라는 종교 지도자가 있습니다. 마드라사에는 이들을 교육하는 과정도 별도로 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교육기관인 마드라사가 몇몇 나라에서 극단주의를 교육하는 곳으로 이용된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특히 파키스탄에는 약 35,000개의 마드라사가 있으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마드라사를 가진 국가이기도 합니다. 파키스탄의 마드라사는 주로 코란과 이슬람 율법을 가르칩니다. 파키스탄의 마드라사는 파키스탄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드라사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파키스탄의 문맹률을 낮추는 데 획기적인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파키스탄의 일부 마드라사가 테러리즘과 연계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 마드라사의 교육 수준을 정부에서 고의로 낮게 조절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의 규제가 부족하고 관심이 낮은 계층의 교육이다 보니 기초적인 교육만 시행하고 고등교육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파키스탄 정부는 마드라사의 테러리즘 연루를 방지하고, 교육의 질을 향상하는 등 정부의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교육이 의무교육을 대체하고 있는 국가이다 보니 걱정이 앞섭니다. 


    우리나라도 기독교가 일제강점기, 해방 후 교육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일제강점기 1930년대 후반까지 기독교 사립학교가 주류였으며 해방 후에도 다양한 종파가 재단인 학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는 학교 교육에서의 종교교육은 최소화되었습니다. 아무리 기독교 학교라고 해도 강압적으로 교육하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의무교육, 근대화 교육이 종교교육보다 더 시급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종교 지도자들이 군사정권에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1937년 9월 신사참배 거부로 2차 폐교를 앞둔 교직원과 고등과 학생들의 ‘최후의 헤어짐’    [출처] (순천시) 매산학교(신사참배 거부 운동지)|작성자 전남동부보훈지청

    그런데 반대로 교회나 성당 등에서의 종교교육과 예배는 상당히 강도가 높았습니다. 성경 구절 암송 대회, 영어 성경 읽기, 성경 공부, 찬송가 대회, 00일 기도회 등등 엄청난 양의 교육과 종교 활동이 있었습니다. 미국 남부 침례교의 유입 때문이라고도 하고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신앙심이 높은 민족이기 때문이라고도 합니다. 


    종교 조직은 자치적으로 움직입니다. 모든 일을 성직자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봉사라는 명목으로 직분을 맡아서 분업해서 일을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신흥 종교인이 길러지기고 하고 일반 신도들의 종교적 신념과 결집력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기독교 특히 개신교 교회가 교육에 미친 영향은 실로 엄청납니다. 


   개신교는 다른 종교 이상으로 교육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개신교는 교육을 통해 인간의 영성과 지성을 계발하고,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신교의 교육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개신교 교육은 종교교육을 중시합니다. 개신교는 성경을 통해 인간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실천할 수 있도록 교육합니다. 


    둘째로 도덕, 윤리적 교육을 병행합니다. 이 점은 유학과 유대교의 전통을 개승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성경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 의식의 함양이 첫 번째입니다. 


    셋째로 개신교 교육은 실용 교육으로, 학생들이 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교육합니다. 특히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윤리가 강한 종파가 유입된 우리나라는 이러한 성향이 두드러집니다. 개신교는 다양한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교육을 실천해 왔습니다. 개신교 학교, 개신교 대학, 개신교 신학교 등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개신교 학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포함하는 기독교 사립학교입니다. 개신교 신학교는 신학을 가르치는 대학입니다. 개신교 신학교는 목회자, 선교사, 신학자 등을 양성합니다. 


    일단 체계화된 종교는 매우 효용성이 높았습니다. 국가가 체계화시키지 못한 신분을 제도화했고 사람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도록 했으며 설교를 통해 자연스럽게 윤리를 교육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또한 의식주 통일로 동질감을 키웠습니다. 이렇게 종교는 사회를 구성하는 필수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각 종교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역사는 필수적이었고 혈통을 중요시 여기게 됩니다. 이렇게 교리와 역사를 필사하고 설교하면서 더욱 체계화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신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을 분석하고 이런 노력을 기반으로 생명과 사후에 대한 개념도 발전시킵니다. 우리가 문화 또는 문명이라고 하는 모든 행위를 종교의 틀 안에서 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폭발적으로 지식이 모이고 쌓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체계화된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국력의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세대 간 전달도 가능하게 하였다. 최소한 중세까지 종교는 만병통치약이었습니다.      

    종교의 역할을 정리해 보면 기본적으로 사람들을 신앙이라는 공통된 가치관으로 결속시켜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중세 유럽에서는 가톨릭교회가 사회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면서 사회 통합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통합 역량을 바탕으로 종교는 의식주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적 요소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불교는 불교 사찰, 불상, 불경 등의 문화적 유산을 남겼고, 기독교는 교회, 성경, 음악 등의 문화적 요소를 형성했습니다. 


    인간의 상상력이 종교를 만들었는지 종교가 뇌를 자극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문명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것은 분명합니다. 또한 종교는 교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윤리적 가치관을 교육합니다. 예를 들어, 불교의 자비와 사랑, 기독교의 사랑과 용서 등의 가르침은 사람들의 삶을 그 시대, 그 국가를 윤리적으로 이끌어 주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당연히 종교는 이렇게 구축된 국가의 역사, 과학, 의학 등의 분야에서 지식을 축적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건설과 천문학 연구는 종교적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효용성으로 인해 체계화된 종교는 중세까지 인류 문명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종교는 당시 사람들에게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이었습니다. 종교는 사람들에게 신앙과 희망을 주었고, 윤리적 기준을 제시했으며, 사회를 통합하고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종교는 중세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렇지만 종교가 항상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닙니다. 종교는 종종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거나, 폭력과 억압을 정당화하고 이용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으며 권력 투쟁의 한가운데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가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측면은 결코 부정할 수 없습니다. 

30년 전쟁 중 벌어진 독일 마그데부르크 시민 학살

    그러나 근대 이후에는 과학과 교육의 발전, 사회의 세속화 등으로 인해 종교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제공하는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듯이 종교는 현대 교육에도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물론 과거에 비할 수는 없습니다. 종교가 체계화되기 이전부터 최근까지도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교육은 존재했습니다. ‘절대 하지 마!’ 교육입니다. ‘무엇 무엇을 해’ 보다 ‘하지 마’가 훨씬 강력하며 오래 지속됩니다. 인류는 본능을 절제하며 생존하는 법을 배웠고 후세에 전달했습니다. 일종의 터부입니다. 근대이전에 어떻게 교육을 했고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을까요? 지금은 잘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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