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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 Sep 17. 2022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진료실 이야기




정여울 작가님의 책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라는 책을 읽었어요.


글쓰기란 참 신기해요. 작가님이 책에 적어놓았듯이 어제 느낀 아픔을 오늘 한 글자, 한 글자 녹여 적다 보면 더 이상 어제처럼 아프지 않게 되니까요.

그런데 말하기도 그렇지 않나요?

어제 느꼈던 괴로움을 이야기로 풀어내면 감정까지 풀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거든요.

물론 사람마다 성격의 차이는 있겠지만요.



진료를 보러 오면서 유독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 분이 있어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라고 물으면 신체적인 불편한 것도 이야기하지만 요즘 기분이 어떤지부터 걱정거리, 고민거리도 다 이야기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지요.

"요즘 걱정이 많아요."

"속상해 죽겠어요."

정말 내 마음속 이야기 다 이야기하고 가야지 결심이라도 한 듯 속사포처럼 쏟아놓고 가는 분도 있답니다. 이야기한 게 충분하지 않았다면 나가다가도 다시 와서 한 번 더 걱정거리, 고민거리를 이야기하고 가시지요.

그런 분들 중에는 한 달에 한 번 오시면서 병원 오는 걸 즐거워하고 기다린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도 계세요.

생각해 보니 병원에 오는 것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한바탕 털어놓고 가면 걱정거리, 고민거리들이 조금은 풀어져나가고 마음의 긴장과 불안들이 낮아져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진료시간은 짧지만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잘 들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다였는데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팬데믹 이후 제가 매일 던진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고 있는가.무슨 힘으로 이 기나긴 고통을 견뎌내고 있는가."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고통이 많은 분들에게 저와의 짧은 순간이 어떤 힘이 될 수 있을까요.

몇 마디의 말이 무슨 위로가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저는 이 책을 보며 환대의 마음으로 정성 담긴 글을 읽는 순간 제 마음도 한 땀 한 땀 뜨개질하여 보송보송한 스웨터를 입은 듯 마음이 포근해졌어요. 대충 냉장고 속의 반찬과 찬밥으로 한 끼 때우려다가 엄마가 기어코 쌀을 씻고 아껴둔 굴비를 꺼내어 구워내어 주신 밥을 먹듯 속도 든든해졌고요.



이러한 사랑 담긴 글에도 힘이 있듯

"짧지만 사랑 담긴 몇 마디의 말에도 힘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삶의 고통으로 가득한 환자들에게 "따뜻한 환대"의 마음으로 바라보고 들어주고 치료해야겠구나 "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환자뿐 아니라 삶에서 만나는 지친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답을 얻을 기분이네요.


" 생각해 보니 내가 가진 가장 밝고 찬란하고 해맑은 사랑의 힘으로, 나는 매일의 고통을 버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가눌 수 없는 슬픔이 매일 나를 공격해도, 내가 미처 다 이루지 못한 꿈들이 보이지 않는 화살이 되어 나의 심장을 찔러도, 나는 아직 괜찮다고 느끼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너에게 줄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고통 속에서도 해맑은 모습으로 저에게 오히려 힘을 주고 가는 분들도 있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남 속에서 서로를 위로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병원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도, 또 병원에서도 아픔보다는 서로를 위로하고 환대하는 순간들이 많아지기를.






" 친절하라.
당신이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힘겨운 전투를 치르고 있으니."
-플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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