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이야기
전날 흉통으로 혈액검사, 소변검사, 심전도, 흉부X선 검사를 한 73세 할머니가 다시 오셨다.
오늘 결과를 확인하니 전혀 이상이 없다.
결과가 너무 깨끗해서 이런저런 질문을 해보았더니 평소에 항상 불안하다고 하신다.
"검사 결과는 이상이 없는데 지금은 어떠세요? 지금도 가슴이 아픈가요?"
"아니요. 그날 하루 아프고 그 이후 전혀 아프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 항상 불안해요. 불안한 것이 있으면 가슴까지 아프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뭐가 불안한지 여쭤봐도 되나요?"
"아파트 세를 주었는데 세입자가 집세를 제때에 안 줄까 봐 그게 항상 불안해요."
!!!???!!!
너무도 진지하게, 심각하게, 울 것 같은 얼굴로 이 이야기를 해주시는 할머니를 마주 본다. 문득 성경 말씀 한 구절이 생각이 났다.
소가 없으면 깨끗해서 치울 것이 없어서 깨끗하고 좋지만 힘들어도 소가 있어 얻는 유익이 많다는 것!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잠언 14:4
아이를 키우며 내가 경험한 진리는 아이가 있으면 근심이 있고, 아이가 없으면 아이와 관련된 근심이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것이 더 좋을까? 없는 것이 더 좋을까?
근심이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것은 우리에게 큰 기쁨과 즐거움을 준다.
오늘 할머니처럼 집이 있으면 집과 관련된 근심이 있고, 집이 없으면 집과 관련된 근심이 전혀 없다.
그러나 집이 있는 것이 더 좋을까? 없는 것이 더 좋을까?
어떤 사람은
"할머니 뭘 그런 걸 근심하세요. 저는 집 하나만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그럼 집을 파세요."
라고 할지도 모른다.
아이가 있어 동동 구르고 있는 엄마에게
"저는 아이가 없어요. 아이가 있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라고 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질문을 많이 받으셨는지 근심이 많은데도 집을 팔지 못하는 이유도 말씀해주신다.
"남편이 못팔게 해서 팔 수가 없어요. 세입자가 말도 많고 탈도 많고 너무 근심이 많아서 저는 팔고 싶은데 남편 때문에 못파는거예요."
라고... 아마 많은 사람이 그렇게 마음이 힘들면 팔라고 했나보다.
이제는 근심을 주는 남편인가? 아니면 남편의 지혜로운 결정일까? 그것까지는 나도 모른다.
결혼해서 근심거리를 주지 않는 남편이 어디 있을까? 너무나 좋은 남편이라도 작은 근심 쯤은 아내에게 주기 마련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래도 남편이 있는 것이 더 좋을까? 없는 것이 더 좋을까?
이 생각까지 가니 웃음이 난다.
할머니는 갑자기 울다 웃다 눈물을 닦으며 일어나신다.
"정말 고마워요. 마음이 너무 편해졌어요. "
내가 한 말은 한마디밖에 없는데 할머니는 답을 먼저 찾으시고 일어나신다.
근심속에 감사를 찾는 환자를 보며 나도 근심을 주는 환자와, 환자보다 더 역동적인 근심을 주는 아이와 남편이 있음에 감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